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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MZ 회장님’ 시대 왔지만…여전한 ‘경영세습’ 꼬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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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4.09.10 09:50:37

젊은 오너 전성시대…70~80년대生 318명 달해
선대시절 권위·형식 탈피…격식 벗고 적극 ‘소통’
문화 변해도 ‘세습’ 여전…전문경영인체제 요원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오른쪽)이 지난달 1일(현지시간) 파리 앵발리드에 있는 연습장을 찾아 김문정 여자 양궁 대표팀 코치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한양궁협회 제공)

1970년 이후 출생한 40~50대 젊은 오너가(家) 회장들이 재계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60대 이상이 회장·총수가 되어 그룹을 이끌었지만 연령대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직원들과의 소통 방식, 기업문화 등도 젊은 트렌드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 세습, 총수 일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여전하다. CNB뉴스가 동전의 양면 같은 이들의 두 얼굴을 들여다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요즘은 민머리가 대세다. 지난번에 서원이를 데리고 어디 가다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데 너는 왜 머리를 밀고 그러냐’고 했더니 서원이가 ‘머리카락은 안 물려 주셨습니다’라고 하더라”

지난 2019년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당시 40세)와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의 결혼식에서 박 대표의 아버지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건넨 말이다. 좌중은 와 하고 웃음바다가 됐고 신랑신부도 웃음을 터트렸다. 재벌가 최고경영자의 헤어스타일이 ‘민머리’인 것도 놀랍지만 아버지의 유머도 수준급이라 재계에서 두고두고 당시 결혼식이 회자됐다.

두산 오너가(家) 4세인 박 대표의 ‘민머리’ 파격은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 보면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재계 오너들의 행보가 과거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변했기 때문.

이들은 ‘총수 일가’(지분 세습에 의해 기업을 지배하는 대주주 일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소통’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고객과 직원으로부터 민원을 듣는 수준이 아니라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통해 경영전략을 세운다.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SNS,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파리 그랑팔레에페메르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외 누비며 현장行…SNS·유튜브가 ‘무기’



실례로 대한양궁협회장이기도 한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70년생)은 지난달 파리올림픽 때 양궁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현지 연습장을 수차례 방문해 선수들과 격없이 소통했다. 멋스러운 중절모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정 회장의 모습이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 회장은 양궁 국제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격려하고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한국팀은 세계 최초 양궁 5개 전종목을 석권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68년생)도 파리올림픽 기간 동안 현지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활약했다. 비즈니스 파트너, 정·관계 및 스포츠계 인사들과 연쇄 회동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함께 IOC 위원장과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주최한 ‘파리 올림픽 개막 전야 만찬’에 참석했다. 파리 그랑팔레 관중석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전을 지켜보며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오상욱을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작년 11월 KBO 한국시리즈 1차전 kt위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리는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8년생인 구광모 LG 대표는 재계에서 소통의 대명사로 꼽힌다. 2018년 LG그룹 회장에 취임한 직후 임직원들에게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회장’이 갖는 권위보다 ‘대표’라는 수평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구 대표는 문자나 이메일 등으로 임직원과 격없이 소통 중이다. LG그룹 내에는 구 대표의 문자를 받은 임직원이 한둘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또한 혼자서 LG전자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가 직원들을 격려하거나, 그룹 구단인 LG 트윈스를 응원하러 야구장을 찾는 모습도 목격된다.

그룹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선 40대 오너도 있다. LS그룹 오너가(家) 3세인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 사장(79년생)은 지난 5일 첫 공식 석상에 나서 주목받았다. 구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LS전선 상장 계획,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전략, 최근 대한전선과의 다툼 등에 대해 답했다. 구 사장은 구자엽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로, 2022년 1월 LS전선 대표에 오른 뒤 지난해 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백팩을 메고 출퇴근하며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신입사원들과 계급장 떼고 토론을 벌이는 회장님의 모습이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들은 모두 40~50대 젊은 오너들이다. 과거 베일에 가려있던 전(前) 세대 회장님들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구본규 LS전선 사장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전선과의 다툼 등 민간한 사안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LS전선)
 

재벌가 젊어졌지만…지배구조는 옛 그대로



이같은 기업문화의 변화는 재계 전체 연령이 크게 낮아진 데서 기인한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최근 국내 주요 200대 그룹과 60개 중견·중소기업에서 1970~1980년대생 오너가(家)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임원으로 활동하는 오너가 인물은 318명에 달했다. 이 중 공식적으로 ‘총수’(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 집단의 동일인)에 해당하는 회장·의장·대표는 31명이다.

1970년대생 총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1970년생),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1972년생),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1972년생),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1973년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1976년생), 구광모 LG그룹 대표(1978년생) 등이다.

1980년대생 회장은 허승범 삼일제약 회장(1981년생), 박주환 티케이지휴켐스 회장(1983년생), 서준혁 소노인터내셔널 회장(1980년생) 등 3명이었다.

부회장 타이틀을 단 1970년 이후 출생 오너가 임원은 52명이었다. 작년의 39명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이들 중에는 1974년생이 7명으로 가장 많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 김석환 한세예스24홀딩스 부회장,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 서태원 디아이동일 부회장,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부회장,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등이다.

1980년대생 부회장에는 정기선 HD현대 부회장(1982년생), 홍정국 BGF 부회장(1982년생),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1984년생), 서준석 셀트리온 수석부회장(1987년생) 등 12명이 이름을 올렸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난 7월 경기 성남시 HD현대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함정기술연구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약품 사태가 말하는 것…재벌경영 ‘동전의 양면’



이처럼 젊은 오너들이 기업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있지만, 그렇다고 경영권 세습 관행이 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재벌 3세대, 4세대들이 경영수업을 받으며 회사 요직을 섭렵하고 있으며, 경영수업이 끝나면 CEO(최고경영자)급으로 등극하고 있다.

오너 일가의 기업지배는 빠른 의사결정, 외부세력으로부터의 기업 보호 등 장점도 많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더디게 만들거나 경영분쟁 우려 등을 잠재하고 있다.

실례로 최근 한미약품 사태에서 보듯,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진화는 진통이 커 보인다. 한미약품 창업자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차남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한미약품의 독자경영(전문경영인 체제)을 선언한 박재현 대표의 사장 직위를 전무로 강등했다. 한미약품 이사회가 지난 2일 현 박재현 대표 체제 유지를 의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오너 일가의 눈밖에 난 전문경영인(박재현)의 향후 운명이 어찌될진 알 수 없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뉴스에 “총수 일가가 대를 이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은 사실상 지나갔다”면서도 “한미약품 사태에서 보듯 그렇다고 재계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표면적인 변화와 함께 지배구조도 함께 변해야 진정한 주주친화 기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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