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울시 마곡에 있는 LG사이언스파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표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원자와 분자, 생태계의 순환을 상징하는 것 같은 로고의 디자인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LG사이언스파크는 LG아트센터, 서울식물원과 근접해 있는데,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공간이었다. LG사이언스파크는 2018년 문을 연 곳으로 LG그룹의 연구개발(R&D)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LG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 CNS, LX하우시스 등이 입주해 있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간은 LG연암문화재단에서 운영하며, 지난해 말 이곳으로 이전해 새롭게 문을 연 LG아트센터 서울이다. LG아트센터 서울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로, 아트 라운지에 들어서니 그가 직접 그린 건물 스케치 그림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물의 교회, 빛의 교회, 뮤지엄 산, 글라스 하우스 등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데, 그의 얼굴과 건물 모습도 일부 살펴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LG아트센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LG사이언스파크가 지향하는 인간의 미래 삶을 위한 기술적 혁신과 더불어,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건물과 설치미술 작품 때문이었다. LG아트센터 서울에는 포크 캐논(FOG CANNON), 메도우(MEADOW)라는 이름의 설치미술 작품이 있다.
포크 캐논은 예술가 듀오인 A.A. 무라카미가 설치한 것으로, 뮤지컬과 연극 등 공연을 하는 공간의 다리 부분에 있다. 동그란 안개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오는데, 인공 안개나 천사의 입김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은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만 작동한다.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사라질 수도 있지만, 예술이 우리 삶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점, 우리의 삶과 예술도 이런 이유로 아름답고 숭고하고 소중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았다.
메도우는 스튜디오 드리프트의 작품으로, LG아트센터와 지하철 마곡나루역을 연결하는 공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허공에 철줄로 연결된 색색의 꽃 모양이 펴지거나 접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기도 했다. 여러 송이의 꽃 모양 작품은 화담숲에서 관리하는 토종 꽃 7종류(미선나무, 진달래, 탐라산수국, 꽃창포, 남산제비꽃, 두메부추, 섬기린초)의 색상을 이용해, 중간 이동통로를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포털공간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느껴졌다.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좋은 공연을 많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잠시 이 공간을 둘러보면서 러시아의 배우 겸 공연 연출자인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프랑스의 발레 안무가 앙쥴랭 프렐조카쥬가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영국의 작가 C.S. 루이스 원작의 연극 ‘스크루테이프’ 등에 대한 포스터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반기에는 우리나라 연극인 ‘나무 위의 군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크로스오버 밴드 이날치의 콘서트 등을 만날 수 있다.
LG아트센터와 가까운 곳에는 서울식물원이 있다. 마곡에 둥지를 튼 거대한 유리 온실에서 세계 각지의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와 꽃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정원을 거닐다가 작은 화분을 구입하고 도서관에서 친환경 도시에 대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식물성의 미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LG사이언스파크와 LG아트센터 서울, 서울식물원 주변으로는 강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었다. 흙길을 걸으며 야외 공원에서 나무와 꽃, 하늘과 강을 바라보고 바람을 맞았다. 나와 자연,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여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군과 남양주시에 있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두물머리, 인근의 연꽃 서식지인 세미원과 비슷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과학과 기술, 자연환경, 사람, 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 이것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평화, 유엔 헌장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발전시키는 이상적인 미래도시의 방향성이지 않을까. 그것이 사회적인 가치를 획득하며, 자연적으로도 생태 순환적이고, 인간에게 순기능을 하면서,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고 돌본다면 좋지 않을까. 윤리적으로 건전하고 이상적이며, 사랑의 가치를 키운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앞으로 아시아와 다른 지역 국가들에도 조화로운 공존과 평화에 기반한 기술과 자연, 사람, 예술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면, 인류는 지구에게 불청객이 아니라 친구로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불가능하고 풀어낼 수 없는 숙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