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충남 대전의 타운홀 미팅에서 이런 말을 했다. “7년 넘도록 빚을 못 갚고 연체 중인 중소 상공인의 빚을 탕감해준다니까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 이렇게 한번 말해보자. 빚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7년만 버티면 빚을 탕감해준다고 하면, 그러면 당신은 돈을 빌린 뒤 신용불량자가 돼 통장도 개설 못하고 알바도 못하며 경제 생활이 완전히 망가지는 7년을 버틴 뒤 빚을 탕감 받을 용의가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인에게 이런 논리는 굉장히 낯설다. 사실상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간 언론들이 이런 논리를 대중들에게 전한 적이 거의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이재명 대 홍남기
이 대통령과 대전 주민 300여 명(선착순 입장)의 타운홀 미팅에서 진행된 빚 탕감 관련 질의응답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2021~2022년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와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가 전국민에 대한 재난지원금 문제를 놓고 ‘줘야 한다’(이) vs ‘못 준다’(홍)며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고 결국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손을 들어줬는데, 그 당시 이번처럼 타운홀 미팅 같은 형식으로 여러 당사자들이 모여 공개 토론을 벌였다면 과연 그때처럼 재경부의 입장이 관철됐을까?” 하는 질문이다.
재난지원금을 줄 자(재경부)와 받을 자(중소 상인)가 한 자리에 모여 터놓고 타운홀 미팅 대화를 하고, 이 장면이 생중계됐다면, 과연 그때의 결정처럼 “미국과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코로나로 고통받은 상인과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꽂아주지만, 우리 한국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국민에게 무상으로 꽂아주는 돈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돈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막는다”는 미봉책으로 끝났겠느냐는 질문이다.
2021년 말~2022년 초의 5차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논란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공약했지만 홍남기 부총리의 반대와 그 손을 들어준 문 당시 대통령의 결정으로 결국 ‘선별지원 방식’으로 결정났으며,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에서 24만 7만 표(0.73%) 차이로 윤석열 직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웃기는 것은, 코로나 사태 당시 추경 편성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 고수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에서 울먹이기까지 했던 홍남기 이후 재경부는 “누락된 세수 50조 원 이상이 발견됐다”며 뭉텅이 돈이 정부 금고에 있었다고 밝혔다는 점이었다.
뭉칫돈 50여 조 원이 추후에 발견될 정도라면 금고 사정이 그리 궁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며 울먹이기까지 한 속내가 지금도 궁금하다.
“尹, 2천만 원 주잖아? 그리고 민주당이 검증했고”
2022년 3월 9일 대선을 며칠 앞두고 식당을 운영하는 한 지인과의 대화 내용은 아직도 충격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1번 이재명과 2번 윤석열 중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 지인은 “2번이지. 윤은 당선되면 50조 원을 풀어 소상공인에게 2천만 원씩 주겠다고 했잖아? 그리고 윤은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이 이미 검증을 마친 후보잖아”라는 대답이었다.
2022년 대선 당시 소상공인들 중 상당수는 ‘윤이 당선되면 2천만 원씩 받는다’는 기대와 함께,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이 이미 검증한 후보’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당시의 사정에 대해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송영길은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재명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준석 야당 대표와 만나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여야 합의까지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홍남기 부총리가 끝까지 반대했다. 그래서 홍 부총리를 경질하자고 강력 건의했지만 당시 김부경 총리도,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끌려다니기만 하더라. 24만 표 차이로 지는 여당 후보가 어디 있냐? 이건 아예 이 후보를 안 도와주려고 작정한 거다”라고.
이 대통령 “책상이 아니라 현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대전 타운홀 미팅 하루 뒤인 5일(토) SNS에 다음 문장을 올렸다.
“변화는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주권자의 충직한 대리인으로서, 국민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실용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또 집행해 가겠다 약속드립니다.”
이 대통령 말처럼 2022년 대선 당시에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논의가 진행됐다면, 즉 책상에 당시 문 대통령과 홍 부총리만이 앉아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문-홍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 탓에 관의 명령에 따라 영업을 금지당한’ 300여 명의 소상공인이 타운홀 미팅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지금처럼 소상공인 110만 명이 파산 상태에서 신음하고, 코로나 당시 소상공인 대출금 160조 원 중 50조, 즉 30%가 채무 불이행 상태라는 질곡에 빠지게 됐을까?
그리고 그 당시 올바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2022년 대선 뒤 3년간의 이어진 난장판 국정, 그리고 한반도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2024년의 '무인기 북송'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까지 벌어졌을까?
세상의 돈 문제, 금융-재정 문제에 대해 그간 한국의 언론은 거의 항상 ‘책상 위에 펜을 들고 모이신 힘센 분들’의 말만을 전달해 왔다. 그 반대편의 논리, 즉 책상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 시장통의 사람들, 또는 과거의 이재명 성남시장-경기도지사처럼 시장통 사람들의 돈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주장은 거의 완전히 무시해 왔다.
그랬던 것이 이제 이재명 정부가 탄생하면서 이 대통령이 현장에 나가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의 말까지 들으면서 그런 말까지 언론을 타고 있다. 한반도가 참으로 달라지긴 달라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