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송언석, 광복절 경축식 이어 DJ 추도식도 ‘냉랭한 신경전’
鄭 “내란 척결” vs 宋 “야당 말살”…여권 지지율 하락, 우려 확산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16주기를 맞이한 18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김병기 원내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그리고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천하람 원내대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여야 정치권에서 대거 자리한 가운데 추도식이 거행됐다.
또한 대통령실 강훈식 비서실장과 우상호 정무수석 등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김원기·임채정·문희상·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 지사와 노재헌·김현철·노건호 씨 등 전직 대통령 자제들도 추도식에 함께해 DJ 정신을 기리며 추모했다.
이날 한미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의 실시로 직접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재명 대통령은 강 실장이 대독한 추도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혹독한 시련 속에 피어난 인동초(忍冬草)이자 대한민국의 과거와 오늘, 미래를 지켜낸 한 그루 거목(巨木)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김대중이 키워낸 수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을 믿고 흔들림 없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잘 사는 나라’,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나라’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추모위원장인 우 의장은 추도사에서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의 회오리 속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구한 것은 역사와 국민이었다”며 “모든 정치는 역사와 국민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 의장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관계를 갈등과 대립에서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으로 전환시켰다”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통합, 번영을 위해 일본 정치인들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여야 의원들의 DJ 정신을 이끌어야 할 민주당 정 대표와 국민의힘 송 비대위원장 등 거대 여야정당의 수장들은 지난 광복절 경축식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으나 서로 악수는 커녕, 대화나 눈길 조차 주지 않은 채 상대를 겨냥한 날 선 발언으로 일관했다.
먼저 민주당 정 대표는 추모사에서 “1980년 광주가 2024년 12·3 내란을 몰아냈다”면서 “국민주권주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이미 우리 국토 곳곳 거리와 식당에서 피어나 있다. 누가 완전한 내란 종식 없이 이 사태를 얼버무릴 수 있겠는가”라고 국민의힘을 겨눴다.
이어 정 대표는 “김대중이란 거인은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생 헌신한 지도자로서 당신은 떠나셨지만, 당신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 땅의 민주주의를 키워낼 것”이라면서 “오늘 당신이었다면 진정한 용서는 완전한 내란 세력 척결과 같은 말이라고 하셨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힌 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는 악수했으나 송 위원장과는 인사 없이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국민의힘 송 비대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했던 ‘정치보복은 없다’는 약속을 대통령 재임 중에도 지켰다”며 “이러한 리더십이야말로 오늘날 정치권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가장 귀중한 유산”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송 비대위원장은 애초에 원고에 없던 문장까지 추가한 “특히나 집권당이 야당을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고 말살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특검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야당 당사를 침입해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현실 앞에 김 전 대통령의 포용과 관용의 정치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행사장 객석에서는 “조사나 받으라”, “조용히 하세요” 등의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나 참석자들은 추도식 이후 김 전 대통령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하고 분향했다.
이처럼 대화의 문이 닫힌 냉랭한 여야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은 앞서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회 광복절 경축식 행사장에서 이미 노출된 바 있다. 당시에도 나란히 앉았던 양당 대표는 악수나 대화를 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같은 거대 여당 대표의 강경 일변도는 민심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여권 내부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이 대통령이 최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콕 집어 “(검찰 개혁에 대한) 최대한 속도를 내더라도, 졸속이 되지 않도록 잘 챙겨달라”, “민감한 핵심 쟁점이 있다면 더 많은 공론화 작업으로, 더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사실상 속도조절을 당부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정 대표가 추석(10월 6일) 밥상에 검찰청 폐지 법안을 올리겠다고 ‘전광석화 검찰개혁’을 공언한 상황에서, 온도차를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19일 CNB뉴스와의 통화에서 “‘집권여당은 당원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당 원로들의 말을 되새기라는 게 지지율에 나타난 민심”이라며 “국민들이 정권 교체 시작이 됐던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지율 하락세를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