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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과 국제사법재판소, 그리고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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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정호기자 |  2024.07.10 09:23:15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소장하고 있는 1907년 헤이그에서 열렸던 제2차 만국평화회의 초청국 명단. 대한제국(Coree)이 47개 초청국 중에 참가 여부를 답변하지 않은 7개국으로 기재되어 있다. 지난해 서울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린 이준 열사 유해 봉환 60주기 특별전에서 공개되었다. (사진=손정호 기자)

우연히 소설책 한 권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젊은 작가인 김철의 ‘헤이그의 비밀 : 이준 열사 사망 미스터리’이다. 지난해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특사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던 제2차 만국평화회의(Hague Peace Conference)에 참석하려다가 실패하고, 현지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준 열사의 유해 봉환 6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 특별전이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렸고, ‘이준 열사 추모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던 터라 눈길이 갔다.

김철 소설가의 ‘헤이그의 비밀 : 이준 열사 사망 미스터리’는 이준 열사의 사망진단서가 조작되었고, 타살로 운명을 달리한 것이라는 가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 이준 열사의 죽음과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활동이 연관되어 있는 점 등에 주목한다.

당시 이준, 이위종, 이상설 등 고종의 특사 3명은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초대를 받았던 건 사실이다.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소장하고 있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 초청국 명단에 대한제국(Coree)이 47개 초청국으로 참가 여부를 답변하지 않은 7개국 중 하나로 기재되어 있다. 고종도 초대장을 받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서방 주요 국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대한제국 특사들을 초대하고 이를 명단에 기입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들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특사들이 주장하는 대한제국의 독립, 국왕인 고종의 온전한 승인이 없는 일본의 무력에 의한 부당한 한일 합방 시도를 영어 기사로 썼을 것이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신학대에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공부한 김정기 작가의 ‘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남 : 우리가 몰랐던 두 사회 진화론자들의 만남과 회심’은 당시의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정당인 반혁명당을 이끌었던 아브라함 카이퍼가 수상으로 정부를 이끌 때, 외무부 장관이 대한제국을 만국평화회의에 초대하고, 이준 열사의 현지 장례식에도 핵심 인물이 참석했다고 한다. 동양과 대한제국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당시에 카톨릭과 기독교를 탄압하지 않았던 일본을 지지했다고 한다. 고종의 특사였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 선교사 등의 노력으로 일본이 조선에 가하는 끔찍한 폭력에 대해 알고, 점차 대한제국에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정약용 선생과 형제인 정약전 선생이 천주학에 대한 박해로 유배를 가고 정약종 선생이 1801년 순교한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 역사에도 외교적 실수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김철 소설가의 ‘헤이그의 비밀 : 이준 열사 사망 미스터리’(왼쪽), 김정기 작가의 ‘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남 : 우리가 몰랐던 두 사회 진화론자들의 만남과 회심’. (사진=손정호 기자)

일본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만국평화회의는 평화궁(Peace Palace)에서 열렸는데, 이곳에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와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가 운영되고 있다. 상설중재재판소는 1899년 제1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조약에 의해 설치되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1945년 유엔 창설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 평화궁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미국의 철강 기업가 앤드류 카네기 재단의 기금 기부로 건립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주요국들이 기증한 미술품으로 채워져 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기구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본은 1909년에 쿄토에 있는 기모노 장인의 기업에서 ‘늦봄과 초여름의 수많은 꽃과 새’라는 제목의 9개 패널을 연결한 대형 태피스트리를 제작해 기증했다고 한다. 5년 동안 4만 8600명이 투입되어 완성한 이 작품은 현재 평화궁 2층의 일본실(Japanese Room)에 있다.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이 기울인 노력을 보여주는 이 예술 작품은 현재도 평화궁에서 유일하게 개별국가의 이름으로 명명된 일본실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약 100년 뒤인 2014년에 이병석 국회 부의장이 ‘웃는 해치-문화의 꽃’ 조각 작품을 평화궁에 기증했다. 평화궁 1층 로비에 있다고 한다. 해치는 선인과 악인을 판단하는 재주가 있어서 잘못한 사람을 발견하면 뿔로 받아넘긴다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다른 국가에 대한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려 했던 국제사회의 첫 번째 공동 노력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식민 지배를 묵인하는 비밀 협약을 체결하고,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우리나라 특사들이 참석하지 못하면서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게 된다. 이후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과 하와이 침공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인류의 대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평화궁(위), 평화궁 일본실에 있는 일본이 기증한 대형 태피스트리 ‘늦봄과 초여름의 수많은 꽃과 새’(아래 왼쪽), 평화궁 로비에 있는 대한민국이 기증한 ‘웃는 해치-문화의 꽃’ 작품. (사진=평화궁 공식 홈페이지 캡처)

만약에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 3명이 참석해 일본의 국권 침탈이 절차적으로 부당함을 알리고 독립을 인증받았다면, 이런 대형 비극이 발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도 천주학을 믿었던 정약용 선생 형제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적 지위를 인증받으려는 노력을 더 기울였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을까. 인류가 보다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네덜란드는 한국과 멀지만 가까운 나라이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해 ‘하멜 표류기’를 남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헨드릭 하멜 서기관으로 인해, 당시 일부 네덜란드인이 귀국을 거부하고 조선인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외국인 혼혈은 네덜란드로 기록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당시에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한 유엔 연합국 중 한 곳이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4강에 올린 거스 히딩크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네덜란드인이다. 최근 제1차 한-네덜란드 경제안보대화가 열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 장비를 판매하는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세계 1위 기업인 ASML은 경기도 화성에 1조원 규모의 차세대 연구개발(R&D) 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

헤이그 평화궁에서 대한제국의 특사들이 우리의 독립, 일본의 절차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국권 침탈 시도가 부당함을 제대로 알렸다면 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에 의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일본의 폭력적인 조선 식민 지배,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등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제 평화궁에 일본실이 존재하는 게 원폭 문제에 대한 윤리성 판단으로 온당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언젠가는 한국실(Korean Room)이 설치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노력 속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유럽의 관계가 이전보다 돈독해지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이념 차이에 따른 갈등의 폭도 줄어들어 세계 인류 공영의 평화가 보다 확장되기를 기도해본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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