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임기 함께한 윤 행장
중소기업·소상공인 최후 보루 역할
위기 속에서도 창업기업 숨통 틔워
최대실적으로 ‘ESG가 경쟁력’ 입증
“변화가 필요하면 외부에서 수혈하고, 안정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발탁한다”
3년전 문재인 대통령이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IBK기업은행장에 내정하며 했던 말이다. ‘관(官)출신 낙하산’ 행장을 반대하는 일부 정치권과 금융노조에게 했던 이 말은 이후 윤 행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찌 됐을까? (CNB뉴스=도기천 기자)
당시 대통령의 발언이 입증되는 데는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20년 1월 취임한 윤 행장은 업무파악도 끝나기 전에 코로나19라는 거대 쓰나미를 만났지만, 국책은행장으로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젖줄 역할을 무난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권 안팎에선 “팬데믹에 최적화된 은행장”이란 평가가 쏟아졌고, “‘내부 출신 행장’ 전통을 깬 것은 신의 한 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윤 행장의 실력은 기회를 잘 만나 만들어진 게 아니다. 윤 행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7기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등을 거쳐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낸 거시경제 전문가다.
특히 참여정부, 이명박정부, 문재인정부 때 청와대 경제요직을 맡아 보수·진보정권 할 것 없이 ‘경제통’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통’의 국책은행장 낙점 ‘신의 한수’
기업은행장이 되어서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특유의 정무감각과 뛰어난 글로벌 감각으로 차근차근 ‘윤종원식(式) 혁신경영’을 추진해왔다. ‘혁신금융’과 ‘바른경영’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한데 이어 혁신금융그룹과 자산관리그룹을 신설하는 등 국책은행의 관성화된 체질을 바꿨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는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확대해 서민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국책은행 특성상 수익성 면에서 민간은행들보다 불리한 조건이지만 실적 성적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이 2조 4259억원으로 전년 대비 56.7%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도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3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윤 행장이 성장과 정책금융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본다. 미래성장가능성에 중점을 둔 혁신금융 확대와 중소기업·소상공인 총력지원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이런 결과는 ‘상생이 곧 경쟁력’이라는 평소 소신에서 비롯됐다. 윤 행장은 지난 4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중소기업과 한국 금융의 역동성을 높이는 것이 혁신경영의 목적”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올해 신년사에서는 5가지 중점과제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코로나 극복 지원 ▲금융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혁신기업 및 미래산업 지원 ▲고객 중심의 디지털, 글로벌, 시너지 전략 디자인 ▲기본에 충실한 경영 ▲즐겁게 일하는 일터 조성 등을 제시한 바 있다.
‘혁신 스타트업’의 마중물 역할
윤 행장의 여러 성과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분야는 모험자본 공급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는 점이다. 모험자본(venture-capital))은 성장가능성이 큰 혁신기업에 마중물이 되는 투자금을 이른다.
기업은행은 윤 행장 취임 후 2년8개월 만인 지난 9월에 모험자본 공급액이 목표액(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윤 행장은 2020년 1월 취임 당시 향후 3년간 1조5000억원의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당초 목표보다 4개월이나 앞당긴 것.
윤 행장은 취임 초기부터 기술력이 우수하고 성장가능성이 높은 혁신기업 발굴에 주력해왔다. 특히 담보나 안정적인 재무 실적이 없어도 기술력과 성장성이 우수한 중소·벤처기업에게 모험자본을 꾸준히 공급했다.
실제 윤 행장 취임 이후 기업은행이 창업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한 비중이 전체 기업투자의 63.9%(지난 8월기준)로, 취임 전(2017~2019년) 40.1%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기업은행이 투자한 기업 중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기업은 2019년 3개에서, 윤 행장 취임 이후인 2020년 10개, 2021년 13개로 급증했다.
특히 윤 행장은 민간투자로부터 소외되기 쉬운 영역인 창업초기 스타트업 지원에 주력했다. 창업 3년 이내 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한 비중은 전체 모험자본 공급액의 27.8%로, 취임 전(5.8%)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업은행은 내년부터 3년간 모험자본 2조5천억원을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다. 윤 행장은 이를 위해 최근 ‘모험자본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미국 혁신창업 생태계를 확인하고 이를 국내 스타트업에 적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기도 했다.
윤 행장은 이러한 직접적인 자금공급 외에도 창업육성, 컨설팅, 기술금융 등 다양한 지원책을 확대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업기업의 스케일업(scale-up)을 지원하는 창업육성 플랫폼 ‘IBK창공’이다. 창공은 ‘창공(創工)을 통해 창공(蒼空)으로 비상하라’라는 뜻을 담은 ‘창업(創業) 공장(工場)’을 의미한다.
기업은행은 2017년 12월 서울 마포구에 창공 1호를 개소한 이후, 구로·부산·대전·서울대캠프를 포함해 5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460개의 육성기업에 약6200원의 투·융자, 6100여 건의 멘토링과 투자설명회(IR)가 이뤄졌다.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서면평가, 현장실사, 대면평가를 통해 지원대상 기업을 선발하고 있으며, 선발된 기업에게는 1대1 전담 멘토링, IR(기업홍보), 국내·외 판로개척, 데모데이, 오픈이노베이션, 사무공간 등을 종합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 행사를 열어 혁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IBK창공 기업과 기업은행과 거래하는 우량 중소·중견기업 간의 투자유치·사업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혁신금융·중소기업 ‘두마리 토끼’ 잡아
기업은행은 이같은 창업기업 지원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규모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를 작년보다 2조원 늘어난 53조원으로 설정했으며, 올 상반기에 이미 목표액의 64%(34조원)를 달성했다.
또 ‘중소기업 재기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해 회복속도가 더딘 취약사업자를 돕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지원 받은 기업은 총349곳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1조3445억원 규모다.
윤 행장은 한발 더 나가 ESG 경영과 창업·중소기업 지원을 연계하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투명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글로벌 그린뱅크’라는 비전 아래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신설해 은행 본연의 ‘녹색금융’ 강화는 물론 중소기업의 ESG 경영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은행이 발행한 ESG 채권은 국내 은행권 중 최대 수준인 6조4000억원이며, 그린뉴딜 관련 혁신기업 금융지원 규모는 3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혁신금융 확대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양날개를 균형있게 추진한 결과, 기업은행은 금융위원회의 ‘2021년도 국책은행 경영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기업은행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S등급보다 한 단계 낮은 A등급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을 강화한 점이 높이 평가받으며 최고등급을 획득했다.
윤 행장은 최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앞으로도 눈앞의 이윤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선택하겠다”며 “모험자본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