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투기세력의 마지막 군불때기 이제 끝
尹정부, ‘부동산 공약’ 오히려 안지켜 다행
화룡점정 될 공급 카드, '신중에 신중'하길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1억 낮출테니 집 좀 팔아주세요”…집주인들 ‘발동동’
아파트값 3억 ‘뚝’…GTX 타고 치솟던 집값 본격 하락
‘압구정 현대 너마저’…강남 부동산도 수억원씩 ‘뚝뚝’
집값 올라 인천 왔는데…억단위 하락에 하우스푸어 될판
깡통전세 쓰나미 오나…집값 하락에 전세가 매매 추월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기사 제목들이다. 셋만 모여도 어디가 몇억 뛰었다는 얘기가 대세였고 ‘벼락거지(집 안사고 기다리다 가난해졌다는 의미)’들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난 대선은 부동산 왕국에 분노한 서민들의 ‘민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랬던 부동산이 반전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서울 아파트값이 7주째 하향곡선으로 그리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도 파란불이 켜진 곳이 3분의 2를 넘어서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 매매건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매물이 폭증하면서 매매수급지수는 10주연속 내리막이다.
새정부 출범으로 규제완화가 본격화되면 다시 반등할 것이라던 토건세력들의 희망섞인 전망도 이제 약발이 다했다. “결국은 우상향”이라며 불패론을 외치던 자칭 전문가들도 하나둘씩 유튜브 채널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나라 안팎의 변화가 동시에 작용했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돈 가치가 추락하자 주요국들은 앞다퉈 금리를 올렸고, 이에 따라 한국은행 기준금리 또한 10개월전 연 0.5%에서 현재 2.25%로 4배 넘게 올랐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최고 7%대까지 치솟았다.
주담대가 무이자에 가깝던 시절에는 ‘집을 안사면 바보’였지만 지금은 ‘집을 사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벼락거지 피하려 집 샀더니, 하우스푸어 될 판”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자금이 주식·부동산에서 은행권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도 빨라지고 있다. 현금 부자들은 달러, 국채, 예금 등을 통해 고금리 이자와 환차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에게 부동산은 한물간 투자처일 뿐이다.
공약대로 했으면 ‘아찔’…韓경제 뇌관 될뻔
여기까지가 금융 이야기였다면, 부동산을 움직이는 다른 한축은 ‘규제’다. 이는 오롯이 윤석열 정부의 몫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 정부 출범후 지난 2개월 간의 부동산정책 성적은 ‘80점’ 정도 주고 싶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이 거의 지켜지지 않은데 따른 안도감이랄까?
윤 대통령은 후보 때 대출규제 완화, 부동산 세제규제 완화, 민간임대사업자 제도 활성화, 분양가상한제 철폐, 임대차3법 폐지 등 다주택자와 건설업계의 소망을 오롯이 담은 공약을 발표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선언하며 취임하자마자 세금과 대출규제부터 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새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6.21대책)은 공약과는 확연한 온도차가 있다.
건설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분양가상한제 폐지’는 분양 과정에 소요되는 주거이전비 등 일부 경비를 분양가에 추가 반영해주는 선에서 끝냈다. 업계에서는 분양가가 고작 1~4% 인상될 뿐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대출규제 완화는 생애최초주택 구입 가구의 LTV(담보인정비율) 상한을 80%로 상향하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아무리 LTV를 완화해도 DSR을 풀지 않으면 효과가 크지 않다. ‘그림의 떡’이라는 게 은행권 중론이다.
부동산세제 완화에 있어서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내년 5월9일까지 유예해 주기로 했지만, 이는 오히려 시장 안정 효과를 내고 있다. 1년 안에 집을 팔아야 중과세를 면할 수 있기에 매물이 크게 늘어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의 ‘투기과열지구 해제’도 시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상지가 수개월째 큰 폭으로 집값이 하락하고 있는 6개 시군구에 불과하다.
임대 정책도 애초 우려와 달리 무난해 보인다. 임대차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은 공약인 ‘폐지’에서 선회해, 세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보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공임대의 경우, 10년공공임대 분양전환 아파트의 분양지원대책을 리츠형공공임대(NHF)까지 확대했다.
80점 유지되려면…신중에 신중 기해야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활성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 사령탑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새 정부의 목표는 집값 하향 안정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가·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등 이른바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잠시 공약을 미룬 것인지, 아니면 완전한 연착륙을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 점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공급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5년 간 전국적으로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210만 가구에 40만호를 더하겠다는 게 큰틀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사업 규제 완화, 도심·역세권 복합개발, 대규모 공공택지 정비사업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발 지역과 방법론은 오는 8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잘만하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과 집값 안정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반대로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규제부터 풀고, 과거 4대강 개발 때처럼 자금만 쏟아붓다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거나, 반대로 미분양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뇌관은 생각보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다. 당장의 실적에만 급급하다 실기(失期)하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민란’ 수준의 저항에 직면했던 과거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반면교사 삼아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집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