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명분 쌓이고 몸값 올라가는 골든타임
尹에 실망한 여권표 흡수하기도 좋은 시점
“잘해야 2중대일 뿐”…순수성 의심 시선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오는 27일 탈당을 공표하면서 ‘27’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궁금증을 부르고 있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이날을 택한 점을 ‘신의 한 수’로 꼽는다. 이유가 뭘까? (CNB뉴스=도기천 기자)
이준석 전 대표는 이미 지난 10월부터 여러 자리에서 ‘12월 27일 신당설’을 주장해왔다. 이는 ‘27일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했으나, 창당발기인 모집, 시도당 창설 등을 감안할 때 시간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커졌다.
이에 이 전 대표는 ‘27일은 (창당이 아닌) 탈당’이라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공개했다. 11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탈당을 하지 않고 창당할 수 없다. 27일 탈당 후 1월 안에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전 대표는 ‘천하용인’도 함께 탈당한다고 말했다. 천하용인은 허은아 의원,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김용태 전 최고위원,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이 전 대표의 최측근들이다.
또한 당원 모집에 관해서는 “저를 지지해 국힘에 들어간 분들이 많다. 신당 온라인 당원 숫자가 탈당 숫자랑 같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행법상 창당을 하기 위해서는 전국 5개 이상 지역의 시·도당 설치,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 현재 온라인으로 모집한 창당 발기인 성격의 ‘이준석 연락망’에 약 6만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탈당 세력까지 더해지면 10만명 안팎의 당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이 전 대표 측 계산이다.
이유1 명분이 차고 넘치는 시기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27일’을 디데이로 잡은 점을 ‘신의 한 수’로 보는 분위기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이 즈음이면 탈당 명분이 쌓일 대로 쌓인다. 이미 국민의힘은 중진 용퇴와 험지 출마론 등 공천개혁을 요구한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당지도부의 압력에 부딪혀 지난 6일 조기 해산하면서 내홍에 휩싸인 상태다.
당내 비윤계로 꼽히는 하태경 의원은 “쇄신 대상 1순위는 김기현 대표”라며 사퇴를 촉구했고, 서병수 의원은 “이 꼴로 계속 간다면 총선 필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친윤계 초선 의원들은 이들을 향해 “자살 특공대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퇴출 대상자가 적반하장”이라고 맞섰다.
여기에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참패 가능성을 언급한 내부 분석 자료까지 외부에 알려지면서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이러한 당내 혼란이 이 전 대표가 탈당하는 27일경이면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CNB뉴스에 “당 혁신 실패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데도 당지도부도, 대통령도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며 “아직 이준석 신당 얘기를 대놓고 꺼내는 의원은 없지만 상황에 따라 누가 (신당으로) 이동할지 모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의원은 “민주당 계열 인사들의 신당 창당은 많지만 보수 쪽에는 이준석 말고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추후 보수대연합을 전제로 한다면, (이준석 신당이) 부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은 여권 분열처럼 보이지만 향후 대선 정국에서 국힘과 신당이 합쳐져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유2 선수들 간 합종연횡 마무리 시점
‘27일’을 신의 한 수로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여야 할 것 없이 합종연횡 결과물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시기라는 점에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류호정 정의당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중 류 의원과 금 전 의원은 지난 8일 공동창당을 선언했고 오는 17일 창당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이끄는 신당에 민주당 현역의원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27일 전후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원래 창당이라는 것이 시기가 어중간하면 효과가 감소된다. 이준석 신당이 공식 창당하는 내년 1월 말이면 여러 창당 주자들 간의 교통정리는 물론 양당의 공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27일이 탈당 시기로는 적절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유3 ‘용산 리스크’의 시작점
이밖에도 ‘27일’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날이 이른바 ‘용산 리스크’가 본격화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수사를 위한 ‘쌍특검’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이상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만큼 오는 28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 특검법이 통과될 경우,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 주도로 특검이 진행되면 대통령 부부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라 국힘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의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민여론은 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7~8일 전국 성인 유권자 1033명을 여론조사 한 바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이 70%였던 반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20%에 불과했다. (100% 무선전화 인터뷰 조사 방식. 응답률 10.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조사개요는 한국갤럽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따라서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가 된 것.
이 전 대표가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탈당일(27일)을 정한 건 아니지만, 이 전 대표의 탈당과 창당 시점이 특검 시기와 맞물리게 된 셈이다. 이 전 대표가 그동안 윤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해 왔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실망을 느낀 여권 지지층 일부가 이준석 신당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외에도 12월 27일은 이 전 대표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입문 요청 전화를 받고 수락한 날이라는 점에서, 이 전 대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날이다.
창당 의심 눈초리도 여전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공천 국면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의 배경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 개정 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 정개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원은 CNB뉴스에 “비례정당(위성정당) 허용 여부가 내년 총선을 앞둔 선거법 개정의 최대 쟁점인데, 비례정당을 허용하자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라며 “그렇다면 이준석 신당이 국힘의 비례정당이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느냐”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내세운 신당이 아닌, 처음부터 ‘여당의 2중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