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투명하게” 지배구조 혁신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체제’ 확립
에너지 계열사들, 친환경사업 ‘올인’
김 회장 “준법경영이 ESG의 전제”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재계 서열 7위 한화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배구조 혁신과 사회적 책임경영을 지속가능경영의 전제로 삼았다. CNB가 한화의 도전과 혁신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 등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70년 역사에 걸맞은 깊은 책임감으로 ESG경영이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정도경영과 나눔의 가치를 적극 실천해 나가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년사)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경영복귀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ESG 경영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신년사에서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하자”고 주문한데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는 ‘지속가능 투명경영’을 강조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이 단지 수익 창출이 아니라, 주주·고객 및 사회와의 동행에 있다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의 신념에 따라 ESG에 속도를 내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도입해 지속가능 경영을 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계열사들 ‘기업지배구조헌장’ 제정
이 중에서도 한화는 ‘G(지배구조)’ 분야에 우선 집중하고 있다. 기반(지배구조)부터 튼튼히 해야 사회적 가치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작년 연말 이사회를 열어 ‘(주)한화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과 공정한 기업활동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주주, 고객, 협력회사,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특히 ‘회사의 존립 및 주주권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항은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는 조항을 넣었으며, ‘지배주주는 회사와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이사회가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사회 내 과반 이상의 사외이사를 둔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이 헌장은 상장 계열사들로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 계열사 한화솔루션이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공표한데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등 모든 상장사들이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했거나 제정할 예정이다.
이번 헌장은 그동안 꾸준히 실천해온 ESG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앞서 한화그룹은 작년 5월 그룹 차원의 ESG위원회를 설립했고, 각 상장 계열사에도 ESG 위원회를 별도로 설치, 운영해 왔다. ESG위원회는 ESG 관련 최고 심의 기구로서 환경과 안전, 사회적 책임, 고객과 주주 가치, 지배구조 등 ESG 경영 전 분야의 기본정책 수립과 중장기 목표를 심의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화의 지배구조 정책은 상당히 정교하다.
우선,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그룹 출신 사외이사를 배제하고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해 인력 풀을 넓혔다.
또 이사회 내 위원회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부거래위원회를 개편하고 상생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내부거래위는 사외이사를 과반 이상이나 전체로 구성해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심의하고 있으며, 상생경영위는 고객·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전략을 기획·실행하고 있다.
경영기획실 해체하고 이사회 강화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정책도 눈에 띈다. 그룹차원의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설립해 각 계열사들의 컴플라이언스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으며, 자문역할도 하고 있다. 위원회는 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별도 기구이며, 위원 5인 중 과반이 넘는 3인이 외부 전문가다.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위원회와 이사회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사회 운영체크리스트’를 전 계열사에 배포하고 있는데, 체크리스트에는 이사회 관련 규정 정비, 이사회 결의사항 예시 등 이사회 부의사항 점검, 이사회 부의사항 사전 검토, 준비, 운영, 사후 관리 등 이사회에 관한 사항이 망라돼 있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이사회 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위원회가 그룹 경영의 투명성 및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 차원에서 경영기획실을 해체한 경우다. 위원회는 ㈜한화가 최상위 지배회사로서 최소한의 그룹 대표 기능을 수행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2018년 6월말 경영기획실을 해체하고 최소한의 그룹 대표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인 ㈜한화 지원부문을 신설했다.
경영기획실 해체 후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체제가 확립됐다. 인사권에 있어 김승연 회장은 대주주로서 대표이사 추천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며, CEO 선임 및 임원인사는 각 사 이사회가 권한을 갖고 있다. 각 사 이사회가 추천 후보군 중 대표이사를 선임(또는 연임)하고 있으며, 이렇게 선임된 대표이사가 본인의 책임 하에 임원인사를 실시하고 있다.
김 회장은 40년 간의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룹 경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과 대주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한만을 행사하고 있다. 김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컴플라이언스 관점에서 ESG를 강화해 나가자”고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투명경영이 지속가능경영의 전제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투명성 바탕으로 ‘친환경’ 영토 확장
지배구조 정책의 또다른 한축은 ‘주주권익’이다. 이를 위해 한화는 모든 상장계열사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가 개최될 때 주주들이 외부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10대그룹 중 전 상장사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것은 한화그룹이 유일하다.
주주총회 날짜도 계열사 간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고 있다.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시스템,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한화에어로스페이 등 상장 계열사들은 3월 하순 슈퍼 주총데이(여러기업이 동시에 주총을 여는 날)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피해 주주총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모두 소액주주의 주총참여를 끌어올려 주주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한화는 이 같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계열사별로 ESG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태양광과 그린수소 사업 확대, 한화건설의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친환경 건축 프로젝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래 친환경 도심 이동수단인 UAM산업 환경 조성을 위한 수천억원대 ESG채권 발행 등 전 세계적 과제인 ‘E(환경)’ 분야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 팬데믹이 탄소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국내 최대 에너지 기업인 한화가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투명한 지배구조를 컴플라이언스 경영의 핵심으로 둔 김승연 회장의 의지가 재계에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