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이 제품이 좋아”는 한물간 광고
메시지 은근히 녹여내는 콘텐츠가 대세
웹예능·웹드라마로 브랜딩 영토 확장 중
“도대체 제품은 어디 간 거야?”
기업들의 브랜드 홍보 전략이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이 제품이 이래서 좋다’는 식의 직접적인 광고보다 브랜드의 가치를 일상 속에 녹여내는 스토리텔링이 마케팅의 대세가 되고 있다. SNS와 유튜브를 활용한 웹예능·웹드라마가 콘텐츠의 핵심으로 부상했으며, 전통적인 TV광고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CNB가 확 달라진 트렌드를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디지털에 익숙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초 출생자)를 겨냥한 새로운 방식의 홍보가 유통, 패션, 가전업계를 휩쓸고 있다. 단순 브랜드 노출을 목적으로 하는 PPL(간접광고)을 넘어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레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하자는 것.
최근의 여러 사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콘텐츠는 경동나비엔의 ‘단꿈상점’ 캠페인이다.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로 유명한 이 기업은 자사 제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을 벗어나 숙면온도의 중요성을 알리는 식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대한민국 모두가 숙면할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숙면을 위한 작은 선물을 증정하는 ‘Welcome Kit’ 이벤트, 핫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각 분야 소호 매장들과 협업한 ‘나비엔 숙면 패키지 프로모션’ 등을 펼치고 있다.
SNS·유튜브 타고 소리소문없이 전파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저마다의 잠 못 드는 사연을 소개하며, 단꿈의 소중함과 숙면온도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 대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지만, 보일러 전문 중견기업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JTBC 유튜브 채널과 단꿈상점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킹슬맨’도 인기몰이 중이다. 숙면을 팔기 위해 결성된 TF팀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출연진 캐스팅에도 신경을 썼다. 황광희, 황제성, 이은지, 최예나 등 요즘 핫한 4인의 출연진이 재치 있는 입담과 ‘숙면을 판다’는 컨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티저 영상은 평균 조회수 90만회, 매주 공개되고 있는 에피소드도 50만회를 웃돌고 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CNB에 “건강한 잠을 위해서는 내 피부에 닿는 온도가 매우 중요하기에 다양한 노력을 통해 최적의 숙면온도를 찾고 있다”며 “소비자 생활 기업으로서, 고객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게 이번 캠페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패션계는 ‘세사패TV’로 2030 공략
대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국내 패션업계 1위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30을 겨냥한 공격적인 ‘이커머스’ 전략을 펴고 있다. ‘세상이 사랑하는 패션’이라는 의미의 패션부문 통합 온라인 쇼핑몰 SSF샵을 통해 동영상 콘텐츠를 보급하고, 라이브 커머스 등으로 브랜딩 영토를 넓히는 중이다.
SSF샵이 지난 7월 선보인 패션 전문 유튜브 채널 ‘세사패TV’의 경우, 일방향 시청 콘텐츠가 아닌 참여와 경험을 공유하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지난달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했다.
전문 쇼호스트가 진행하는 라이브 커머스 ‘세사패 라이브’에서는 사내 임직원을 비롯한 패션 전문가들이 솔루션을 제안한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아미를 비롯해 꼼데가르송, 구호플러스, 메종키츠네, 빈폴키즈 등 인기 브랜드가 주제다.
세사패TV에서는 패션 정보 뿐 아니라 다양한 예능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배달의 프로들’ ‘화보맛집’ ‘빽투더 의상실’ ‘패션공론화’ 등 여러 분야의 동영상이 제공되고 있다. 특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브랜드송’이란 콘텐츠는 단일 동영상으로 조회수 220만회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롯데쇼핑)은 게임을 응용한 콘텐츠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세계관 최강자 ‘오떼르’가 되기 위한 ‘르쏘공 왕국’ 공주의 미션 수행기를 그린 웹예능이다.
백화점과 연결된 평행세계에서 MZ세대 고객을 ‘사라진 아이들’로 설정하고, 백화점 오픈 시간을 기준으로 2D 캐릭터인 밤의 오떼르 ‘휴’와 인기 아이돌 ‘이달의 소녀’ ‘츄’가 번갈아 활약하는 세계관으로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휴’의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hauteur_the_night’을 통해, ‘츄’의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오떼르(Hauteur the day)’의 ‘오떼르 유니버스 챕더 3’ ‘오떼르: 츄진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공식 유튜브 채널 ‘씨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자체 제작 웹예능 ‘쓔퍼맨’, 신상품을 소개하는 ‘신상뉴스’, 상품 제조과정을 보여주는 ‘씨유타임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편의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쓔퍼맨 시즌2’의 경우, 방송인 데프콘이 애환, 상생, 고향 등 회차별로 키워드를 선정해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필요한 CU 판매 제품을 추천하는 내용이다. 지난 6월 첫 방영된 ‘쓔퍼맨 시즌1’은 1화가 공개된 지 사흘 만에 조회수 3만회를 기록했고, SNS 채널에서의 총 조회수는 250만 회에 달한다. 지난 17일 첫 방영을 시작한 ‘쓔퍼맨 시즌2’ 역시 티저 영상 누적조회수만 업로드 일주일 만에 8만회를 넘겼다.
마케팅과 문화, 경계 무너져
여러 기업들의 이같은 시도는 MZ세대와의 소통 활로를 제대로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바일과 유튜브, SNS가 2030들의 소통 수단인만큼, 기업들은 이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대기업 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기업 홍보방식 뿐 아니라 기업 문화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빅블러(Big Blur) 현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사)한국빅데이터협회 구병두 부회장은 CNB에 “제품이 아닌 재미를 추구하는 마케팅은 소비자에게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상업과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의식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