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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뜨겁다, 태양도 물가(物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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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2.08.04 09:22:35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서울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에어컨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버지는 걸어 다니는 최저가 판독기다. 장볼 때 그 레이더가 진가를 발휘한다. 언제 조사 했는지 빠삭하다. 농산물 가격을 공지하는 누리집을 알려드렸는 데도 체감이 정확하다며 시장과 마트를 순회하신다. 은퇴 후 집에서 장보기를 담당하게 된 아버지는 어디에서 특정 제품을 가장 싸게 파는지 알고 계신다. 가령 계란은 지금 A대형마트가 싸다. 쌀은 사거리에 있는 공판장에서 사야 한다. 그건 지금 B온라인몰에서 묶음으로 구매해야 좋다, 같은 정보를 꿰고 계신다. 다량의 깨알 같은 정보는 매일 업데이트 된다. 왜 그렇게까지 고생하며 장을 보냐고 말린 적도 있다. 아버지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이득인데 왜 대충 사냐고 오히려 나무랐다. 아버지 덕분에 가계 지출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어떨 때는 직장 은퇴하고 집 재무 담당자로 재취업 하신 것도 같다.

자린고비도 울고 갈 아버지의 주도로 지출이 늘어나는 때가 있다. 한여름이다. 더위를 못 견디신다. 어쩌면 겨우내 아꼈다가 여름철 에어컨에 올인 하려고 살뜰히 아끼는 지도 모르겠다. 누가 에어컨을 끄려하면 번개처럼 나타나서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다. 사상 최고 더위로 손꼽히는 2018년에는 날카로움이 배가 됐었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처음 생긴 때도 이전 최고 더위였던 1994년이었다. 그때 그렇게 에어컨 앞에서 행복해 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집에선 에어컨이 효자다.

그런데 요즘은 아버지의 소소한 과소비를 보기 어려워졌다. 에어컨을 자주 끄고 선풍기를 켜시거나 부채를 든다. 전기요금이 인상된 탓이다. 7월 1일부터 4인 가구 기준으로 평균 월 1535원 올랐는데 심리적 부담은 이보다 크게 가중됐다. 아버지는 장볼 때 발품 파는 범위를 넓히셨다. 가격 비교 대상이 늘었다. 구(區) 너머에 있는 창고형, 기업형 슈퍼마켓를 종횡무진 하신다. 그날 만족할 만한 가격대로 장바구니가 채워지면 에어컨을 잠깐 켜신다. 덜어지지 않는 가장의 무게가 요즘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인다.

전망이라고 좋을쏘냐. 오는 10월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다시 한 번 동시에 인상된다고 한다. 전기요금의 경우 지난 4월 기준연료비가 kWh당 4.9원 올랐는데 오는 10월 4.9원 더 오른단다. 가스요금의 경우 정산단가가 5월에 0원에서 1.23원으로 인상된 데 이어 7월부터 1.90원으로 0.67원 오르고, 오는 10월에 2.30원으로 0.40원 더 오를 예정이다. 겨울에는 난방비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물가 상승세도 무섭다. 뉴스 보기가 겁난다. ‘가격 인상’ 앞에 이름만 바뀔 뿐, 매일 뭔가가 오른다. 어느 날은 식용유였다가 어느 날은 스팸이었다가. 떨어지는 건, 장보고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뿐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한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기대감 없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 수밖에 없다. 태양도 뜨겁고 물가도 뜨거운데, 달아오른 물가를 식힐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고 열대야가 찾아왔다. 시인 정지용의 산문 ‘가장 시원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밤 더위란 난생처음 당하는 것이었다." 이걸 읽고 생각했다. 그날 밤만 더우면 좋으련만, 매일이 덥다. 아버지는 어젯밤에도 에어컨을 끄셨다. 문밖에서 전기 계량기를 보는 일이 잦아지셨다.

(CNB뉴스=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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