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주가 ‘반토막’…앞날 예측불허
중국시장 타격에다 샴푸 논란까지 겹쳐
서경배 회장 장녀 민정씨 역할 도마 위
“오너家→전문경영인으로 전환” 주장도
연일 신저가 행진을 계속하던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마침내 10년전 수준까지 추락했다. 중국시장 악화, 염색샴푸 논란 등 국내외적으로 악재가 잇따르면서 ‘어닝쇼크(실적 충격)’가 이어진 탓이다. 이에 따라 아모레가(家)의 경영 승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난 상태다. 지난해 11월 1일 19만1000원을 기록했던 주가는 현재 9만6700원(1일 종가기준)까지 주저앉았다. 이는 10여년 전인 2012~2013년 주가와 비슷하다.
증권가에서는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키움증권은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한 9200억원, 영업이익은 62% 감소한 189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목표주가를 기존 14만3000원에서 14만원으로 내렸다.
이렇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우선 중국 내 화장품 수요 침체가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 법인 매출이 전성기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고 이런 흐름이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중국 경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다 ‘궈차오(國潮·중국인의 자국 브랜드 소비 선호)’, ‘C-뷰티(차이나 뷰티)’ 등 중화중심주의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매·마케팅 활동에 큰 도움을 줬던 중국 유명 인플루언서(왕훙)들까지 중국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받는 처지가 됐다. 결국 아모레는 3분기에만 중국 법인의 매장 수를 이니스프리 50%, 마몽드 10%, 라네즈 백화점 점포 20%를 줄였다.
끝없는 추락…오너일가 리더십에 물음표
여기에다 국내에서는 염색샴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일부 염색샴푸의 원료에 인체 위해성 성분이 들어있다고 발표하면서 소비자 우려가 커진 상태다. 현재 식약처는 염색샴푸 등에 쓰이는 76개 염모제 성분을 대상으로 정기위해평가를 진행 중인데, 아모레퍼시픽 ‘려 염색샴푸’의 일부 성분도 평가 대상이다.
허위·과장광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되는 53개 탈모증상 완화 기능성 샴푸 광고 내용을 조사한 결과, 모든 제품이 기능성 화장품 범위를 벗어나 허위·과대광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려 염색샴푸’ 광고가 의약외품·의약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거에도 아모레퍼시픽은 탈모샴푸를 탈모치료·예방이 가능한 것처럼 과장 광고해 식약처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이밖에도 지난 5월에는 아모레퍼시픽 직원 3명이 회삿돈 35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돼 재판에 넘겨지는 등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나라 안팎의 잇단 악재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진행 중인 경영승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 회장 집안은 한국 기업사(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재벌가(家)다. 고 서성환 태평양 창업주의 2남4녀 중 차남인 서 회장은 ‘라면왕’으로 불리는 농심그룹 고 신춘호 회장의 차녀인 신윤경씨와 결혼해 두 딸(서민정·호정)을 두고 있다.
이중 장녀 서민정씨는 경영승계 ‘0순위’로 꼽힌다. 1991년생인 민정씨는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핵심부서인 럭셔리 브랜드 디비전 AP팀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2017년 아모레퍼시픽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중국 장강상학원(CKGSB)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잠시 퇴사했다가 2019년 10월 뷰티영업전략팀 과장으로 재입사했다.
40대 CEO 전면 배치…서민정 경영승계 본격 시동?
민정씨가 서 회장의 후계자로 기정사실화된 근거는 뚜렷하다.
우선 민정씨는 아모레의 여러 계열사 주식을 고루 보유하고 있어 그룹 지배에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지난 1분기말 기준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7%를 보유하고 있고 계열사는 이니스프리 18.18%, 에스쁘아 19.52%, 에뛰드 19.5%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니스프리와 에스쁘아, 에뛰드는 ‘서민정 3사’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서민정 3사’를 비롯한 그룹 전반에 큰 변화가 있었다. 통상 매년 말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해온 관행을 깨고 8월 1일자로 주요계열사 3곳의 대표이사를 교체한 것.
더 놀라운 점은 새로 선임된 대표이사 모두 내부 출신으로 ‘40대 젊은피’라는 점이다. 최민정 이니스프리 신임 대표는 1978년생, 이연정 에스쁘아 대표이사는 1979년생, 유승철 코스비전 대표는 1973년생이다.
이를 두고 아모레 측은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30대인 민정씨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경영승계 사전작업'이란 말이 파다하게 퍼졌다.
여기에다 서 회장의 차녀 호정씨도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1995년생인 호정씨는 올해 만27세로 경영 일선에 나서기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최근 자사 주식 20억원 규모를 장내매수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호정씨가 회사 주식을 직접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호정씨는 2021년 2월 당시 형부였던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장남 홍정환 씨와 함께 서 회장으로부터 아모레퍼시픽 10만주를 증여받은 바 있다. 같은해 10월에는 서 회장이 강원도 양양군 갯마을해수욕장과 남애3리해수욕장 사이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직원 하계 휴양소 부지 일부(7300평 규모)를 호정씨에게 증여한 사실도 알려졌다.
금융업계에서는 주가가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서 회장의 차녀가 지분을 매입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 오너일가가 주식 거래로 차익을 실현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단순 차익을 노린 매수라는 분석에서부터 언니 민정씨의 경영승계를 측면지원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까지 분분하다.
이같은 서 회장의 '후계구도 만들기'를 두고 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아 보인다. 서 회장은 1962년생으로 경영 일선에 서는 데 무리가 없는 나이인데다, 최근 실적 악화로 후계 체제를 거론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얘기가 나온다.
민정씨의 경영 능력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뷰티영업전략팀 과장으로 재입사한 지가 겨우 3년밖에 안된데다 민정씨 입사 이후에도 회사실적이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점에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위 뷰티기업이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집안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과감한 외부수혈을 통해 글로벌 전문경영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시급해 보이며, 후계 구도의 판을 짜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