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우(鄭大宇) 전 경남농업기술원장(82)은 '35년간 농촌지도직 공무원의 애환'을 담은 에세이집 '들길에 핀 민들레'(도서출판 화인, 301쪽)를 발간했다. 이 책은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의 보릿고개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서 구슬땀 흘린 농촌지도직 공무원들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이자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의 악수라고 할 만하다.
이 책에서 정 전 원장은 1965년 삼천포 농촌지도소에서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각 발령지에서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회고록 형식으로 잔잔하게 서술했다. 발령받아 간 동네에 세 든 집이 귀신 나오는 집이라거나, 집주인 아주머니와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권력 실세를 등에 업고 농촌지도직 공무원 조직을 우습게 알던 인사들의 이야기에서는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부정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모습에서 참된 공무원상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취임한 얼마 후 고향 합천을 방문했을 때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농촌진흥청장을 수행하게 됐을 때, 공석이던 비서실장 적임자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정 전 원장의 대답은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정 전 원장의 안목과 지혜는 비닐멀칭 재배, 기계 모내기, 수경재배 같은 선진농업기법을 보급할 때의 일화에서 드러난다. '비닐을 땅에 깔고 야단들이야!', '장난감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겁니까?', '수경재배는 왜 해야 하나' 같은 에피소드에서는 당시 농촌지도직 공무원과 국가 정책을 불신하던 농업인을 어떻게 설득했는지를 정확하게 들려준다.
정 전 원장이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서 농민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원장실은 농민들의 사랑방이오'라는 글에서 알 수 있다. 승진 발령받은 원장의 책상에,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자개 명패가 놓였다. 정 전 원장은 권위적으로 보이는 자개 명패를 버리고 나무로 만든 명패를 놓도록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정 전 원장이 무사히 공무원 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부인 고(故) 강풍자(姜豊子) 여사의 내조가 한몫했다. 정 전 원장은 이 책 제3부에서 아내의 지혜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농촌지도직 공무원 아내로서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대범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당당하게 제 몫을 다 해낸 고 강풍자 여사의 남편사랑, 가족사랑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본받을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전 원장은 책 머리글에서 "나는 농업 현장에서 새 농업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사랑방, 마을회관, 정자나무 밑, 비닐하우스 내, 축사 등에서 농민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고 전통 관습에 젖은 사람들에게 새 기술을 보급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연도 발생했다"면서 "농업의 기계화, 정보화와 우리 농민들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며 한없는 보람을 느꼈다. 그동안 우리들이 들길을 수 없이 오고 가며 다져놓은 그 기반 위에 아름다운 풍요의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며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정무남 농진중앙회장(전 농촌진흥청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에는 당시 큰 과제이던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어 보자'하는 간절함과 '소득증대로 잘살아 보세'하는 국민적 염원을 성공적으로 이끈 정대우 원장님의 농촌진흥사업에 대한 철학과 지혜, 순발력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겼다"고 말하고 "농촌진흥공직 퇴직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게 하고 현직자에게는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업무에 더욱 보람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천시 이금동 출생으로 경상국립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옛 진주농과대학 농학과)을 졸업한 정대우 전 원장은 통영군, 밀양군, 합천군, 청송군 등 7개 시·군 농촌지도소와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장을 거쳐 제16대 경남도 농업기술원장(1998년 3월~1999년 12월), 한국지속농업연구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 3월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정대우 전 원장은 어린 시절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집 '배고개의 슬픈 매화'(2018년), 아련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목련화 戀情'(2020년)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정 전 원장의 세 번째 저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