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정치제도로 국민 피곤케하지 말고
국민 개개인에게 암호화된 권력 부여해야
근래에 들어와서 의원내각제 개헌론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정권 말기나 되어야 개헌론이 흘러나올 법한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이 사안이 불거지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몇몇 거물급 정치 중진들과 원로들의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말이다.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대 대통령 11명 가운데 무려 8명의 전직 대통령이 권력형 부정부패나 독재 등과 연관되어 탄핵 되거나 투옥되는 등 대통령중심제의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어왔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권력 분산과 책임정치 실현이라는 명목 아래 의원내각제가 논의되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내각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하겠다. 이 제도는 대체로 국회의원들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정치 집단이 국민들의 대통령 선출권과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어 분명 국민들의 저항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 뻔하다. 권력 분산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도 어긋난다.
물론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국가의 정치가 좌우되는 대통령중심제의 폐단이 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엘리트와 정치문화의 근간이 다져지지 않은 지형에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유럽의 정치 선진국 등 전 세계 약 30여 개 국가가 의원내각제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동유럽의 경우, 정치경제가 엉망인 것을 미루어 보더라도 내각제 자체가 정치 선진국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의원내각제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서로 결탁해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하면 언젠가는 정치의 귀족화와 금권화의 폐해는 오로지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다. 견제할 세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내각제가 시행될 경우에는 정치귀족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모든 권력을 정당이 움켜쥐고 끝없이 권력을 장악해나가면 국민들은 영원히 권력망 내부로 진입할 수 없게 된다. 그러기에 많은 국민들은 정치귀족화와 정치금권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중심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이 제도 하에서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실제로 자신의 표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원내각제에서는 국민들이 원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을 수 없는 구조이기에 특정 정당 소속 소수의 의원들이 지속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팩트는 대통령중심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제든, 현존하는 어떠한 정치 유형도 만병통치일 수 없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이미 40년 전에 유엔미래포럼본부 밀레니엄 프로젝트(Millennium Project)에서 미래의 권력 공식을 발표한 바 있다. 내용인즉, 농경시대의 권력은 종교가, 산업시대의 권력은 정부가, 정보화시대의 권력은 테크기업이, 머잖아 실현될 의식기술(Conscious Technology) 시대에서의 권력은 국민 개개인이 갖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권력의 변천 과정은 종교에서 정부로, 정부에서 대기업에로의 이동을 거쳐, 가까운 미래에는 국민이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을 가지려면 중앙통제가 없는 탈중앙 분산 금융 시스템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이러한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정부나 각종 기관의 권력보다 국민 개개인의 권력이 우선시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국민들의 의지와 합의만 있으면 의회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시대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아고라광장에 모여 국가의 정책과 그와 관련된 모든 아젠다(agenda)를 직접 다루었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탈중앙화 자율조직이 정치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구현되면 지금과는 판이하게 국가의 공동체 역할은 크게 위축되면서 지금의 집중화된 권력과 정치 구조가 대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모든 수준의 거버넌스(governance)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은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구병두((사)한국빅데이터협회 부회장/ 전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주)테크큐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