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도 맏형답게…친환경 100조 투자
“8년뒤 30조” 사회적 가치 창출 목표
딥체인지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상생’
공유가치 실험, 사회적기업론 등 오랜 세월 책임경영을 설파해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하에 친환경 산업에 100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10만 사회적기업’ 양성을 목표로 스타트업·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최 회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형 가치경영’을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 ESG는 전혀 낯설지 않아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최태원 회장은 재계에서 ESG경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총수라는 평을 듣는다. 한국사회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시절부터 ‘가치 경영’을 실천해왔기 때문.
뿌리는 깊고 튼튼하다. 최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고 최종건 창업주의 동생)은 생전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며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1974년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매년 수십명을 선발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1973년 시작된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단독 후원했다. 폐암으로 타계하기 직전에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겨 큰 울림을 줬다.
최 회장은 선대회장의 유지를 이어 1998년부터 교육재단 이사장을 맡아 장학사업에 힘써왔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시장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이른바 ‘10만 사회적기업 양성론’을 재계 최초로 선포해 실천하고 있다.
그는 양극화·실업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라 믿고, 이를 SK의 기업이념으로 삼아 여러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했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는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회장을 맡아 중소·지방·벤처기업 지원에 앞장서는 등 재계 맏형 역할까지 하고 있다.
상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5단체로 꼽힌다. 전체 회원사 수가 약18만 곳으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지방기업까지 아우른다.
최 회장은 최근 상의에 소통플랫폼을 만들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업인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일종의 ‘소통 허브’다. 여기서 채택된 아이디어는 정부·국회에 건의하거나 자체 사업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상의 측에 따르면 소통플랫폼이 오픈한지 두달 만에 430건의 제안을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최 회장은 상의 회장 자격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초 상의 신년회에서는 “상의가 SNS(소셜네트웍스서비스), 유튜브, 전문가 등 3만여명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국민들은 기업에 대해 갑질, 안전사고, 무책임, 환경오염 등의 키워드를 떠올렸다”며 “경제 변화,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의 가치경영, ESG와 ‘양수겸장’
그의 이런 신념은 SK그룹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특히 최근 재계에 불고 있는 ESG 열풍은 최 회장의 신념과 잘 맞아떨어진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투명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이런 글로벌 아젠다가 최 회장의 기업이념인 ‘공유 경제’와 양수겸장(兩手兼將)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 회장은 재계에서 ‘ESG 전도사’라 불릴 만큼 ESG경영에 적극적이다. SK의 ESG 실행전략 또한 최 회장이 2016년부터 강조해온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혁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2021 CEO세미나’에서 “딥체인지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ESG를 바탕으로 관계사의 스토리를 엮어 SK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명한 그룹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빅립(Big Reap∙더 큰 수확)’을 거두고, 이해관계자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공유와 나눔’이 ESG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우선 E(환경) 분야에서 최 회장은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 정도인 2억톤의 탄소를 SK그룹이 줄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지금까지 SK가 발생시킨 누적 탄소량만큼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등 친환경 신사업에 100조원 이상을 쏟아붓는다. 이미 SK실트론은 전기차(EV)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에 3억달러, SK E&S는 미국 수소에너지 업체 플러그파워에 16억달러, SK㈜는 대체육을 비롯한 환경친화적 식품회사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국내에서는 석유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가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주유소에 태양광 등 분산 전원을 설치해 친환경 전기를 생산, 전기차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서울 금천구 박미주유소가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선보였다.
또 그룹의 8개 계열사는 2020년 국내 최초로 ‘RE100’ 가입을 선언, 친환경 혁신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RE(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유엔은 세계경제를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제로)’로 이끌기 위해선 상당한 민간자본과 국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며 “SK그룹은 친환경사업에 850억달러(약104조)를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가치 최종목표는 행복”
여기까지가 ‘E(환경)’라면, ‘S(사회)’ 분야에서는 최 회장의 평소 지론인 ‘공유·상생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최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적 가치는 결국 구성원의 행복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30조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이에 SK그룹은 지난 2019년부터 매년 계열사별로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를 화폐화해 측정한 결과를 발표해오고 있으며, 최 회장은 직접 국내외 사업장을 순회하며 구성원들을 만나 행복을 주제로 소통하는 ‘행복토크’를 100회 시행했다.
SK 밖에서도 최 회장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최 회장은 국내 최대의 민간 사회적 가치 플랫폼인 SOVAC(Social Value Connect)와 연계해 사회적기업·소셜벤처에게 투자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기업·소셜벤처와 투자자들을 서로 연결해 관련 사업 성장을 돕는 프로젝트다.
최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각종 글로벌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본인의 신념을 설파하고 있다. 보아오포럼, 상하이포럼, 뉴욕 SK의밤, 베이징포럼, 도쿄포럼 등에서 직접 연단에 올라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SK의 경영철학을 알렸다.
SK계열사들, ESG평가 ‘올A’
이밖에 G(지배구조) 분야에서는 이사회 중심 시스템을 강화해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최 회장과 SK(주) 등 13개 계열사 사내·외 이사들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을 열고 ‘지배구조 혁신’을 위한 이사회 역할 및 역량 강화, 시장과의 소통 방안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의하는 등 관련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지난달 16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그룹 주요계열사 사외이사들이 머리를 맞댄 사실은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SK 12개 계열사 사외이사 30여명은 외부 투자자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자며 블랙록과 합동 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투자기관이 SK의 ESG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ESG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속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ESG를 추구해 나갈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했다.
이처럼 SK 계열사 이사회들은 경영진을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의 요구까지 적극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CEO세미나’에서 G(지배구조) 스토리에 대해 “이사회 중심 시스템 경영으로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글로벌 최고수준의 지배구조 혁신을 이뤄내자”고 당부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경영을 실천한 결과, SK그룹은 ESG 평가에서 재계 최고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지배구조원은 지난해 ESG 평가에서 SK그룹 주요 12개 계열사에 ‘올A’를 줬다. 특히 SK(주)와 SK이노베이션은 환경·사회·지배구조 모두 최고 등급인 A+를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ESG가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투자 기준이 되면서, 국내 대부분 기업들이 이제 막 ESG 경영의 걸음마를 내딛고 있는 상황인데 비해, SK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설립해 책임경영을 실천해왔다”며 “이런 점에서 최태원 회장이 재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ESG 행보를 펼치고 있다고 보는 건 전혀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