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페트병이 섬유로…기적의 자원순환
역발상적 투자로 사상최대 실적 견인
‘두마리 토끼’ 잡은 효성, 수소 시대로
효성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티앤씨, 효성첨단소재 등 섬유 계열사를 중심으로 친환경 소재 개발·보급에 주력하고 있으며, 효성화학, 효성중공업 등 에너지 계열사들은 자원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휘봉은 오너 일가 3세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쥐었다. 그의 ESG 전략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사상최대 실적으로 인정받은 만큼,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효성의 모태는 1966년 설립된 동양나이론주식회사다. 1970년 한일나이론을 인수하고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 및 동양염공을 세워 국내 최대 섬유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배경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섬유·에너지 분야가 그룹의 주축을 이룬다.
따라서 최근 몇년 새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한 ESG경영과 가장 밀접한 기업이기도 하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투명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은 ‘E(환경)’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탄소발자국(기업 생산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캠페인이 전지구촌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효성은 친환경과 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 최근의 성장 그래프를 들여다보면 전략이 분명하다.
효성그룹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21조 2804억원, 영업이익 2조 7702억원으로 지주사 분할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이중 상당부분이 친환경 사업 분야다.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한 효성티앤씨는 친환경 섬유 ‘리젠(regen)’의 수요증가가 효자 노릇을 했다. 효성중공업은 신재생에너지용 전력기기와 수소충전소 수주를 확대해 목표액을 달성했다.
이런 흐름은 조 회장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조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기회로 삼자”며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인 ‘리젠’이다. 리젠은 3대 화학섬유(폴리에스터·나일론·스판덱스)의 친환경 생산 기술을 보유한 효성티앤씨가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서울시, 제주시 등 지자체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리젠서울’, ‘리젠제주’, ‘리젠오션’ 등의 섬유로 재활용해 자원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리젠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리사이클 섬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과 리젠으로 만든 친환경 제품을 콜라보(협업)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 최초의 ‘친환경 패션시장’ 시대를 연 것이다.
조 회장은 최근 CEO 회의에서 “리젠을 필두로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섬유·에너지 계열사들, 탄소제로 벨트 구축
리젠이 선두에 서 있다면 바로 뒤에서는 효성의 여러 섬유·에너지 기업들이 친환경 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국내에서 탄소섬유를 제조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로 수소경제 시대를 열고 있다. 탄소섬유는 수소차 연료탱크의 기반이 되는 핵심소재다. 철보다 강도는 10배 강하면서도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해 자동차 경량화의 핵심소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차량 경량화에 따른 연비향상으로 탄소 배출 저감에도 기여하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자체기술로 개발한 탄소섬유를 통해 항공기, 자동차, 에너지, 건축 등 다양한 영역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오는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전주 탄소섬유 공장을 연산(年産) 2만4000톤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효성화학이 2013년 세계 최초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폴리케톤’ 역시 친환경·탄소저감형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폴리케톤 1톤을 생산할 때마다 일산화탄소를 약 0.5톤 줄일 수 있다고 한다. EU(유럽연합)의 탄소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폴리케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효성중공업은 세계적 가스·엔지니어링 기업인 린데그룹과 함께 울산에 2023년까지 연산 1만 3000톤 규모의 세계 최대 액화수소 공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정부의 대형 상용 수소차 보급 정책에 따라 전국 30여곳에 대형 액화수소 충전소를 건립할 계획이다.
전라남도와 손잡고 풍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1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인 10MW급 수전해 설비시설을 구축, 향후 그린수소 생산량을 연산 20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한 연산 1만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 2곳을 건립하고, 액화수소 충전소도 전남 주요 지역 9곳에 설치한다. 이와 함께 전남 지역 산업공단에서 발생되는 부생수소에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을 적용해 블루수소 생산 및 활용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지배구조 혁신
효성의 이런 프로젝트들은 지난해 4월 출범한 ‘ESG경영위원회’를 통해 평가·관리되고 있다. 위원회는 △ESG 관련 정책 수립 △ESG 정책에 따른 리스크 전략 수립 △환경·안전·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투자 및 활동계획 심의 등을 총괄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경영을 실천한 결과, 효성은 지난해 열린 ‘2020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Carbon Disclosure Project) 기후변화 대응·물 경영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원자재 분야 A-등급을 받으며 ‘탄소경영 섹터 아너스(Carbon Management Sector Honors)’를 수상했다. ‘탄소경영 섹터 아너스’는 CDP평가에서 해당 분야 최상위 등급을 달성한 기업에 수여되는 상이다.
특히 효성첨단소재는 업종을 망라해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 중 3위로 선정돼, 최상위 5개 기업에 수여되는 ‘탄소경영 아너스 클럽’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조 회장은 2017년 총수 자리에 오른 뒤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지주사인 ㈜효성의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등 지배구조(G)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그룹 경영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토록 했으며, 다양한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해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정비했다. 지배구조 개선을 담당해 온 투명경영위원회를 ESG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감시 기능도 강화했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ESG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몇 년 전만 해도 기업들은 ESG를 사회공헌의 일환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글로벌 경쟁력의 잣대가 되고 있다”며 “조현준 회장은 일찌감치 효성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친환경 사업을 확장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썼는데, 결국 이것이 사상최고 실적을 견인하는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