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묘지 참배…피해자 만나 심경 밝혀
광주시민들, 음료수 건네는 등 전씨 응원
"늦게 와서 사죄 드린다. 반성하며 살겠다"
30일 광주에 도착한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 씨가 전두환 일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31일 오전 5·18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5·18 묘역을 참배했다.
전씨는 31일 오전 10시경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가 위치한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를 방문해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교생 시민군으로 활약한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를 비롯해 총상 부상자와 폭행·구금 피해자 등 5·18유족과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후 전씨는 5·18기념문화센터 인근에 있는 5·18기념공원 내 추모승화공간을 방문했다.
이곳은 광주시가 지난 1999년 5·18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만든 추모공간으로, 5·18피해 보상을 받은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 피해자 4296명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는 곳이다.
이후 전씨는 5·18단체장들과 함께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 분향 후 5·18 당시 최초 사망자인 고(故) 김경철 열사와 초등학교 4학년 희생자인 ‘5월의 막내’ 고(故) 전재수 군,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묘역 등도 둘러본다.
앞서 전두환 일가의 비리를 폭로한 전씨는 지난 27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을 출발해 다음날 오전 6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자 기다리고 있던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의해 서울청 마포청사로 압송돼 38시간 동안의 조사를 받은뒤 29일 오후 늦게 석방됐으며, 곧바로 광주로 향했다.
30일 광주에 도착한 전씨는 “태어나서 처음 와보고, 항상 두려움과 이기적인 마음에 도피해오던 곳”이라며 “많은 분이 천사 같은 마음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전씨는 “의미 있는 기회이자 순간인 만큼 최선을 다해 피해자분들, 상처받으신 모든 분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드리고 싶다”면서 “저를 포함한 제 가족들로 인해 지금까지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원한도 많을 것 같다. 늦게 와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늦게 온 만큼 저의 죄를 알고, 반성하고 더 노력하면서 살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아울러 전씨는 “5·18 단체와 31일 공식적인 만남을 할 예정인데 그 전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가지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한 뒤 곧장 호텔 로비로 들어선 뒤에도 취재진을 향해 반복적으로 90도 인사를 하기도 했다.
광주에 도착한 전씨의 임시 숙소가 광주 서구 한 호텔에 마련됐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유튜버와 시민들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전씨가 인근 세탁소를 들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자 멀리서 “전우원 파이팅” “고마워요 전우원씨”라고 그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직접 가져온 음료수를 건네는 등 일제히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했다.
8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학생 신분으로 상무관에 시신이 안치된 것도 목격했었다고 주장한 한 시민은 직접 전씨에게 말을 걸며 “어려운 것이 아니여. 얼굴 대면하고 미안하다는 말 하나만 있으면 돼여. 전두환이 못한 것을 손자가 43년 만에 해낸 것이여. 광주시민에게 손 내밀고, 죄인이라고 말하니 얼마나 기껍냐(기쁘냐)”고 격려했다.
이어 이 시민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사건이 발생했는데 ‘내가 했다’는 주도자는 없었다”며 “많은 시간이 흘러 전두환은 죽었지만 그 손주가 ‘이거는 잘못된 일이구나, 이거는 학살이었구나’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광주를 직겁 방문해주신 것에 대해서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고맙고 사과를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씨는 “넓은 마음으로 따뜻한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다. 광주시민 분들 하나같이 너무도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계신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화답하면서 “제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너무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걸어주신 모든 시민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방송에 나오다 보니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응원을 해주셨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제가 이기적인 마음, 무서운 마음에 과거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저희 가족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위주로 봤다”며 “이번에는 조금 더 피해자 분들의 입장에 서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위주로 공부하며 31일 일정을 기다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입구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지 않고 다른 평화로운 방식으로 사죄를 구하겠다 밝혔다. 땅에 묻혀 있는 이 비석을 밟고 지나는게 통상적인 참배 방식이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