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지로 혼자 있기를 선택한 하루는 그냥 흘려보내는 1년의 세월과 같아”
(연극 ‘다락방’ 대사 中 일부)
지난달 2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 ‘다락방’의 막이 올랐다. ‘히키코모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번 작품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진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응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날 배우라는 직업은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그 감정을 무대 위에 드러내며, 그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이의 공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삶이 언제나 찬란하지만은 않다. 무대 뒤편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며, 화려함 이면에는 늘 ‘생계’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연극배우들의 평균 연봉은 약 134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직업군 가운데 하위권에 속하는 수준으로, 불안정한 수익 구조 속에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는 어떨까.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6일, 다락방의 기획자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최준구 씨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2023년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로 데뷔한 이후 디오스미오 작·연출을 비롯, 다수의 웹드라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고 있다.
다음은 최 배우의 일문일답.
Q1. 이번 공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락방은 일본에서 발생한 ‘히키코모리’ 문제를 모티브 삼아 제작한 연극이에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역시 사회적 고립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 이를 무대에서 조명하고자 기획했습니다”
Q2. 대학로 극단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
“극단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돼요. 배우들이 스태프와 기획자의 역할까지 병행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대관료와 제작비 부담 역시 크다 보니 늘 빠듯하게 꾸려갈 수밖에 없죠”
Q3. 극단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아시다시피 생계 문제가 가장 커요. 연극으로 얻은 수익은 다음 공연에 재투자되는 구조라 이윤이 남진 않고요, 오히려 지출이 더 많아 사비를 보태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배우가 많습니다”
Q4. 청년 배우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청년 지원 사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아요. 선정 기준이 모호해서 극단이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조금 더 다양한 극단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Q5.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관객 앞에서 무대를 올린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이에요. 경제적으론 힘들어도 무대에 선다는 경험이 주는 만족감과 설렘이 배우들의 꿈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Q6.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미우는 전문 연출이나 스태프 없이 배우들이 모여 만든 극단이에요. 배우들만으로 양질의 연극을 제작해 나가며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기준을 세워나가고 싶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꾸준히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극단으로 발전하고 싶습니다”
전망은 ‘明’...과제는 ‘多’
다행히 공연예술 산업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가 공개한 티켓 판매 데이터를 보면, 2024년 연극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151.7% 증가하며 뚜렷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제78회 토니상에서 6관왕을 차지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대학로에서 시작된 창작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공연예술계 전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잖아 보인다. 연극배우는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일부 지원만 받을 수 있을 뿐, 소득 불안정에 대한 제도적 보장은 미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연습 공간과 공연 시설도 부족해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뻗어가는 ‘K-콘텐츠’의 근간에는 연극이 존재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타로 성장한 배우들은 ‘희곡(연극 대본)’을 통해 연기를 시작하며, 글로벌 감독으로 발돋움한 봉준호 역시 무대와 연이 깊다.
이처럼 한국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청년 연극인의 자유로운 창작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또 다른 봉준호 감독이 발굴되고, 제2의 토니상 수상작이 제작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CNB뉴스=이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