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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덕희의 분투는 앞으로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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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4.07.01 09:21:28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시민덕희>는 답답해서 내가 뛰는 영화다.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결말을 알고 본 거나 마찬가지였다. 뉴스에서 이미 접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전개가 이뤄지기 전까지 주먹만 한 밤고구마를 입에 욱여넣은 것처럼 내내 답답했다. 덕희는 범인에게 3200만원을 뜯겼는데, 그전에 집안이 거덜난 상태였다. 집에 불이 났기 때문이다.

범인은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을 쥐어짰다. 대출을 미끼로 그야말로 탈탈 털었다. 절박한 덕희는 사리 분별력이 떨어져 있었다. 범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놈 목소리’가 결국 잡히는 걸 아는데, 덕희가 한숨을 쉴 때마다 덩달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덕희가 돈을 뜯겼다는 걸 알고 주저앉을 땐 같이 다리가 풀렸다. 이 영화 장르가 드라마가 아닌 히어로물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응징의 파괴력이 커서 사이다를 맛봤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SF보단 다큐에 가깝다.

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한 덕희는 범인을 제 손으로 잡으러 중국으로 향한다. 내부 고발자가 어렵사리 건넨 단서를 조합해 그곳이 ‘미싱 공장’임을 알아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공장이 일흔 여개라 한다. ‘대시민’ 덕희는 집요함을 무기로 샅샅이 뒤지고 마침내 찾는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장삼이사는 할 수 없을 만큼 극적이니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수사 난도가 높은 지능형 범죄다. 일단 당하면 그다음은 아득하다. 피해자는 조급함 속에 검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피싱으로 박살나는 건 통장 잔고만이 아니다.

그러니 예방이 최선이다.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피싱 방어전이 연대의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다. 민관이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가 지난달 체결한 ‘AI·데이터 기반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상호 업무협약’이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내용을 보면 실로 유기적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정부가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이 보유한 실제 보이스피싱 통화 데이터를, 보이스피싱 예방 AI를 개발하는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먼저. 이동통신사 등 민간 기업은 받은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이나 성능 테스트에 활용한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신고로 수집한 통화 음성데이터를 국과수에 제공하고, 국과수는 이를 비식별화(정보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처리하는 과정)해 민간에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당장 눈이 가는 곳은, SK텔레콤이 부처 간 협업의 첫 번째 성과로 개발하는 보이스피싱 탐지·예방 AI 서비스다. 여기에는 통화 문맥을 토대로 보이스피싱 의심 여부를 실시간으로 판별해 본인이나 가족에게 알림을 주는 기능이 포함된다. 해당 서비스는 이르면 하반기 출시된다고 한다. ‘그놈 목소리’를 AI가 낚아채 알려준다면 이보다 강력한 방패는 없을 것이다.

덕희는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스스로 잡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한다. 칭다오에 기어코 건너 간 것도, 거기서 72개로 추린 보이스피싱범의 근거지를 전부 돌기로 마음먹은 것도 자신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라건대, 민관이 머리를 맞댄 만큼 이를 계기로 보이스피싱을 막는 견고한 장치가 마련됐으면 한다. ‘시민’ 덕희의 외로운 분투는 앞으로 없어야 한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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