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전…샐러리맨 신화 현재진행형
한·미·일 ‘전기차 동맹’의 키맨으로 부상
광양·포항에 세계유일 이차전지벨트 구축
강대국들 ‘보호무역 장벽’은 넘어야할 산
55년 역사의 포스코그룹이 전면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고유 영역인 철강·제철을 넘어 수소·에너지 등 신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전기차의 핵심 소재인 ‘이차전지’에 주력해 한·미·일 ‘전기차 동맹’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다. 지휘봉은 뼛속까지 ‘포스코맨’인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쥐고 있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세계철강협회 회장에 오르는 등 샐러리맨 신화를 만든 그의 뒤를 밟아 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재계 순위 5위권 입성, 포스코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 포스코홀딩스(지주사) 본사 포항 이전, 경상북도-포항시와 이차전지 협력체계 완성, 일본 혼다 자동차와 양해각서(MOU) 체결, OCI와 손잡고 배터리 분야 합작법인 설립, 광양산업단지에 10년간 4조원대 투자해 이차전지 벨트 구축….
최근 1년 안팎에 추진된 일들이다. 이는 1968년 국영기업 포항종합제철로 창립된 이래, 반세기 동안 변함없이 국내 1위 철강기업 자리를 지켜온 ‘포항제철’의 시대가 저물고 ‘시즌2’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고유영역인 ‘철강’을 초월한 미래먹거리는 수소·리튬·니켈 등 소재산업이다. 이 중에서도 전기차의 핵심 소재인 이차전지는 포스코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대표적 신성장 사업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철강·비철강·신사업 비중을 4:4:2로 조정할 계획이다.
지휘봉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잡고 있다.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당시 포항종합제철)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재무실장, 정도경영실장, 가치경영센터장, 포스코건설 경영전략실장, 포스코대우 기획재무본부장 등을 거친 ‘토종 포스코맨’으로, 그룹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고 있다.
최 회장은 회계·원가관리부터 감사·기획까지 제철소가 돌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업무를 두루 경험한 ‘재무통’이다. 특히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 포스코켐텍 등에서 일하며 철강 이외 분야에서 전문성을 길렀다는 점에서 신성장동력 발굴에 최적화된 인물로 평가된다. 전략가이면서도 강한 도전의식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승부사’로도 불린다.
실제로 최 회장은 2015년부터 포스코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가치경영센터를 이끌며 그룹 구조조정을 추진해 회사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회장에 오른 뒤에는 그룹 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며 포스코를 친환경소재기업으로 키워왔다.
최 회장의 이런 리더십은 업계 안팎에서 높은 평을 받고 있다. 2021년 회장 연임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세계철강협회장에 추대됨과 동시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트가 주관한 ‘제10회 Global Metals Awards(글로벌 메탈 어워즈)’에서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트는 철강·원자재·에너지 분야 세계 최대 정보분석 기관이다. 명실공히 세계에 ‘대한민국 철강왕’의 이름을 알린 것이다.
‘철강왕’ 최 회장, 100년 먹거리로 ‘이차전지’ 낙점
최 회장은 이런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이차전지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이차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반 건전지와 달리 충전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충전 물질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뉘지만, 현재 이차전지 시장에선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리튬이온은 가벼운 데다 고용량 구현에 유리해 휴대폰·노트북·컴퓨터 등 가전제품에서부터 전동 공구, 전기차, 발전소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인다.
최 회장이 이차전지로 승부수를 띄운 이유는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 핵심원자재법(CRAM) 등 해외 규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함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올해 1210억달러(약 160조원)에서 오는 2035년 6160억달러(약 823조원)로 무려 40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최근 시행된 IRA법에 따라 북미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IRA법은 전기차를 북미에서 만들거나, 미 FTA체결국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을 40% 이상을 사용할 시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포스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리튬, 니켈, 흑연 등 이차전지 소재 원료부터 전구체, 양·음극재, 차세대 이차전지용 소재까지 생산·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눈길을 받고 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의 경우 전기차용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지난 1월 말 삼성SDI와 2032년까지 향후 10년간 총 40조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주가가 크게 뛰었다. 포스코스틸리온, 포스코엠텍, 포스코디엑스,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홀딩스 등도 전기차 테마로 묶여 기대감이 커진 상태다.
이미 손에 잡히는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인 혼다와 손을 잡은 것이 대표적. 양측은 지난 11일 전기차 사업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고 전기차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사는 ▲양·음극재 공급 협력 검토 ▲전고체전지용 소재 공동 기술 개발 추진 ▲전기차 비즈니스-글로벌 리사이클링 사업 연계 방안 ▲친환경·전기강판 적용 확대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둔 상태다.
글로벌 종합 모빌리티기업인 혼다와의 협력이 순조로울 경우, 북미 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혼다가 이미 포스코그룹의 전기차 사업 핵심 파트너인 LG에너지솔루션과 북미 배터리 합작사 LH배터리컴퍼니를 설립한 상태이기 때문. 이에 3사가 북미에서 윈윈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래형 메가산업단지 건설 ‘전광석화(電光石火)’
이차전지 생산·보급을 확장하기 위한 국내 전초기지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전남 광양 동호안 산업단지에 2033년까지 10년간 4조4000억원을 투자해 이차전지 소재와 수소 관련 생산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정부가 최근 철강 관련 업종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한 현행 입지 제한 규정을 완화키로 하면서 부지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음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퓨처와 수소 사업을 하는 포스코홀딩스 등이 투자 주체다. 포스코 측은 생산 유발효과가 연간 약3조6000억원, 취업 유발효과가 연간 약9000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룹의 기반시설인 포항제철소가 위치한 포항시와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포항시와의 긴밀한 협력 하에 지난달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의 포항 이전을 완료한데 이어, 이번달에는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이 경상북도 및 포항시와 3000억원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은 포스코홀딩스가 실리콘 음극재 개발업체인 테라테크노스의 지분 100%를 인수해 만든 자회사로, 오는 2025년까지 포항 영일만에 연간 5500t 생산 규모의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포항에 소재를 둔 포스코퓨처엠 또한 양극재 뿐 아니라 흑연·실리콘 음극재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이차전지 전 분야 밸류체인을 구축해가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까지 6148억원을 투자해 포항 영일만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매년 4만6000t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이처럼 이차전지 사업에 빠르게 ‘올인’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미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스티븐 비건이 포스코 미국법인인 포스코아메리카의 고문 자격으로 방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비건은 포스코그룹 초청 세미나에 참석해 포스코 주요 계열사 대표들과 수소, 이차전지소재 등 미래 핵심사업을 놓고 글로벌 전략 방향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벌였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해 적극적으로 토론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포스코가 전기차 사업에 절실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글로벌 외교 통상 전문가인 비건 고문으로부터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그룹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혜안을 얻었다”고 평가했고, 비건은 “포스코그룹이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제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앞날에 장밋빛만 보이는 건 아니다. 최근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당분간 한국, 일본 등을 제외한 자국 전기차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기로 하는 등 노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펴는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 수준을 넘어 신냉전 위기로 치닫고 있는 점도 가운데 끼어 있는 한국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다.
이처럼 글로벌 상황이 녹록지는 않지만, 어쨌든 포스코로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으로 큰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계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최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어떤 결과를 일궈낼지에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CNB뉴스에 “철강 뿐 아니라 리튬, 수소, 이차전지소재 등 비철강과 신규사업을 중점 육성해 그룹의 균형 성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2030년까지 기업가치를 3배 이상 끌어 올리겠다”고 자신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