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부동산이야!!!”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지난 15년간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 저출산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파악하라”
지난달 28일 열린 올해 첫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어조는 강하고 단호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간의 저출산 대책은 사실상 완패했다. 가임기 여성(15-49세)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이르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래 가장 낮았다.
다급해진 저출산위원회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대상 자녀연령을 만8세에서 만12세로 높이고, 단축 기간은 부모 1인당 최대 24개월에서 최대 3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육아휴직 사용권을 위반하는 사업장을 제재하기 위한 전담 신고센터도 신설한단다.
하지만 이는 한때 여권 실세였던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해 저출산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내놓은 안들과 거의 유사하다. 당시 위원회는 ‘일·생활 조화 환경 조성’을 내걸고 지금과 비슷한 안들을 쏟아냈었다. 재탕삼탕 대책이 이름만 바꿔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나 전 의원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헝가리식 저출산 해법’ 아이디어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마저도 묵살했다. 헝가리식 해법은 결혼하면 초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고 첫째 아이를 낳으면 이자를 깎아주고, 둘째를 낳으면 원금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식이다. 대통령실은 정부 정책 기조와 정반대라며 사실상 나 전 의원을 경질했다.
그러다가 ‘여당이 30세 이전에 자녀 3명 이상을 낳으면 남성의 병역을 면제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황당한 얘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군 면제 받자고 자식을 셋이나 낳겠나” “현실을 무시했다” 등 비판이 쏟아졌고, 이에 국민의힘은 “공식 제안한 바 없고,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노인과 노인 돌보는 사람만 남는다?
정부·여당의 이런 오락가락, 재탕삼탕, 허무맹랑한 정책들은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통계청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만13세 이상 인구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정확히 절반(50.0%)에 불과했다. 그나마 결혼하겠다는 사람 중에서도 자녀가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65.3%에 그쳤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결혼·출산에 대한 MZ세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저출산·고령화가 가져올 문제는 실로 엄청나다.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을 것이며, 기업들은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이대로라면 50년 후에는 노인과 노인을 돌보는 사람만 존재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찐’일까?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부터 혁신해야 한다. 결혼·출산의 기본 토대가 ‘주거안정’이기 때문이다.
출산율 전국 1위였던 세종시가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특공)’이 폐지되자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7월 이 제도를 폐지하자, 이듬해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이 1.28명에서 1.12명으로 12.5% 감소한 것.
세종시에 11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여성 공무원은 CNB뉴스에 이렇게 전했다.
“세종시 특공이 폐지되면서 젊은 공무원들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특공 분양으로 세종시에 신혼집을 마련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는데 특공이 폐지된 이후로는 결혼을 미루거나 주말부부를 택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어요.”
결국 주거안정이 결혼·출산의 ‘0순위’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주거안정을 이루려면 집값이 지금보다 한참 낮아져야 한다. 지난해 서울의 PIR(소득대비 집값비율)은 18배로, 연소득 18년치를 온전히 모아야 집 한칸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방어하기 급급하다. 내놓은 대책이 대부분 다주택자·건설사 구하기다. 미계약 물량에 대한 무순위 청약 자격을 기존 무주택자에서 ‘누구나 줍줍’으로 바꿨고, 전매제한 기간을 사실상 폐지해 분양권 거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어 집사라고 권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도 유명무실해졌으며, 심지어 대출규제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까지 손본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는 모두 청년들의 내집 마련을 요원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젊은 커플들이 집을 못 구해 결혼을 미루고, 설령 집을 사더라도 급여의 대부분을 평생 빚 갚는데 쓴다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다주택자 구하기’에서 ‘집값 정상화’로 전면 수정하기 바란다. 일하는 청년들이 큰돈 빌리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결혼도 하고 소비도 이뤄져 저출산·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무주택자 청년 입장에서, 영끌족·다주택자로부터 욕먹을 각오로 외친다.
“바보야, 가장 강력한 저출산 대책은 지금의 집값을 반값으로 만드는거야!!!”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