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전 창업정신, 오늘날 ESG로 승화
허 회장, 전 계열사 ESG경영 직접 챙겨
사회공헌·투명경영 분야별 대응체계 구축
반세기 넘게 ‘희귀질환과의 싸움’을 벌여온 허일섭 GC녹십자 회장 일가가 추구하는 기업이념은 ‘인간존중’이다. 이는 환자중심의 신약개발,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회공헌활동, 투명한 지배구조 등 오늘날 ESG경영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히 녹십자호(號) 선장인 허일섭 회장은 모든 계열사의 ESG 현황을 직접 챙기는 등 대(代)를 이어온 녹십자 정신을 구현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인류의 건강한 삶에 이바지 한다’는 우리의 미션은 이미 ESG의 개념을 담고 있다. 올해를 ESG 경영의 원년으로 삼아 우리의 핵심가치인 창의도전, 봉사배려, 정도투명, 인간존중을 구현하자”
ESG 성과와 계획을 담은 첫번째 ‘GC 지속가능경영보고서’(지난 7월 출간)에 담긴 허일섭 GC녹십자그룹 회장의 인사말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투명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허 회장의 말처럼 GC녹십자(이하 녹십자)는 한국사회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시절부터 ‘가치 경영’을 실천해왔다.
시작은 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채경 회장은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를 설립해 제약업에 첫발을 디뎠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제약산업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존재’라는 신념 하에, 당시만해도 가난과 질병이 창궐하던 사회현실을 극복하고자 신약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이러한 창업정신은 허채경 회장의 아들인 허영섭(허일섭 회장의 형·2009년 작고)에게 고스란히 계승됐다. 허영섭 회장은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 연구재단인 녹십자연구소(현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한국제약사에 빛날 여러 기념비적 성과를 거둔다. 1987년 국내 최초 에이즈 진단시약 생산을 비롯, 1988년 세계 최초의 유행성출혈열백신, 1993년 수두백신, 2008년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등을 잇달아 내놨다. 2009년 전 세계에서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신종플루)가 유행할 당시에는 세계 여덟 번째로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허영섭 회장이 세상을 등지자,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경영을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허영섭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허일섭 회장의 조카) 사장이 GC녹십자 대표이사를 맡아 가훈을 잇고 있다.
‘희귀질환과의 싸움’으로 가치경영 구현
허일섭 회장은 희귀질환 치료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11년 천연물신약 골관절염치료제, 2012년 헌터증후군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ESG경영이 본격화된 최근에는 글로벌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 1월 일본 후생노동성(MHLW)로부터 세계 최초로 뇌실투여 방식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품목허가를 받았으며, 8월에는 유전자 재조합 A형 혈우병치료제 ‘그린진에프(중국 상품명: 녹인지)’의 중국 품목 허가 승인을 획득했다. 올해 초에는 미국 미럼 파마슈티컬스와 협력해 소아 희귀간질환 신약 ‘마라릭시뱃(Maralixibat)’의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이밖에도 유전성 신경퇴행 질환에 대한 공동 연구, 숙신알데히드 탈수소효소 결핍증(SSADHD) 치료제 개발 등 희귀질환 분야에서 글로벌 제약사들과 다양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허 회장의 이런 글로벌 전략은 “위대한 헌신과 도전을 통해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녹십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녹십자(Green Cross)’의 영문 이니셜인 GC는 ‘Great Commitment(위대한 헌신), Great Challenge(위대한 도전), Great Company(위대한 회사)’를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제약기업 본연의 특성을 살린 가치 경영이라면, 최근 본격화된 ESG경영은 이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구체적이다.
허 회장은 ESG의 5대 핵심영역을 ▲헬스케어 고객가치 창출 ▲사회적 책임 및 인적자원 관리 ▲환경경영 ▲지속가능 생태계 구축 ▲윤리경영으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ESG가 단순한 사회공헌 차원을 넘어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선 허 회장은 E(환경) 분야에서는 환경관리체계, 기후변화 대응, 순환경제 구축, 안전보건 등을 키워드로 설정했다.
각 계열사들은 환경 전담 조직을 꾸려 폐수와 폐기물 관리, 대기오염물질·유해화학물질 배출 감축을 위한 목표와 과제, 실행과 점검, 평가와 개선 방안 등이 포함된 환경 경영 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
실례로,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절감 활동으로 2017년부터 오창공장에서 사용하던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를 외부에서 공급받는 스팀(열)으로 전환했으며, 이를 통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질소산화물(Nox) 발생도 억제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에너지 스마트 기술인 ESS(Energy Storage System)를 도입해 전력 사용을 효율화하고 있다.
개별 사업장은 사업장별 특성, 유해·위험 요인 등을 반영한 안전·보건 방침을 제정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실무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한걸음에 1원씩 ‘아름다운 동행’
S(사회) 분야에서는 핵심가치 중 하나인 ‘봉사배려’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2004년 출범한 ‘GC 사회봉사단’은 전국 각 지역 사업장별로 100여개가 넘는 봉사팀을 두고 있다. 급여 끝전 나눔, 매칭그랜트(임직원이 기부한 금액만큼 회사도 동일한 금액을 기부하는 제도) 등 기부 활동과 함께 봉사 활동, 소외계층 지원, 헌혈, 의약품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전 계열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부형 사회공헌 캠페인 ‘GC 아름다운 동행’을 진행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측정된 참여자의 걸음 수를 1보당 1원의 기부금으로 환산해 인당 최대 6만보(6만원)까지 기부가 가능하도록 했다. 선착순 400명으로 모집된 참여자를 대상으로 9일간 진행했는데, 총 2342만1335보의 누적 걸음으로 2000만원이 넘는 기부금이 적립됐다. 기부금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이밖에 G(지배구조)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 임직원의 뜻을 모아 2013년 기존의 윤리강령을 보완한 ‘녹십자 윤리기준’을 선포해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사회 중심의 ESG경영 실행체계를 마련했다. 계열사별로 ESG 담당조직을 만들어 ESG 실행 계획과 성과 전반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있으며, 이사회는 핵심 사안을 심의·의결하고 있다.
또 지주사 중심의 ESG경영협의체는 각 계열사 ESG 담당조직 지원, ESG 경영 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보 조사·분석, ESG 경영 관리 도구의 개발·보급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GC녹십자는 최근 ‘2022 소비자웰빙환경만족지수(KS-WEI)’에서 종합영양제 부문 3년 연속 1위, 진통제 부문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올해 19회를 맞이한 소비자웰빙환경만족지수는 한국표준협회(KSA)가 소비자 이용 상품 및 서비스의 웰빙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건강성 ▲환경성 ▲안전성 ▲충족성 ▲사회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CNB뉴스에 “소비자웰빙환경만족지수가 소비자 인식 조사를 기반으로 선정된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매우 의미가 깊다”며 “인간존중과 봉사배려의 녹십자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매년 ESG 성과 평가와 계획이 포함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