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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식콜콜] 비빔면에 넣은 딸기…팔도의 실수일까 한 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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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4.03.11 10:06:33

봄 맞아 나온 딸기비빔면 맛보니
매콤하게 출발해 단맛에서 정차
분말과 액상처럼 잘 섞이지 않아
그러나 주안점은 ‘괴식 아닌 쾌식’
‘괄도 네넴띤’처럼 유쾌함에 방점

 

팔도가 200만개 한정 출시한 '팔도비빔면 봄에디션'. 분홍색 딸기수프가 추가된 것이 기존 제품과 차이다. (사진=선명규 기자)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먹는다”고 했다. 마음, 나이, 겁, 심지어 욕까지. 그러나 먹는다고 하면 으뜸으로 떠오르는 것은 음식이다. 우리는 뭣보다 음식을 먹는다. 궁금해서 알아봤다. 뭐든 먹는 한국인을 유혹하는 먹을거리는 지금 뭐가 있을까? CNB뉴스 기자들이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고 시시콜콜, 아니 식식(食食)콜콜 풀어놓는다. 단, 주관이 넉넉히 가미되니 필터링 필수. <편집자주>​


 


음식끼리 잘 맞을 때 조합이 아닌 궁합이 좋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 훗날에도 그대로 있길 바라는,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맛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보면 고구마와 동치미가 있고, 요새는 들기름과 막국수가 그런 호흡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한 쌍은 아리송하다. 매콤한 비빔면과 상큼한 딸기다. 비빔면 명가(名家) 팔도가 봄을 맞아 ‘딸기 비빔면’(팔도비빔면 봄에디션)을 내놓았다. 따로 보면 그 맛이 상상되나, 섞였을 때의 케미(화학 반응)는 도통 연상이 안 된다. 푸릇한 이 계절 성사된 둘의 만남은 그저 조합일까 지수 높은 궁합일까? 판단은 미뤄두고 온라인몰에서 ‘주문하기’를 눌렀다.

‘대란’까진 아닌 모양이다. 200만개 한정 판매라는데 품귀 현상은 없었다. 배송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포장지부터 정체성을 한껏 드러낸다. 분홍빛 벚꽃과 불그스름한 딸기 그림이 크게 박혔다. 내용물은 기존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딸기수프(5g)가 추가로 들어있을 뿐이다. 작은 차이인데, 이 분홍색 가루를 넣어서 일어나는 변화는 크다. 중독성 짙은 알싸한 맛에 단맛 한 스푼이 더해진다. 매운 기운을 느끼려는 찰나 딸기수프가 혀끝을 건드리며 진화된다. 디저트로 따로 준비한 딸기맛 과자를 함께 먹는 느낌이다. 짐짓 오묘해서 신기하지만…. 흠, 신기했다. 씹을수록 드는 당혹감이란.

 

'팔도비빔면 봄에디션' 제품 디자인에는 딸기, 벚꽃 등 봄 관련 이미지가 적용됐다. (사진=선명규 기자)

아무리 ‘맵단’과 ‘맵짠’의 조합이 인이 박인 민족이라지만 딸기와 비빔면은 아무래도 따로 논다. 섞이지 않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낸다. 맛의 차이가 극명해서일 수도 있으나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다. 딸기수프는 분말이고 기본 소스는 액상이다. 분말수프가 뭉치기 십상이라 잘못 씹으면 강렬한 딸기향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식감도 텁텁해진다.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정성껏 비벼야 한다. 면을 씹는 와중에는 익숙한 ‘비빔면향’이 우세한데 잔향은 딸기가 오래 간다. 전체적으로 호오(好惡)가 갈릴 수 있으나 ‘오’일 경우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조리법대로 끓인 거라고 했던가. 안내되어 있다. 딸기 별첨수프는 기호에 따라 조절하라고. 뒷면에 이러한 진리가 설파되어 있다. 딸기 별첨수프를 아예 빼면 아는 맛이 된다.

 

딸기수프를 뿌리면 달콤한 딸기향이 입안에 퍼진다. (사진=선명규 기자)

 


유쾌한 시도…재미도 쏠쏠



사실 ‘딸기 비빔면’은 맛에만 초점을 둘 일이 아니다. 괴식(괴이한 음식)이 아닌 쾌식(快食)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팔도 측은 이 제품을 내놓으며 “지난해 SNS에서 화제였던 만우절 ‘딸기비빔면’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딸기 비빔면이 실존하는 줄로 아는 이들이 적잖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장난에서 시작된 일이 실제 제품 출시까지 이어진 것이다.

농담이 진담이 되자 소셜미디어는 또 다시 후끈했다. ‘이걸 진짜로 만들어?’란 반응이 줄을 이었다. 현재 화제성을 보면, 제조사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한 수가 통한 셈이다.

올해로 불혹이 된 1984년생 비빔면이 갑자기 세상에 미혹돼 흔들린 것은 아니다. 누적 판매 18억 개에 이르는 동안 유쾌한 시도가 없지 않았다. 지난 2019년 기존 제품 대비 5배 매운 ‘괄도 네넴띤’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팔도 비빔면’을 실눈 뜨고 바라보면 보일 수도 있는 글자다. 인터넷에서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쓰는 것과 비슷한 이치에서 탄생했다.

이토록 장난기 많은 비빔면의 올해 일탈에는 그러나 미소만 지어지지 않는다. 요즘 딸기 값이 금값이기 때문이다. 워낙 천정부지로 치솟아 장바구니에 쉽게 툭 던져 넣기 어렵다. 딸기 비빔면을 처음 입에 넣은 순간, 대리만족하는 기분이 들었다. 딸기긴 딸기네. 그러자 문득 헛웃음이 났다. 아무리 믿으려 해봤자 진짜 딸기가 아님을 알기에.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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