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성기자 |
2025.02.20 13:39:14
방위사업청(방사청)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에 대해 수의계약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 준 가운데, KDDX의 적시 전력화를 위해서는 방사청이 최초 제안한 공동설계·분할수의계약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다음달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을 결정한다. 이 자리에서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및 동시 건조 등 3개 방식 중 하나를 선정할 예정이다.
애초 지난해 7월 이뤄졌어야 할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은 약 8개월여 표류하면서 2030년 해군 인도를 목표로 한 KDDX 선도함은 제때 전력화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방사청은 KDDX 사업이 군사기밀 탈취 논란 등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자 당초 고려하던 수의계약 결정을 보류했다. 이후 8월말 방사청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출구전략 차원에서 ‘복수 방산업체 지정, 공동설계, 1·2번함 동시 건조’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방사청이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두 업체는 각자의 강점이 두드러진 분야를 중심으로 공동개발하는 방안으로 KDDX를 공동으로 상세설계하는 일종의 컨소시엄 형태다.
당시 이 방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복수의 KDDX 방산업체로 지정해야 하는 난관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산업부는 방사청 등과 협의 끝에 KDDX 방산업체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복수 지정했다.
이런 가운데 방사청이 수의계약으로 KDDX 사업자 선정할 경우, 또다시 업체 간 갈등과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불필요한 갈등을 막기 위해 당초 방사청이 제안한 공동설계·분할수의계약을 재고하자는 의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방사청이 두 업체의 전향적인 결정을 이끌면 가능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수의계약보다 공동설계 방안이 적시 전력화를 위한 건조 기간 단축에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의계약은 기존 로드맵대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소한 그간 지체된 기간인 8개월여 늦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반면 공동개발 방안은 양사가 협력을 통해 상세설계 기간을 단축하고 1·2번함을 동시 건조하기 때문에 적시 전력화에 더 적합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방산업체들이 협력해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장보고-Ⅲ급 잠수함의 경우, 고난도의 중형 잠수함을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협업으로 기본설계를 진행한 바 있다. 2008년 2월부터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직원을 파견, 부산에 공동 사무실을 열고 5년여간 기본설계 공동작업을 수행했다.
영국 무적함대의 자랑으로 내세우는 퀸 엘리자베스 항모도 공동개발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영국은 해군 사상 최대급 함정인 ‘퀸 엘리자베스호’(6만5천t급) 제작을 위해 1999년 BAE 시스템즈(당시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와 탈레스 그룹(당시 톰슨-CSF)을 컨소시엄 최종 후보로 선정했으나 결국 탈레스 측 설계를 채택했다. 하지만 영-불 간의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2007년 에어크래프트 캐리어 얼라이언스(Aircraft Carrier Alliance)을 만들고 컨소시엄(밥콕 인터내셔널, 탈레스 그룹, A&P그룹, 로사이스 조선소, 영국 국방부, BAE 시스템즈)에 사업권을 줬다.
이후 이 사업에 참여한 세계적인 방산업체들이 연합해 두 대의 최신예 항모를 건조해 1번함인 퀸 엘리자베스는 2017년에 취역했고, 2번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2019년 12월에 취역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10년대 프랑스(Naval Group), 이탈리아(Fincantieri)가 공동개발한 FREMM 호위함이 대표적이다. 양국 뿐만 아니라 방산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과 기술 공유를 통해 사업을 추진해 2012년 성공적으로 초도함을 건조했다. 현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각각 8척씩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특히 해당 모델로 해외 수출에서도 성공적인 협업 사례를 이끌었다. 프랑스 주도로 2008년 모로코에 1척, 2015년 이집트에 2척을 수출했고 이탈리아 주도로는 2020년 미국 FFG-62(Constellation class) 모델로 20척, 이집트에 2척, 2021년 인도네시아에 6척을 수출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나라 정부·기업 간에도 공동설계를 통해 내로라하는 함정 건조의 선례가 많다. 국내업체 간에도 공동설계가 접근 불가의 영역은 아니다”며 “앞으로 K-해양방산의 미래를 위해서 ‘원팀’ 구성이 시급하다. 우선 KDDX에서부터 팀웍을 발휘하는 방안으로 정부와 업체들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한편 공동설계는 법적 근거가 없고 리스크가 많아 실현 가능성은 크지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과학기술통신법상 ’공동 투자‘는 한마디로 협약의 형태로 실행하자는건데, 시제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전력화를 전제로 하는 함정을 ’협약‘을 맺고 또다시 예산을 쏟아부어서 업체간 공동으로 변경하자는 것은 방위사업법 체계를 흔드는 사업방식”이라며 “그렇게 하려면 KDDX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수립할 2018년 당시부터 협약을 맺고 사업을 했어야지 실제 설계와 함 건조를 눈앞에 두고 공동설계를 하자는 것은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CNB뉴스=손예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