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있지만 기능은 문제없는 리퍼브 상품
모아서 파는 ‘인생 2회차 2호점’ 가보니
가전제품부터 식품 등 다양…AS도 가능
폐기물 줄이는 첫걸음, 환경에도 이로워
가히 아나바다 운동의 부활이다. 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 쓰자던 1990년대 그 캠페인 말이다. 시간이 흘러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거센 친환경 열풍이 과거의 캠페인을 소환했는데, 기업들이 최근 공들이는 ESG 경영과 맞물려 더욱 강력해졌다. 네 가지 행동 지침 중 현재 가장 각광받는 구호는 ‘바’와 ‘다’로, 바꾸고 다시 써서 나온 결과물들이 놀랍다. 자칫 쓰레기가 될 뻔했던 원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가치를 얻었는지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올해 소매시장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0.4%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대한상공회의소). 실제로 올해 경제심리지수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한국은행),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 올랐다(통계청).
경기침체와 고물가의 앙상블로 형성된 ‘불경기’에 소비자는 전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새 상품보다는 누군가 썼거나 조금 흠집이 있는 제품을 사는 것이다.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지난해 35조원으로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한국인터넷진흥원).
기업도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눈치채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이마트는 스타필드 마켓 죽전점에서 오는 20일까지 합리적인 가격으로 ‘리퍼브’ 상품을 판매하는 ‘인생 2회차 2호점’ 팝업스토어(이하 ‘팝업’)를 연다. 지난해 중동점에서 시작한 1호점에 이은 두 번째 매장. ‘리퍼브’는 영어 ‘리퍼비시(Refurbished)’에서 비롯된 말로, 기능엔 이상이 없지만 패키지·라벨 등의 훼손, 전시 상품, 시즌 아웃 등으로 이유로 폐기가 예상되는 걸 새롭게 단장한 제품을 뜻한다.
버려질 뻔했던 상품이,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효자 상품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로 팝업의 이름을 ‘인생 2회차’로 이름 붙였다.
이마트는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선보이고, 매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고자 리퍼브 상품 판매 플랫폼 ‘땡큐마켓’과 협업해 팝업을 진행한다.
직접 보니 새 제품과 차이 없어
지난 8일 이곳을 찾았을 때 전자레인지, 샴푸, 모자, 라면 등 가전과 생활용품, 의류, 식품 등이 두 번째 인생을 찾아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새 제품과 차이가 없었다. 시중 판매 가격에 비해 30% 이상 저렴한 전시 물품은 이마트가 공급하거나 땡큐마켓에서 들여온다.
팝업 안에는 ‘리퍼브’를 설명하는 글귀도 있었다. 읽어보니 이곳에 오게 된 물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재포장 반품’, ‘스크래치’, ‘포장재 파손’, ‘과생산 재고’, ‘매장 진열’ 등이다.
이런 이유로 그냥 버려지기엔 아까운 것들이다. ‘기능엔 이상이 없다’는 자신감일까? 제품에 따라 교환·환불은 물론이고, AS까지 가능하다.
“주위를 구경하다가 팝업이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됐다”는 정모 씨(60대)는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만 괜찮으면 리퍼브 상품을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리퍼브’ 제품은 환경에도 이롭다.
국가환경교육 통합플랫폼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버려지는 연간 폐기물은 약 1600t에 달하는데, 리퍼브 제품을 구매하면 탄소배출량을 3045t 감축하는 효과를 낸다. 화석 연료 사용, 자원 낭비, 탄소 배출 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나지만, 물건은 계속 쓰면 ‘N번’ 살 수 있다. 현세대가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으면 후손에도 도움 될 일이다.
(CNB뉴스=홍지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