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으로 야외활동 늘자
전자기기에 ‘발’ 달려는 시도 이어져
‘스크린·스피커는 고정’이란 인식 깨
들거나 끌고 다닐 수 있어 휴대성↑
가전 시장의 변화는 급격하다. 높아지는 소비자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한다. 촘촘한 주기로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들이 이를 증명한다. 올해도 가전 시장에는 기발함과 신기술을 두른 제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CNB뉴스가 2023년 세상의 빛을 본 신제품을 중심으로 올해의 가전트렌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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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겨울용 에어컨? 계절 잊은 그대에게
‘고정하시옵소서’는 사극에만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올해 가전업계에도 이 통촉(洞燭)을 촉구하는 말이 자주 나왔다. 무엇이 그리 옮겨 다녔느냐, 묻는다면 단연 첫손에 꼽히는 것은 스크린이다.
벽면에 쏜 채로, 혹은 어딘가에 붙박이로 둔 채 바라봐야 했던 화면이 일탈을 감행했다. 속박을 벗어던지자 마침내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LG전자가 올해 출시한 포터블 스크린 ‘스탠바이미 Go’는 네모난 상자와 한 몸이다. 달팽이처럼 딱딱한 겉옷을 입고 있다. 상단에 손잡이가 달려서 드는 순간 가방이 된다. 그다음부터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007 가방을 열듯이 개봉하면 27형 터치 화면, 스피커 따위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감춰진 스크린이 알을 깨고 이윽고 알몸을 내보이는 순간이다.
좀체 고정이 안 된다. 거실, 침실 등 집안을 비롯해 공원, 캠핑장 같은 야외도 나갈 수 있다. 전원 연결 없이도 최장 3시간 동안 사용 가능한 내장 배터리를 탑재한 덕분이다. 천둥벌거숭이 마냥 나돌아다니는 또 다른 원동력은 튼튼함에서 나온다. 미국 국방성 내구성 테스트의 11개 항목(저압 2종, 고온 2종, 저온 2종, 먼지, 진동, 염무, 충격, 낙하)을 통과했다. 내구성을 입증한 것이다.
분주한 사용자의 말도 잘 듣는다. 음성 지원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말로 채널 변경, 음향 조절, 콘텐츠 검색 등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자유를 얻은 것은 기기뿐만이 아니게 된다.
‘100형 스크린’ 이동 가뿐…야외서도 게임을
삼성전자는 이동성에 재미를 더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초 포터블 스크린 ‘더 프리스타일(The Freestyle)’을 출시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180도까지 회전이 가능해 벽·천장·바닥 등에 최대 100형(대각선 254cm) 크기의 화면을 띄울 수 있는 것이 특징. 830g의 가벼운 무게로 휴대성까지 확보한 것이 인기 요인이었다.
올해 나온 ‘더 프리스타일’ 2세대는 게임 콘텐츠란 무기를 추가 장착했다. 기존 스마트 TV에만 탑재했던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 ‘삼성 게이밍 허브’를 새로 접목해 어디서나 100형 대화면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외신도 이 기능에 주목했다. 미국의 뉴스위크는 “더 프리스타일 2세대가 메모리 증가로 더욱 빨라진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게임 스트리밍 기능으로 뛰어난 가치를 제공한다”며 이전 모델 대비 향상된 점을 강조했다.
이 매체는 또 ‘더 프리스타일’ 2세대를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로 선정하며 “스트리밍이나 게임을 간편하게 즐기고자 하는 사용자에게 최적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캐리어 가방 같은 스피커, 어디나 파티장
1980~90년대 청춘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흥이 많은 남자가 커다란 ‘붐 박스’(휴대용 음향 기기)를 어깨에 걸머지고 음악을 틀면, 어느새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주로 디스코에 가까운 음악이 영상을 채우면, 그 순간 거기가 뒷골목이든 번화한 거리든 파티장으로 변신한다.
여기서 분위기를 띄우는 핵심 요소인 음악 재생 장치가 시대를 넘어 더욱 강력해졌다. LG전자가 올해 여름 선보인 ‘LG 엑스붐’은 포터블 파티스피커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상단에 손잡이, 하단에 바퀴가 달려있어 캐리어 가방처럼 끌고 다닐 수 있는 스피커다. 내장 배터리(음량 50% / 음장 및 라이팅 효과 Off 기준)를 통해 20시간 연속 재생이 가능한 것이 특징. 높은 이동성을 갖고 있어 실내외에서 두루 제 역할을 한다.
특히 ‘파티’에 제격이다. 우선 청각적 측면. 고음용 트위터 2개, 저음용 우퍼 1개 등 2.1 채널에 최대 250W의 사운드를 구현한다. 8인치 대형 우퍼는 드럼, 베이스 기타가 내는 저음 사운드를 풍부하게 표현한다.
다음은 시각적 측면. 스피커이지만 보는 맛도 있다. LG 엑스붐 앱을 통해 음악 비트에 맞춰 우퍼 조명의 색상과 점멸 패턴을 바꿀 수 있다. 스피커 상단에 있는 픽셀 조명으로 40자 이내의 영어 텍스트나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띄우는 효과도 가능하다.
이처럼 올해 가전업계에 뜬 ‘이동성’이란 화두는 유례없는 ‘격변’이 끌어냈다. 이동에 제약을 뒀던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접어든 것이 결정적 계기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CNB뉴스에 “오랜 시간 집에만 머물게 했던 족쇄가 풀리자 야외활동이 크게 늘었다”면서 “한동안 억눌렸던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전자업계에서도 기기에 ‘발’을 달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