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이자 장사’.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꼬리표다.
일단 은행은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빌릴 때는 싸게, 빌려줄 때는 비싸게 이자를 책정해 예대마진(예금-대출 간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가계대출은 폭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20조8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5000억원 늘었다. 사상 최대치다. 일반신용대출·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대출) 등 기타대출은 1000억원 줄었지만 주택매매거래 증가, 대출금리 하락, 정책대출 공급 지속 등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한 달 새 5조6000원 증가했다. 지난 4월부터 은행권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은행들이 벌어들인 전체 이자순이익(이자수익-이자 비용)은 막대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한국씨티은행, 카카오뱅크, NH농협은행, Sh수협은행, IBK기업은행 등 18개 은행들의 이자순수익은 2020년 39조221억원에서 2021년 43조4367억원, 2022년 53조2263억원, 2023년 56조7198억원으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해에는 1분기에만 14조4825억원을 거뒀다.
이자 부담은 상당하다. 통계청의 ‘2024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조세, 연금기여금, 사회보험, 이자비용, 가구간이전 등)은 107만6000원으로 전년동분기 대비 1.2% 증가했다.
경상적인 소득에 부과되는 직접세(소득세 및 재산세, 자동차세 등)인 경상조세(-6.5%) 지출은 줄었지만 주택‧신용 담보대출이자, 학자금 대출이자 등 이자비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2%로 상승한 영향이 컸다.
은행 측에서야 불법적인 영업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누적된 대출 규모가 커졌으며 정부 정책에 따랐을 뿐이었다고 항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이자 장사’를 통해 과도하게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이자 폭탄 등으로 인해 가계는 물론 동네·골목상권이 부담으로 짓눌리고 있지만, ‘은행’ 그들만의 호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이러한 은행의 ‘이자 장사’와 서민의 ‘이자 폭탄’을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가산금리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를 더한 다음 영업상황에 따른 우대금리 등의 추가 조정을 거쳐 확정된다. 여기서 기준금리는 개별은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COFIX(은행연합회가 국내 8개 은행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산출하는 은행권 자금조달비용지수)나 금융채 등의 시장금리를 활용한다.
하지만 대출 기준금리에 가산하는 금리 즉 ‘가산금리’는 업무원가(인건비·물건비), 리스크프리미엄, 법적비용, 목표이익률(마진), 신용프리미엄, 자본비용 등을 감안해 각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산정한다. 가산금리 책정은 영업기밀로 은행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과거 금융감독원의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에서 일부 가산금리 산정·부과 및 우대금리 운용 등이 체계적·합리적이지 못한 사례가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가산금리 항목들이 각각 어떤 비율로, 어떻게 계산돼 결정되는지 금융소비자들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고금리 시대를 맞아 깜깜이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투명화시켜 가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에 관련법이 속속 제출됐었지만,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빛을 보지 못했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세부항목에 대한 대외 공시를 강화토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재시동을 걸고 있는 상태로 추이는 지켜볼 일이다.
반면,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시 은행 간의 공동행위를 촉발, 오히려 이자율 상승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은행상품별 대출금리가 같아짐에 따라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도 있다는 이견이 있다.
은행의 리스크 회피 태도로 인해 기존 대출자에 대한 대출 불가나 대출한도의 축소, 고신용 대출 수요자에 대한 유치경쟁 심화 등도 나타날 수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금리가 수요 및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변수라는 점에서 금리산정의 세부방식을 현행과 같은 자율규제가 아닌 법률로 규율하는 것이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할 여지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출 가산금리의 산출방식이 복잡하고 상품별‧차주별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는 점에서 가산금리의 원가공개가 실제 소비자 편익을 크게 높이지 못하는 반면, 은행의 경영 자율성에 대한 침해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당사자인 은행으로서는 행여 가산금리에 손을 대 사업의 근간이 흔들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자율성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대출 시장의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다.
이처럼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지만, 금리를 낮춰 서민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데 무게추가 실리고 있다.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지만 현재 은행들이 대출 수요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고 금리산정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은 계속 쌓여 나갈 것이다.
‘은행의 경영 자율성’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으로 인해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서 지난해 야당발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 움직임이 불었을 때, 은행권에서는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토해내야 할 금액(지난해 기준 기여금 1조9000억원 추정)과 견준 2조1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은행권 민생금융지원방안’을 금융당국의 입김에 더해 ‘자의 반 타의 반’ 내놓은 바 있다.
현재 일부는 집행 완료했고, 계속 ‘민생금융지원’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일회성에 불과하다. 이에 가산금리 산정 공개와 더불어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운영되는 햇살론의 재원인 서민금융보완계정에 은행이 출연하고 있는 비율을 현행보다 2배가량 높이도록 한 유사 횡재세인 ‘서민금융지원법 일부개정안’도 야당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생(相生)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은행이 별다른 노력 없이 손쉬운 예대마진을 통해 거둔 이익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성과급 규모는 2020년 1조4747억원, 2021년 1조7826억원, 2022년 1조9595억원으로 증가 추세며 초과이윤을 향유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초과이윤에 대한 사회적 환원은 확대돼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과 소상공인 등 금융 취약계층에게 보다 적극적인 동행이 요구된다.
고객 중심을 부르짖는 은행. 그렇다면 상생이다. 일회성에 그칠 것인가. 장기적인 제도화로 보편타당한 상생금융이 당연시되도록 할 것인가. 각설하고 최근 금융당국에서는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줄이기 위해 부랴부랴 시중은행들을 압박, 줄줄이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은행의 종노릇’, ‘갑질’, ‘독과점’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 ‘돈놀이’에 질타를 가하던 정부였지만 한편으로는 ‘신생아 특례대출’ 등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확장 정책을 계속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였고, 이제와서는 가계대출 축소를 위해 은행들로 하여금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어 오락가락 갈팡지팡이다.
“빚 내서 집 사라”더니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라”.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뱉지 마라. 빡빡하게 짓눌리는 현실속에서 숨통을 트여주길 바란다. 결국, 고금리 신음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것은 대다수 서민이다.
(CNB뉴스=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