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철학을 6개 공간으로 나눠
어둠·조명 활용해 경험적 요소 강조
차(車) 없지만 음향 덕분에 ‘역동적’
움직임을 줄여야 하는 ‘자제의 시대’가 끝날 듯 끝나지 않습니다. 출타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CNB뉴스가 대신 갑니다. 재밌고 새롭고 어쨌든 신선한 곳이라면 어디든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가보니 알게 된’ 또 다른 오감의 영역이 안방으로 배달 갑니다. 이번에는 자동차 회사가 연 ‘차(車) 없는’ 이색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이동을 멈추세요. 이제부터 사진보다 동영상 촬영이 낫습니다.”
도슨트의 안내가 끝나자 열 명 남짓한 관람객이 휴대전화의 촬영모드를 바꿨다. 어둡고 긴 복도를 맞닥뜨리고 우두커니 선 채였다. 이윽고 요술 망원경처럼 까맣고 입체적으로 보이던 길이 뮤지컬 무대처럼 바뀌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닌 빛과 음악이다. 천장에서 떨어진 조명이 요동치는 음파에 따라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었다. 관람객을 윽박지르듯 조명이 멀리서부터 다가와 켜지는 것으로 쇼가 시작됐다. 빗줄기 같은 빛은 엑스(X)자를 비롯한 많은 문양을 쏟아내다 이내 점등된 채 1분간의 쇼를 끝냈다. 그러자 마침내 밝은 길이 열렸다.
지난 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2관에서 펼쳐진 장면. 기아가 개최한 ‘Opposites United’ 특별전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는 게 있다. 자동차 만드는 회사가 여는 전시회인데 정작 차는 없다.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을 의미하는 브랜드 디자인 철학인 ‘Opposites United(오퍼짓 유나이티드)’가 주제라서인지 관념적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다.
상반된 것들을 독창적으로 섞는다는 주장만큼, 전시장에는 대척점에 선 요소들이 대립한다. 대표적인 장치가 빛과 어둠이다. 전시장은 한 발짝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만큼 캄캄하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건 영상물과 조명으로 대표되는 작품들뿐이다. 빛과 어둠이 공존해 서로의 존재감이 더욱 선연해진다.
공간마다 다른 감각 느껴
전시 공간은 총 6개다. 시작인 ‘Technology for Life(인간의 삶을 위한 기술)’는 촉감을 건드린다. 관람객이 벽에 손을 대면 빛이 파동을 일으키며 전시의 진행 방향을 일러준다. 둘째인 ‘Bold for Nature(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서도 손맛을 볼 수 있다. 나무와 같은 자연적 요소가 투사된 천을 헤치고서야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보는 위치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달라지는 'Joy for Reason(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 경쾌한 조명과 빛으로 완성된 'Power to Progress(미래를 향한 혁신적 시도)', 'Tension for Serenity(평온 속의 긴장감)', 'Opposites United 라운지'로 향하며 여정은 끝이 난다. 특히 말미에 나타나는 드넓은 전시공간은 사방에서 던지는 빛의 변화로 인해 시각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여기서 유난히 오래 머물며 조명에 파묻힌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눈이 번뜩인다.
기아 관계자는 CNB뉴스에 “이번 전시회는 기아 디자인이 처음으로 개최하는 단독 전시”라며 “고객의 삶을 향한 열정에서 비롯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기아의 디자인 철학이 고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전시 관람은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현장 방문 후 순차적으로 입장하면 된다. 관람료는 없고, 약 15명 단위로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투어가 진행된다.
기아 측은 “기아의 디자인 철학과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라고 소개했는데, 도슨트 투어를 해봐야 이 말이 실감 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야 직관적으로 의미를 잡아채기 수월하기 때문.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