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한국현대사와 얽힌 SK家 성장史
노태우 통해 집권한 YS, SK 밀어준 정황
재판부, 노소영 기여 부분 과다계산 인정
한국이동통신 인수후 盧역할 범위가 쟁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소송이 3라운드를 향해가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무려 1조4천여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해놓고 다시 일부 계산오류를 인정해 향후 재판이 더욱 복잡해졌다. 두 사람 간의 이번 재판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이 자리잡고 있다.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대통령이 SK그룹이 성장하는데 있어 얼마만한 역할을 했느냐가 재판의 핵심이기 때문. 특히 주목되는 점은 오늘날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다. 30년 넘게 계속된 이 논란을 CNB뉴스가 심층취재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김옥곤·이동현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천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금액으로 역대 이혼재판 사상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 난 점을 지적하며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 등을 언급했지만 이는 위자료와 관계된 부분이다.
기존 판례를 보면 이혼할 때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부부가 결혼한 이후 함께 일군 공동 재산으로 위자료 개념과는 다르다. 한쪽에서 상속·증여받은 재산은 통상적으로 분할 대상에서 빠진다.
따라서 노 관장은 그동안 혼인 이후 형성된 SK가(家)의 재산 중 상당부분이 부친인 노 전 대통령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사돈 기업인 SK의 뒤를 봐줬기 때문에 회사가 급성장한 것이기에, 이에 상응하는 재산을 떼달란 달란 얘기다.
재판부가 1조4천여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 한 것은 결국 노 관장의 이런 주장을 상당부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SK “이통사업 자력으로 일궈…盧와 무관”
재계에서는 SK의 당시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로 보고 있다.
얘기의 발단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시절에 만나 애정을 키우던 중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88년 9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정보시스템(1990년 5월), 대한텔레콤(1991년 4월)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1992년 1월 신년사에서 ”정보통신 사업을 다음 사업 영역으로 선정해 그룹의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그해 8월 SK는 정부(체신부)로부터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가 야당의 강한 반발로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이 모든 일은 노 전 대통령 임기 중에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말 사업자 선정 절차가 다시 시작됐고, 정부는 특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선정 절차를 위임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최종현 회장은 입찰을 포기했고, 대신 대한텔레콤을 앞세워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민영화에 참여, 지분 23%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인수했다.
SK 측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SK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마치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가 있었던 것처럼 법원이 곡해했다는 것이 SK 측 주장이다. 오히려 ‘대통령 사돈 기업’으로 온갖 오해를 받아 불이익을 받았다며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최종현 회장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4년 전인 1984년 그룹의 정보통신사업 진입을 준비하며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는 등 꾸준히 이 분야 진출을 준비해 왔다.
최태원 회장 또한 정경유착이 아닌 임직원들의 땀으로 현재의 SK그룹을 만들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6공의 후광’ 등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SK의 명예가 실추됐고 재산 분할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까지 발견됐다”고 항변했다.
최 회장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단순히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선대 회장 때부터 기업 스스로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SK그룹을 이뤘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SK 구성원과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종찬 “盧가 YS 밀어줘 경선 거부”
→YS집권때 SK, 한국이동통신 인수
하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김영삼 정권이 탄생한 배경에 노태우 정권이 있다는 점에서다.
노태우·김영삼 두 사람의 관계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맞물린다. 대통령 간선제로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의 벽에 부딪히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때 노태우에 맞서 야당(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민주화 정국을 이끌던 이가 김영삼이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정치적 연대를 선언하며 손을 잡았다.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3당통합으로 이른바 ‘보수대연합’이 이뤄진 것. 이렇게 탄생한 민자당의 대선 후보가 김영삼이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후보를 적극 밀어줬다는 점이다.
당시 다수 언론의 기록을 보면, 노 대통령 측근들은 “YS(김영삼)에게 권력을 넘기면 반드시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김영삼의 당내 경쟁자였던 이종찬 후보가 경선거부를 선언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 후보는 당내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1992년 5월 돌연 기자회견을 열어 “상상을 뛰어넘는 외압으로 자유경선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훼손됐기에 경선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사퇴로 헌정사상 첫 집권당 내 자유경선이 무산돼 김영삼이 단독으로 출마, 후보로 낙점됐다.
이후 이종찬은 당신 경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경선 체제로 돌입하자마자 이게 무슨 경선인가 싶었다. 한 예를 들어, 부산 경남의 대의원 수가 990명인데, 실제로 대회가 열리는 극장엘 가봤더니 딱 30명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대회가 있는 극장에는 간판도 달아주지 않고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중략) 한 번은 강원도 강릉에서 대회가 있을 때였다. YS(김영삼)가 갔을 때는 대의원의 97퍼센트가 출석을 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반수 정도가 왔다. 게다가 도당위원장은 아예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 불공정 경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를 두고 상당히 고민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마음을 정해놓고 경선이라는 연극을 통해 YS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연극에 조연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MBC 라디오 <이제는 말한다> 중-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을 통해 사실상 정권 연장에 성공한 셈이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김영삼 정권을 통해 사돈기업인 SK를 챙겼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수십년 간 한국 재벌을 연구해온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전 수원대 교수는 CNB뉴스에 “YS(김영삼)가 노태우·전두환 신군부를 12.12군사반란 등 혐의로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권 말기에 이뤄졌다”며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는 YS집권 초기에 이뤄졌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노태우·김영삼)의 관계가 나쁠 게 없었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로 볼 때, 이통사 정도는 충분히 (노 대통령이) YS에게 부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자수성가형’ 아닌 ‘승계상속형’
판결금액 축소 가능성…‘盧 후광’ 논란은 계속
하지만 설령 노 전 대통령과 YS 사이에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 치더라도, 이 점이 오늘날 최태원·노소영 이혼재판에서 “1조4천여억원의 재산을 노소영 관장에게 떼 주라”는 판결로 연결되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 든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SK㈜ 주식을 부부공동재산으로 판단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재산 분할 비율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현재 SK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인 SK C&C(옛 대한텔레콤)의 가치 증가분 중 선대회장의 기여 부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기여도가 선대회장의 기여도보다 훨씬 크다고 전제하며 최 회장에 내조한 노 관장에게 재산의 35%(약 1조3800억원)를 떼주라고 판결한 것. 한마디로 최 회장을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단정하고, 부인인 노 관장이 처가를 통해 최 회장에게 도움을 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대 회장 시기 주식가치 증가분이 125배이고, 최 회장 시기 증가분은 35배에 불과하다는 것이 SK측 주장이다.
SK 측은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최 회장이 취득한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 선대 회장 별세 이후 시기의 주식 가치,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식 가치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이같은 결론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 항소심 판결문 중 일부를 수정하는 경정결정을 내렸다. SK 측은 오류에 의해 재산분할 금액이 산정된 것이므로 항소심 판결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향후 재판에서 재산분할 금액은 원심보다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별개로 노 전 대통령과 SK가(家) 간의 관계에 관한 진실공방 또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산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CNB뉴스에 “SK그룹이 최종현 선대회장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면 이를 물려받은 최태원 회장은 ‘승계상속형’ 사업가가 되므로 노 관장이 주장할 몫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노 관장의 부친(노태우)이 SK 성장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결국 이번 재판은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하되,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30여년에 걸친 SK의 성장사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단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기에 복잡한 회계산정 방식, 치열한 논리 싸움, 양측의 여론전이 더해져 지루한 공방이 전개될 전망이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