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발자국” 展이 3월 24일부터 4월6일까지 대구의 복합문화공간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에서 열린다. 여는 공연은 3월 24일(월) 저녁 7시, 두 번째 공연은 3월 29일(토) 오후 4시다.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을 견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등대가 되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도 허튼짓.
그만 파도에 휘청거린 날/ 백 잔의 술을 마셔도 걱정없다.
나 대신 취하는 바다 앞에서는/ 아프다 하지마라.
죽음 앞에 통증이 무슨 소용이랴/ 바람은 가두지 말아라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언젠가 콘서트나 사진전을 열면 제목으로 쓰려고 적어두었던 메모에서 이런 글이 나왔다.
몇 구절은 지금도 간간이 꺼내 쓰고 있지만 대부분 잊고 있었던 낙서이다.
30여 년 동안을 음악인으로 살았고 그중 20여 년은 대학의 선생으로, 또 그중에 15년은 작가로 살았다.
6장의 음반을 냈고 4권의 책을 썼으며 네 개의 시민단체에서 운영을 담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조금 남은 조의금을 털어 카메라를 샀었다.
그게 사진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20여 년을 방랑하면서 내 카메라는 항상 기타 가방과 함께 다녔다.
고단한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주로 노래했고, 글도 진중하게 써야 했으며 강의는 무거웠다.
내 몸을 통해 증언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혼자 서기 어려운 슬픔의 몫을 감당하며 살았고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슬픔에서 왔으니 슬픔으로 가는 길목에서 머뭇거리지 않게”해 달라는 기도를 중얼 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에게 주는 상(賞)이 필요했다.
사진은, 울먹이면서 노래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밤새워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뭇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나에겐 유일한 장르이다.
시베리아와 바이칼 중앙아시아를, 그리고 한반도 남쪽의 전국을 다니며 남긴 풍경들은 어디서든 문득 튀어나와 불안한 나를 안심시켰다.
두 번의 사진전은 서울에서만 열었었다.
세 번째 사진전을 대구에서 연다.
은근히 불안하지만 불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여기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봐 주시는 애정 어린 시선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묵혀 두었던 낙서 중 하나를 다시 꺼내어 쓴다
“바람은 가두지 말아라”
이지상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음악 활동 시작
“조국과 청춘” “노래마을” “민족음악인협회” 등에서 활동
"에다가와조선학교" 지원모금 집행위원장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 공동대표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 이사장
"(사)희망來일"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가르치고 배운다.
음반
1998 1집 “사람이 사는 마을”
2000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2002 3집 “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6 4집 “기억과 상상”
2016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
2020 6집 “나의 늙은 애인아”
저서
2010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삼인)
2016 ”스파시바 시베리아“(삼인)
2020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삼인)
2024 ”대한민국 도슨트 13–포천“(북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