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족’ 늘며 오디오 인기 상승
MZ세대 열광 힘입어 ‘매출 쑥쑥’
백화점업계, 청음실 만들고 유혹
음악은 설명못해…들으니 알겠네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건 살 때 한번은 써봐야 지갑을 여는 ‘익스피리언슈머’(experience+consumer)다. 체험을 중시하는 ‘익스피리언슈머’의 등장에 기업들도 이들의 구미에 맞는 경험 전달에 집중한 요소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명은 무엇을 겪게 하고 구매의 확신을 갖게 할 것인가. CNB가 어떤 손맛을 전하는지 각양각색 킬링 포인트를 짚어본다. 이번 편은 귀를 유혹하는 백화점 업계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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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디리-딩↑-딩↑’ 이 음은 무슨 노래?
음악을 설명하는 일만큼 무모한 도전도 없다. 록그룹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예로 들어보자.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날카로운 음색에 화성이 덧쌓이며 시작한다. 이내 노래가 멈추고 피아노 반주가 이어진다. 딩-디리-딩↑-딩↑. 대충 이정도 간격이다. 조용하면서 경쾌하다.
하이라이트에 접어들어서는 오페라인지 록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여러 장르가 충돌한다. 찢어지는 기타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격양된 프레디의 목소리가 더욱 번뜩이며 날아든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재생버튼 없이도 환청처럼 선율이 달팽이관에 와서 앉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명곡을 여기서 처음 ‘보는’ 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곡조인지 알아챌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음악은 들어봐야 아는 것이다. 시중에 여러 음향장비를 감상하는 리스닝 룸(listening room)이 늘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집콕족’ 범람과 함께 특히 고가인 하이엔드 오디오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이러한 청취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귀호강’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들을 모시는 작은 리허설 무대랄까. 가장 적극적으로 ‘시연회’를 도입하는 쪽은 백화점 업계다.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인 백화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백문이 불여일청(聽)’을 강조하고 있다.
존 레전드가 귀에 대고 열창
백문이 불여일견의 궁금증을 띄우고 음질 체험 전용 공간을 찾았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8층에 오르자 밀실이 보였다. 한 오디오 브랜드 매장 안의 유리문을 지나 들어가서 닫자 외부 소리가 차단되며 적막이 시작됐다. 고요의 공간에 입성한 것이다.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헤드셋을 끼자 주변 소음과 완전히 분리되어버린 영화 ‘라붐’ 속 소피 마르소가 된 심정이 이런 것일까.
직원의 도움을 받아 존 레전드의 공연 실황을 재생했다. 조용한 방이 일순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사방에 놓인 스피커에서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밤안개처럼 공기에 퍼지듯 나왔다. 고음질이어서 실제로 귀에 입을 대고 불러주는 듯해 부담스러울 지경. 이처럼 소름 돋도록 생생한 청음실은 여러 오디오 브랜드가 입점한 같은 층에 즐비했다.
이날 만난 한 남성은 “와인을 시음(試飮)해보고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고음질을 자랑하는 오디오는 수천만원까지 가는 고가이기 때문에 신중히 시음(試音)해본 뒤 구매를 결정하는 편”이라고 했다.
고요함 속에서 들려주다
백화점에 리스닝 룸의 등장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다. 오로지 듣기 위한 공간이 늘고 있다.
롯데는 본점 ‘뱅앤올룹슨’ 매장에 실제 집처럼 꾸민 청음실을 마련했으며, 동탄점 ‘드비알레’에는 이 브랜드의 모든 음향 제품을 자유롭게 비교하며 체험 가능한 공간을 마련했다. 건대스타시티점 ‘테일러드홈’에 오픈한 프리미엄 오디오 편집숍 ‘오드 오디오’에는 ‘프로그레시브’, ‘제네바’, ‘루악’ 등 유명 브랜드들을 한 자리에서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현대도 체험 공간을 강화한 하이엔드 오디오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 하이엔드 오디오 편집숍과 서점으로 구성된 ‘LSR(listening room) × 스틸북스’를 선보였는데, 매장에 별도 청음실을 마련해 판매 중인 음반을 들어볼 수 있게 했다.(현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운영 중단)
이와 함께 같은 건물 5층에 위치한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메르디앙’ 매장에도 전용 청취 공간을 조성했다.
지난달 무역센터점 ‘뱅앤올룹슨’ 매장을 리뉴얼 오픈하면서는 TV, 라우드 스피커로 구성된 홈시어터 상품부터 포터블 스피커와 이어폰, 헤드폰 등 국내에 출시한 전 상품을 체험해 볼 수 있게 꾸몄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한남동에 위치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고메 494 한남’에 하이엔드 오디오 청음시설과 바가 결합된 사적 공간 ‘리스닝룸 by ODE’ 등을 마련했다.
고가여도 잘 팔리네
공들이는 만큼 관련 매출도 겅중겅중 뛰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하이엔드 오디오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76% 신장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특히 MZ세대의 매출이 같은 기간 128% 고신장했다”며 “전체 하이엔드 오디오 매출 중 이 세대가 차지하는 구성비 역시 전년보다 11%포인트 증가한 4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어 “MZ세대의 자신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Flex(플렉스) 문화’가 명품에 이어 프리미엄 오디오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의 하이엔드 오디오 매출 신장률 또한 가파르다. 2020년 24.3%에서 2021년 83.7%로 껑충 뛴 것.
이 같은 실적 그래프의 상승 곡선은 코로나19 사태의 시작과 함께 그려졌다. 이 기간, 집에서 내밀한 취미를 찾던 이들이 색다른 자기만족인 ‘귀호강’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오세은 롯데백화점 생활가전 팀장은 “요즘은 성능뿐 아니라 감성도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된 만큼, 성능과 감성을 모두 갖춘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