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폐기물로 생활용품 만들기
홈피서 주소 입력→재료 발송
도안 따라 자르고 붙이면 변신
“누가 재창조 잘했나” 콘테스트
뭐든 해봅니다. 대리인을 자처합니다. 모이지도 말고 움직임도 줄이고 마스크 없이는 대화도 금해야하는 ‘자제의 시대’. CNB가 대신 먹고 만지고 체험하고, 여차하면 뒹굴어서라도 생생히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가전제품 박스를 재활용해 쓸모있는 가구를 만들어 경쟁(?)해본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친환경 활동은 어렵지 않다. 필부필부도 안다. 일상에서 작은 습관을 바꾸면 된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되도록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활용한다.
이 정도쯤이야 수월하다면 이제 월반(越班)을 고민할 차례다. 사용 자제가 목적인 기초반에서 고급반으로 넘어갈 수 있다. 버리는 물건을 재창조해서 재사용하는 응용 과정이 다음 단계다. 복잡다단해 보여도 성취가 크다. 쓰레기는 줄이고 필요한 용품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얻는 게 크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레기를 다시 사용한단 말인가? 거창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닌가?
이 진일보한 친환경 활동을 수행하고 자랑스레 인증하는 행위가 현재 진행 중이어서 참고할 만하다. 삼성전자가 TV 포장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2021 에코패키지 챌린지’이다. 가수 지코가 다 같이 흥겹게 춤추자면서 퍼트린 ‘아무노래’ 챌린지처럼 도전 과제가 쉽다. 포장박스를 그냥 버리지 않고 소품을 만들면 되는데, 도안에 따라 선을 긋고 자르기만 하면 된다. 불특정 다수와 누가 누가 더 잘 따라 하나를 놓고 겨루는, 이름하여 ‘친환경 챌린지’에 도전장을 내밀어봤다.
대문짝만한 박스가 책꽂이로 탈바꿈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무료로 제공 받는다. 관련 홈페이지에 가입한 뒤 배송받을 주소만 입력하면 삼성전자 측에서 박스를 보내준다. 마침 2021년형 TV를 구매했다면 거기서 나온 박스를 활용하면 된다. 추가 준비물은 연필, 지우개, 자, 칼이다. 아차차, 생각보다 자르기가 쉽지 않아 다칠 수 있으니 목장갑을 챙겨도 좋다.
신청한 지 딱 일주일 만에 대문짝만한 65인치 TV 포장박스가 대문 앞에 도착했다. 몇 번 실수해도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도 좋을 만큼 컸다. 겉면에 새겨진 QR코드를 찍으면 제작 설명서 페이지로 넘어간다. 랜덤으로 받은 ‘더 프레임’(The Frame) TV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고양이 터널, 고양이 집, 스마트폰 스캐너 스탠드, 태블릿 스캐너 스탠드, 반려동물 계단, 책꽂이, 탁상 선반, 수납함, TV 콘솔, 잡지 수납함이라고 나왔다.
개중에 난이도 별 두 개짜리 책꽂이를 선택했다. 예상 제작 소요시간은 60분이라고 했다. 거실을 광활하게 펼쳐진 박스로 점거한 채 가족들에게 말했다. “30분 안에 끝낼 테니 모두 방으로!”
점 따라 그린 뒤 정확히 잘라야 성공
박스 표면에는 하얀 점이 모눈종이처럼 가로로 세로로 반듯하게 박혀있다. 점과 점 사이는 약 1cm다. 이 점들이 기준점이다. 도안에 상세히 나온다. 위로 스물네 칸, 다음엔 오른쪽으로 일곱 칸, 그다음엔 아래로 세 칸…. 안내에 따라 길을 찾아가며 X자를 표시하고 점과 점을 이으면 설계도와 똑같은 밑그림이 박스에 새겨진다. 이 밑그림을 기준선 삼아 칼로 자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책꽂이를 최종 완성하려면 총 네 면이 필요하다. 하단면, 후면, 우측면, 좌측면이다. 한 장 한 장 밑그림을 완성했을 때 22분이 지나있었다. ‘30분 완성론’은 그렇게 실패한 이론이 되어버렸다.
그릴 때가 행복했다는 건 자르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TV는 과연 고가의 물건이어서 박스가 두툼하고 견고했다. 두께가 어림잡아 1cm는 넘어보였다. 힘을 어지간히 주지 않으면 칼이 나아가질 않는다. 점에서 점까지 균일하게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 애써 그린 본품을 잘라버리게 되니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
종이 폐기물 연 200만톤…재활용법 고민해야
하다 보니 알게 된 팁을 하나 전해드리면, 처음부터 한 번에 긋지 말고 점마다 칼집을 살짝씩 내면 정확하게 자를 수 있다. 또 필요한 건 여유다. 어쨌든 손목에 부담이 가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업하는 게 좋다. 안내된 소요시간(60분)을 크게 단축해 우쭐대보려는 마음도 있었는데, 자르는 과정에서 모든 걸 내려놨다. 손이 아프다.
그러나 이 힘든 과정이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유를 정확히 드러낸다. 포장박스를 재활용해야 하는 근거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제품 보호가 목적인 TV 포장재는 어쩔 수 없이 두꺼운 골판지가 주로 사용된다. 2017년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골판지를 포함한 국내 종이 폐기물은 연간 약 200만 톤으로 추산된다. 언제까지고 마냥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다용도로 재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무림 고수의 칼춤처럼 나부끼다 보니 어느새 네 개의 면이 완성됐다. 어느 부분은 반듯하고 어디는 너덜너덜했지만 비로소 끝이 보였다. 손아귀 힘도 너덜너덜해져서 미적 포인트에 대한 중요도는 미적미적해졌다. 땀이 골판지에 떨어져 수묵담채화처럼 보이는 착시도 일어났다.
이제 이 네 개의 조립체를 끼우기만 하면 된다. 접착제는 필요없다. 합체 로봇처럼 팔다리를 끼웠더니, 그럴듯한 책꽂이가 탄생했다. 무엇보다 견고했다. 책 다섯 권을 채워 넣어도 짱짱했다. 이러려고 골판지는 두꺼웠던 것인가. 힘들었던 사투가 잊혔다.
책상에 아무렇게 방치해 둔 책들은 그렇게 정리됐다. 흐뭇해하면서 시계를 봤더니 2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방에서 기척이 들렸다. 코 고는 소리였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박스의 잔재들을 치웠다.
“1등 아니면 어때” 만드는 재미 충분
지난 4일 시작한 ‘2021 에코패키지 챌린지’ 공모전은 다음달 31일까지 진행된다. 박스로 작품을 만들어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필수 태그와 함께 업로드한 후 삼성닷컴에서 ‘이벤트 참여’에 등록하면 응모가 완료된다.
수상자는 오는 8월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1등에게 65형 ‘더 프레임(The Frame)’, 2·3등에게 각각 55형 ‘더 세리프(The Serif)’와 32형 더 프레임을 상품으로 수여한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카카오프렌즈 한정판 굿즈를 제공한다.
다른 이들의 작품이 궁금하면 SNS에 ‘#2021에코패키지챌린지’ 등을 쳐보면 볼 수 있다. 인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애써 우열을 가려가며 완성도를 품평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자녀 또는 배우자와 만들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는 평이 많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면 어떠랴.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것도 분명 크다.
황태환 삼성전자 한국총괄 전무는 “삼성전자는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인 시대를 맞아 에코패키지 챌린지와 같은 소비자 참여형 캠페인은 물론 지속적으로 친환경 기술을 제품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이번 공모전을 통해 환경 보호에 참여함과 동시에 나만의 생활 소품을 만드는 즐거운 업사이클링 활동을 경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