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상옥
윤 회장, 그의 뜻 잇는 다양한 활동
비비큐 후원 ‘김상옥 특별전’ 열려
열사 생애·독립史 희귀자료 총망라
할 거 많고 볼 거 많은 바쁜 시대. CNB뉴스가 시간을 아껴드립니다. 먼저 가서 눈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비비큐가 후원한 ‘김상옥 의사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김상옥 의사는 젊은 나이로 겨레를 깨우겠다는 마음으로 싸웠습니다. 이번 특별전시회를 통해 김상옥 의사를 널리 알리고 후손들과 함께 추모하며 대한민국의 정신을 살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너시스비비큐(BBQ)그룹 윤홍근 회장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김상옥, 겨레를 깨우다’(3월 10일까지 진행)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이번 특별전은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와 전쟁기념사업회(국방부 산하 공공기관)가 주최하고, 제너시스비비큐그룹과 국가보훈부가 후원했다.
김상옥 의사는 1919년 3·1만세운동이 발생하자 동지들과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을 만들어서 기관지 혁신공보를 발행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1920년 암살단을 조직, 미국 의원단 내한에 맞춰 일제 총독 등 고위관리 암살 계획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와 의열단에 참여했다. 임시정부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 1923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은신처가 발각되자 양손에 두 자루의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였다. 1000여명의 일본 경찰에 포위돼 항거하다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34세 젊은 나이에 자결했다.
수많은 기업 중에 하필 비비큐가 이 전시회에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간 비비큐가 윤 회장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정신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지난 2022년부터 제12대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윤 회장은 김 의사의 서거 100주년인 지난해 다양한 추모사업을 주도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순국 100주년을 기리는 토크콘서트를 열었고,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1 대 1000 항일 서울시가전 100주년 기념식’을 진행했다. 우정사업본부와 100주년 기념 우표와 봉투를 발행하고, 김 의사를 알리는 동화책도 출판했다.
원형 공간서 의사를 기리다
지난달 26일 기자는 김상옥 의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전쟁기념관을 찾아갔다. 국방부 청사 맞은편에 자리한 전쟁기념관 1층 원형 특설공간에서 김 의사를 기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로비와 전시장 주변에 이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과 포스터가 설치되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 청년 커플, 외국인도 눈에 들어왔다. 비비큐 측에 따르면, 전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총 5만명 이상 관람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 ‘자각, 가난의 사슬을 끊고’에서는 김 의사의 출생과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젊은 시절 김 의사는 서울 동대문교회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접하고, 철물점을 운영하며 인근에서 유일한 2층 규모 사업장으로 성장시켰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그의 가족과 당시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들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어린 여학생을 뒤쫓던 일본 헌병에게서 노획한 일본도도 전시돼 있었다.
이어진 파란색 전시 공간에서는 2부 ‘모색, 스스로 걸어간 가시밭길’을 살펴볼 수 있다. 김 의사의 항일 투쟁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의 영정사진과 간직했던 태극기, 그를 주인공으로 작성된 영화 대본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가 참여했던 독립운동단체 혁신단과 의열단에 대한 영상 자료도 상영되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벽에 있는 작은 동그란 구멍 안을 바라보니, 그와 뜻을 함께했던 남녀 동지들의 이름과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3부 ‘결전, 신화로 남은 전투’ 공간에서는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총 4개의 스크린에 빔프로젝터를 이용해서 김 의사의 의거를 다룬 애니메이션을 투영하고 있었다. 김 의사가 일본 경찰에게 쫓기다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당시 신문, 대한민국 역사문화원 원장·의병정신 선양 중앙회 회장의 인터뷰 등 다큐멘터리 영상도 이어졌다.
에필로그 ‘무모하지만 위대한 정신’에서는 순국 이후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광복 후인 1948년 열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설립한 임시정부 김구 주석, 이시영 국무위원, 조소앙 외무부장의 유묵과 사후에 수훈된 훈장 등이 유리 진열장 안에 있었다. 그의 희생을 알리는 당시 독립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 기사도 볼 수 있다. 1998년 국민 성금으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들어선 동상, 100주년 기념 행사 사진과 우표 등도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끝에는 의사가 뒷짐을 지고 있는 실물 크기 사진이 벽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 적혀 있었는데,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그의 벗이 ‘김 동지 왜 뒷짐을 지고 사진을 찍소’라고 묻자, 김 의사가 ‘나라를 빼앗기고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두 손이 부끄럽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비비큐가 김 의사를 기리는 이유는 대표적인 K푸드인 치킨을 전세계에 보급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비비큐는 ‘세계 최대·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 세계 1등 기업이라는 꿈’을 비전으로 두고 있다. 윤 회장은 대한빙상경기, 한국외식산업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며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비비큐 관계자는 CNB뉴스에 “김상옥 의사는 낮에 사업체를 운영하고 밤에 독립운동을 하며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라며 “윤홍근 회장 또한 사업가로서 이런 정신과 역사를 이어받아 미래 세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념사업회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