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7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제헌절을 공휴일로 되돌리는 방안을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른 시일 안에 ‘재(再)공휴일化’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17일 77회 제헌절을 맞아 하루 세 번이나 공식 석상에서 ‘제헌절은 국경일이면서도 공휴일이 아닌’ 현실을 아쉬워했다.
날이 밝자마자 SNS 메시지를 통해 “제헌절이 한때는 공휴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 군사 쿠데타를 겪으면서 국민들이 헌법이 정한 것처럼 주권자로서의 역할-책임을 다해서 결국 민주 헌정 질서를 회복했다. ‘00절’로 불리는 국가기념일 중 유일하게 휴일이 아닌 것 같다. 향후 제헌절을 특별히 기릴 필요가 있으니 휴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면 좋겠다”고 썼다.
그리고 이어 오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비서관들에게 당부했다. 또한 대통령 관저에서 이뤄진 총리-국회의장 초청 만찬에서도 “오늘은 제헌절이라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국회의장님이 열심히 국민주권을 실현해 주시고 계시는데, 정부가 잘 지원하고 협력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앞으로 국회에서 이뤄질 개헌 절차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다.
하루 세번이나 "오늘 제헌절인데…" 말한 뜻은?
이 대통령의 제헌절 관련 연속 발언은 앞으로 7월 17일 제헌절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헌법 정신을, 국민주권 정신을 다시 되돌아보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날(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원래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당연히 공휴일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주 5일제를 실시하면서 너무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국경일이지만 안 쉬는 날'로 바꿔버렸다.
‘부유층-자산계급은 부동산 등 자산을 이용해 얼마든지 돈을 벌어도 세금 부과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세계적으로도 이상한 기준을 갖고 있는 한국의 보수 참칭 세력이, ‘경제 민주주의 조항’ 등을 담고 있는 헌법을 좋아할 리 없으니, 헌법을 기리는 명절을 하찮게 취급했던 것도 당연하다. 그런 전통은 이번 12.3 내란에서 그대로 재현됐고, 내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렇게 헌법을 우습게 알다가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던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민주적 헌법의 모범이 되는 바이마르 헌법을 1919년 제정했으나 우나 좌나 다 이 헌법을 우습게 알았다. 왜냐하면 보수 우파는 왕이 지배하는 독일제국을 그리워했고, 진보 좌파는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헌법’이라며 미워했단다.
그러다 히틀러 독재를 경험한 뒤에야 헌법이 소중한 줄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독일 패망 뒤 35년 이상이 지난 1980년대 중반이 돼서야 이른바 ‘헌법 애국주의(Verfassungspatriotismus)’라는 새 이념을 내세웠고, 이는 ‘민주 독일’의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독일의 헌법 애국주의는 나치당처럼 독일의 민족(아리안족 인종주의), 역사, 종교(유대교 말살) 같은 과거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류에 보편적인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내세운다.
전세계 모든 국민이 비록 약간씩 내용이 다르고, 또한 좋은 헌법 조문을 만들어놓고는 이를 실행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는 비록 있을지라도 대개는 좋은 단어가 가득 들어간 헌법을 갖고는 있다. 이러한 인류 보편적인 헌법을 수호하는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게 헌법 애국주의다. 독일에 살면 독일 헌법을, 한국에 살면 한국 헌법을 기본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국적, 인종, 문화, 역사가 다르더라도 평화와 민주주의 증진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정신이다.
독일은 헌법 애국주의를 실천할 구체적 수단으로 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BfV)을 만들었고, 독일 전국에는 6천여 명의 헌법 수호 경찰이 암약하면서 극우-극좌파들을 단속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고, 그 추세를 틈타 한국의 극우 세력이 호시탐탐 이재명 정부 전복을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선 헌법수호청 같은 사법 기관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제헌절을 지금처럼 희미한 날로 놔두서는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이른바 ‘서울대 법대 내란과’ 출신들의 헌법 정신 유린 행위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법이지만 누구에게는 적용하고 누구에게는 절대로 적용하지 않는 이상한 법 차별 행위들이다.
멋진 법을 만들어놓되 지키지 않는 행태를 온몸을 불태우면서 규탄한 게 55년 전 전태일 열사였다.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면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온갖 좋은 조항들(근로자에 대한 지원 의무,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할 국가의 의무, 경제 민주주의 조항)이 갖춰져 있지만, 적극 실천에 나선 정권은 거의 없었다.
왕을 그리워 하는 ‘왕 어게인’ 세력이 암약할수록 헌법 수호는 중요해진다. 그리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국민주권정부의 특성상 앞으로 제헌절을 ‘국민 명절’로 만드는 작업에 이 대통령이 얼마나 속도와 아이디어를 펴낼지 기대하게 만드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