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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추억을 되새기는 빨간 우체통

㊳추억은 매콤달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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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락현기자 |  2014.07.03 12:20:10

▲경북지방우정청 서은정.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카톡, 하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오랜만이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친구가 어떻게 사는지, 요즘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일주일전에는 어쿠스틱 밴드의 공연을 다녀왔고 플리마켓에서 직접 만든 컵받침과 옷걸이를 팔기도 했었죠.


물론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나는 sns를 통해 친구를 만납니다. 스마트폰 안에서 보는 나의 친구는 어제 인사를 나눈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높은 벽을 두고 사는, 만난적 없는 타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은 좀 의례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나도 친구도 서로가 이미 알고있는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봤던 드라마의 재방송이지만 딱히 다시 볼것이 없어 또 보는 것처럼.


좋아하는 친구이지만 이럴땐 가끔 우리 역시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그런 마음은 아주 찰나의 시간으로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신나게 수다를 이어나가겠지만 잊을수는 없겠죠.


나는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고, 그런 사실을 덮으려는듯 친구를 만날 약속을 정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때는 글자를 나누는 것보다 목소리를 나누는것이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자의 행간에는 나도 정확히 알수 없는 서글픔이 숨어있어서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혼자만의 감정이 커져 나갑니다.


이럴때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떡볶이.(사진/경북지방우정청 제공)


약속장소는 우리가 처음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게 만들었던 떡볶이 집입니다.


이 근방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이름을 모를수 없는  유명한 집이지만 어떤 점이 특징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수는 없는 오묘한 맛집이죠.


고춧가루가 많이 섞인 떡볶이에 속이라고는 당면밖에 없는 야끼만두가 들어간 한그릇이 이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입니다.


친구와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들어와 주문하는 것은 여고시절과 같은 떡볶이 두그릇, 삶은 달걀을 추가하며 그때보다는 호사스러워졌다며 깔깔 웃음을 터트립니다.


사실 이 떡볶이집은 우리가 다닌 여고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애석하게도 여고와 남중이 함께 위치하는 훌륭한 위치임에도 동네 근처에는 제대로된 떡볶이집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의 시련을 떡볶이 한그릇 없는 맨몸으로 이겨내기에는 너무도 힘겨웠기에, 저와 친구를 비롯한 배고픈 여고생들은 결심했습니다.


“이 동네에 없다면 다른동네에 가서 먹으면 돼!”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1시간의 저녁시간 안에 떡볶이를 맛보기 위해,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십시일반으로 용돈을 모아, 택시를 탔습니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 위해서!


물론 그때 물가가 아무리 싸다해도 택시비는 떡볶이값 보다는 비쌌습니다.


쇼생크를 탈출한 앤디가 느꼈던 자유의 맛이라 하면 상상할 수 있을까요, 떡볶이는 매콤달콤했습니다.


“이런게 행복인갑다~ 맞제?”


입가를 발갛게 물들이며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계속 잊을 수 없는건, 그녀 안에 아직 그때의 소녀가 살아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간은 왜이리도 우리의 편이 아닌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옆동네까지 가서 떡볶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모한 계획이었던건지 시계는 저녁시간이 끝나기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미 택시를 탄대도 제시간에는 돌아갈수 없는 상황이 오자 차라리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모두들 마지막 한조각까지 깨끗하게 먹고 마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듯 떡볶이집을 나섰습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은 택시비와 떡볶이값을 낸터라 후식까지 사먹을 여유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그마한 사탕 몇 개를 사서 입안에 굴리며 걸어오는 그 시간만은 곧 닥쳐올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늦을 줄 알았으면 택시비로도 떡볶이 사먹을걸!”


누군가가 던진 개구진 한 마디에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으며 걸어오던 그 길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때처럼 떡볶이는 여전히 매콤달콤합니다.


그날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를 이어주는 것처럼요. 


친구에게 느꼈던 이유 모를 서글픔도 매콤한 맛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나는 그동안 친구를 어디에서 보고 있었던 걸까요, 내 앞의 그녀는 그때도 지금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 친구인데 나 혼자 멀리 떨어져서 어딘가 변한건 아닐까 우리가 멀어진건 아닐까 오해만 키우며 노심초사 한건 아닌지 부끄러워집니다.

▲네잎클로버.(사진/경북지방우정청 제공)

“이 골목 그때 우리가 택시타고 떡볶이 먹으러 온 길 아니가~”


마치 그때가 어제처럼 느껴진다는 친구의 얼굴 역시 그때 그 모습 같습니다.


그녀의 앞에 있는 나도 장난기어린 여고시절 그대로인 듯 하네요. 그렇게 옛 추억이 쌓인 골목길을 마음만은 만년 여고생이 둘이서 정답게 걸어갑니다.


앞으로도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날이 있을테고, 서로 오해가 쌓일 날도 있겠지만 왠지 다 잘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날의 떡볶이를 함께 먹었으니까요.


(글=경북지방우정청 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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