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영풍 측의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가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대상인지를 두고 MBK·영풍과 고려아연 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은 이미 공정위로부터 ‘영풍 기업집단’의 소속회사로 지정돼 있으므로 새로운 기업결합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풍이 15% 이상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인 상황에서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추가 취득은 기업결합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법조계에서는 공정위가 직권 심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현 경영진이 행사하고 있는 경영권과 지배관계(지배권)가 MBK 중심으로 재편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즉 경영권과 지배권이 의결권 및 인사권 행사를 주도하는 MBK중심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지배관계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고려아연과 영풍 두 회사가 90% 넘게 점유하고 있는 아연 시장을 비롯해 각종 비철금속과 고려아연이 유일하게 생산하는 희소금속 시장의 ‘독점 및 경쟁제한성’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검토(기업결합 판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공정위는 기업결합심사 실무상 '지배관계의 형성 여부'와 '관련 시장의 획정', '경쟁제한적 부작용의 발생 여부' 등 세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약해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독과점 형태로 공정한 거래 질서가 제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다.
특히 지분 취득에 따른 지배관계 변동은 제품의 생산량과 가격 변동을 가능케 해 시장 상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공정위가 고려아연 적대적 M&A 사태에서 지배권 변동 여부를 주시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일각의 분석이다.
공정위 고시인 '기업결합 심사기준'에 따르면 MBK·영풍처럼 공동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주식 또는 의결권의 보유비율이나 임원의 지명권 보유 여부 등을 기준으로 지배관계 형성을 판단한다.
MBK는 영풍이 이미 최대주주로 단일한 지배력(지배관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결합심사 필요성이 없다는 주장이지만, 법조계에선 MBK의 지배권 형성에 주목하고 있다. 즉 MBK와 영풍간 '공동협력계약'에 따르면 MBK가 더 주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돼있고, 이사회 장악 후 임원에 대한 인사권 역시 MBK가 갖기로 한 만큼 MBK가 고려아연에 대한 새로운 지배권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MBK 김광일 부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상 경영은 회사의 전문 경영인들이 하게 되고, 인사권에 대한 리드는 MBK가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MBK가 영풍과 연합해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게 될 경우, 고려아연에 대한 지배관계는 MBK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새로운 지배력이 형성되는 만큼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설사 MBK나 영풍에 기업결합 '신고 의무'가 없더라도 시장에서 제기되는 경쟁제한 우려를 근거로 공정위가 직접 직권심사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면, 국내 아연시장 가격 및 생산 결정권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므로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경쟁 체제가 유지되던 국내 아연 시장이 MBK·영풍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구조로 재편될 경우 아연과 희귀금속류 공급망에 끼치는 여러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가격 상승은 물론 철강·자동차·건설 등 2차 산업이 사모펀드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모펀드 특성상 수익성 극대화와 출자자들의 이익회수가 우선인만큼 산업 안정성이나 국가 경제 영향 등은 뒷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