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세 장면으로 기억된다. 더웠고 사망했고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지구 종말이라도 온 듯한 말들이지만, 그저 사실만을 열거했을 뿐이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우린 아직 살아있다.
역대 가장 강력한 더위가 올 거라더니 진짜 왔다. 당시 서울의 한 중학교 교실에는 선풍기 두 대만이 삐걱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커먼 사내들로 북적이는 교실은 홧홧했다. 어느 호탕한 선생님은 달뜬 눈들을 진정시키려 웃통 벗고 수업에 참여할 자유를 허락했다. 어차피 남자들뿐인 교실은 별안간 원시적이 됐다. 이때,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한 ‘물쇼’를 목격했다. 개그에 목숨 건 A가 허리를 튕기며 춤을 춰댄 것이다. 그것은 시원함을 표출하는 최상위의 표현이었으리라. 난데없는 골반 댄스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땀이 고여 있던 배꼽에서 액체가 흐느적대며 사방에 튀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아이들은 웃겨서 자지러졌고, 열정의 댄서 A는 선생님의 매질에 엉덩이를 붙잡고 자지러졌다. 정신없이 나부끼는 몽둥이의 춤사위에 교실은 일순 오싹해졌다. 한창 더위가 시작되던 무렵의 첫 번째 기억이다.
그때 위에서 공포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었다. 공포심은 부풀려진 소문을 타고 커져갔다. 곧 전쟁이 난다거나 당장 피난을 가야 한다거나 중학생부터 전선에 끌려가야 한다, 같은 말들이 더운 교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창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A는 수업 시작종을 무시하고 강변을 늘어놓았다. 선생님의 두 차례 경고사격에도 입을 닫지 않던 A의 엉덩이에는 결국 폭격이 쏟아졌다. 우리는 숨죽여 걱정했다. A의 엉덩이가 아니라 우리의 앞날을. 그때는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아시다시피 그것뿐이었다. 두 번째 기억은 이렇듯 알싸하게 남았다.
그해 한국은 진짜 전선에 뛰어들었다. 상대는 일본. 승기를 꽂아야 할 곳은 2002년 월드컵 유치였다. 이때만 해도 출발이 한참 빨랐던 일본의 단독 개최가 유력했다. 한국은 1994년에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했는데, 일본은 그보다 5년 앞선 1989년에 조직위를 꾸렸다. 열세가 당연했는데 상대가 상대인 만큼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딜 가나 ‘2002 KOREA WORLD CUP’이란 문구가 보였다. 서울시청 광장에는 월드컵 유치 홍보탑이 설치됐고, 외국인들의 발길이 특히 잦은 김포공항에서 양화대교로 이어지는 길에는 홍보 로고가 새겨진 깃발 1000개가 걸리기도 했다.
국민들은 온몸으로 힘을 보탰다. 차량에 스티커를 붙이고 응원 문구가 적힌 모자나 넥타이핀을 통해 자발적 광고판이 됐다. 당시 학교 책상에는 ‘2002 KOREA WORLD CUP’ 스티커를 부착한 학생이 많았는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는 모를 일이었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응원을 한 것인데, 그런 크고 작은 노력이 모여 결국 공동 유치를 이끌어 냈다. 사람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치러지는 동안만 미쳤다고 하는데 사실 유치전부터 광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찍이 미쳤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당시의 상황과 2030년 세계 박람회(엑스포)를 부산에서 열고자 노력하는 현재의 국면은 닮았다. 열세로 출발했다. 최대 경쟁 도시인 사우디의 리야드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뒤이어 발을 뗀 탓에 반전을 끌어내려는 인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해외 각국을 돌며 부산엑스포 유치 협력 요청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벌어지는 유치전의 열기에 비해 국내는 아직 미지근하다. 삼성, LG 등이 방문객 많은 일선 매장에 홍보 영상을 트는 정도가 고작이다. 당연히 일반의 관심도 밋밋할 수밖에. 이를 반증하듯 최근 취재현장에서 “그게(부산엑스포) 뭔지 모른다”는 반응을 자주 들었다. 그 주위에서는 요즘 가장 뜨거운 배우 이정재가 출연하는 부산엑스포 홍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경주는 시작됐는데 바퀴는 느리게 돌아가고 있다. 국민적 시선이 아직 뜨겁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의 성패는 앞으로 대국민 관심 고취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열기에서 촉발된 역전의 장면을 우리는 2002년에 보았다.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