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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가족 분쟁에 멍드는 전문경영인체제…한미약품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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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4.10.16 09:36:39

멀고 험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길
통상의 재벌가 경영권 분쟁과 성격 달라
배수진 친 송영숙 회장, 변화 의지 천명
모녀 vs 형제, 임시주총서 2라운드 대결

 

고(故) 임성기 창업주의 아내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경영 은퇴와 지분매각을 선언하며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시작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와 핵심사업회사인 한미약품 간 불협화음이 반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마침내 지주사가 한미약품의 결재 전산망까지 마비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약업계 ‘빅5’ 중 하나인 이 거대기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CNB뉴스가 사태의 향배를 집중 취재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지주사가 계열사(자회사)들과 협의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예 계열사의 비용집행을 막아버린 경우는 첨 본다. 서로 법인이 다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다”(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

한미약품그룹의 전산망을 운용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가 최근 한미약품의 결재 시스템을 중단시킨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보직이동, 채용, 승진 등 인사발령은 물론 사업비용 집행까지 막아 버린 것이다.

또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지난 8월 28일 새 조직을 신설하며 이모 전무와 권모 전무를 각각 인사팀장과 법무팀 담당으로 발령냈지만, 이들에게 지난달 월급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사이언스는 새로운 조직이 사용할 별도의 사무공간도 승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결재하지 않은 사항들이 마치 한미약품 대표의 승인이 난 것처럼 처리된 경우까지 발생했다. 한미사이언스가 지난 5월 박재현 대표 결재 없이 A씨를 한미약품 부사장에 선임한 것. A씨는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 고(故) 임성기 창업주의 두 아들인 임종훈·임종윤 형제 편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인물이다.

 

현재 한미사이언스는 사내 전산망에서 박 대표의 글쓰기 기능을 삭제하고, 최종결재자(박 대표) 지위를 중간결재자로 바꿔놓은 상태다.

한미약품 측은 “비상식적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한미사이언스에 공문을 보내고 이사회를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무리 같은 기업군으로 묶여 있다지만 엄연히 각각 법인이 다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이는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으로부터 인사, 총무, 관재 등의 업무를 위탁받는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측은 업무를 위탁받은 한미사이언스가 위탁계약 범위를 넘어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미사이언스 측은 “지주사 체계 출범 이후 한미약품의 주요 사안은 지주사와 협의 후 진행했는데, 최근 한미약품이 홍보, 인사 등을 독단적으로 시행해 제지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현이 가져온 ‘나비효과’



한몸이나 다름없던 양사가 이처럼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2020년 8월 임성기 창업 회장 별세 후 발생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송영숙 회장의 뜻에 따라 한미약품의 독립경영을 시도하고 있는 박재현 대표.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진통으로 해석된다.

한미약품그룹은 2020년 9월 임 회장의 후임으로 부인인 송영숙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을 그룹 회장에 선임했다. 이후 몇년 간 별 잡음없이 경영상태가 유지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3월 정기주총에서 박재현 한미약품 부사장이 한미약품 대표에 선임된다. 박 대표는 팔탄공단 공장장, 제조본부 본부장 등을 거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주주들로부터 누구보다 한미약품을 잘 이끌 적임자로 판단됐다. 박 대표 취임 후 한미약품은 분기마다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한미약품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한 송 회장은 지난 7월 8일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을 체결해 지분 일부를 신 회장에게 넘겼다. 이로써 송영숙·임주현(송 회장의 딸·한미그룹 부회장)·신동국 ‘3자연합’이 결성됐다. 이들과 우호세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합치면 약 48%로 과반에 가깝다.

송 회장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임성기 선대 회장의 뜻을 가장 잘 아는 두 대주주(송영숙·신동국)가 다음 세대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대주주들은 이사회를 통해 이를 지원하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로 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예술가 송영숙’, 재벌경영과 맞지 않아



재계에서는 송 회장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 선대 회장의 유지도 유효했겠지만, 송 회장 자신의 예술가적 성향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송 회장은 대학 시절 사진동호회 ‘숙미회’ 활동을 시작으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사진계와 호흡해 왔다. 그동안 직접 사진 작업을 하면서 연 개인전도 부지기수다.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엔장 수상, 202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 부문 수상, 2023년 문화예술발전 유공 옥관문화훈장 수훈 등 뛰어난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송영숙 회장은 남편의 별세로 부득이 그룹 경영을 이끌게 됐지만, 실은 50년 넘게 사진작가로 활동해온 예술인이다. 송 회장이 사비를 출연해 서울 삼청동에 건립한 미술관 ‘뮤지엄한미’. (사진=김민영 기자)

2003년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 설립을 주도했으며, 2022년에는 서울 삼청로에 사비를 출연해 600평 규모의 미술관인 ‘뮤지엄한미’를 건립했다. 남편(임성기 창업주)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 때 투병 중이던 남편과 같이 본 하늘을 담은 작품 ‘Another…Meditation 4’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송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지목한 박 대표는 송 회장의 뜻에 따라 지주사로부터의 독립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관리본부에 인사·법무 조직을 별도로 신설하는 등 그룹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송영숙 회장의 세 자녀들. (왼쪽부터) 임종윤·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이사,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임종윤·종훈 형제는 송 회장이 추진 중인 한미약품의 독립경영(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송 회장의 뜻은 두 아들의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형제인 임종윤·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는 박 대표의 시도를 지주회사에 대한 ‘항명’으로 판단해 지난 8월 박 대표의 사장 직위를 전무로 강등했다. 이후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가 형제 측이 낸 안건을 부결해 박 대표는 대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결재 전산망을 마비시켰다.
 


어느쪽이 그룹 장악? … 장기전 갈 수도



결국 송 회장 측(3자연합)과 형제는 다음달 28일 예정된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서 표 대결로 맞붙을 예정이다.

현재 지분율은 송 회장 6.16%, 임주현 부회장 9.7%, 신동국 회장 18.93% 등 3자연합 측이 약 48%를 갖고 있다. 반면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각각 12.46%, 9.15%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특수관계인(자녀 등) 지분까지 합치면 29.7%다. 지분 상황만 놓고 보면 3자연합 측이 경영권을 장악하기에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사회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송 회장 측 4명, 형제 측 5명으로 송 회장 측이 밀리는 상황이다.

송 회장 측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사 총수를 현행 9명에서 11명으로 늘리는 임시주총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임 부회장과 신 회장을 추가로 이사에 선임해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사회 구성 비율로 볼 때, 송 회장이 요구한 안건이 1차 관문인 이사회 문턱을 넘기 힘든 상황이며, 이에 맞서 송 회장 측이 법원에 ‘임시주총 허가 신청’을 내게 되면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다 형제 측이 한미약품 측에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박 대표 해임안건도 변수다.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편에서는 양측 이사들 모두로부터 신임이 높은 신 회장만 추가로 이사에 선임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이사회 구성이 5대 5 동수가 돼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뉴스에 “이번 사태가 송영숙 회장이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여타 재벌가 분쟁과는 성격이 다른 면이 있다”며 “특히 송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우호세력(신동국)에게 지분을 양도하면서까지 전문경영체제에 대한 진정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형제 측 세력 중에 이탈표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오너 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결과에 따라 다른 재벌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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