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아파텔이 재벌 고가저택 추월
1타강사·연예인은 타워팰리스에 환호
‘담장 높은 회장님 집’ 역사 저편으로
온 나라가 재산세·종부세 논란으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고가주택 시장에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젊은 신흥부호들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재벌총수=집값 1위’ 공식이 깨졌으며, 100억원에 육박하는 ‘아파텔’이 등장해 수십억원대 주택에 살고 있는 회장님들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CNB가 ‘부동산의 역설’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작년부터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무주택자는 오른 집값 때문에 좌절하고 있으며, 유주택자는 늘어난 세금 때문에 아우성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일 현재 2000개가 넘는 부동산 관련 청원 글이 올라와 있고 이중 대부분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다.
주택 종부세 대상자는 2019년 전국 52만명에서 작년엔 66만7천명으로 늘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공시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내년엔 대상자가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올해부터는 세율 인상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공시지가 현실화 등 세금 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이 크게 늘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고가주택 시장에서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첨단편의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가 급상승하면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재벌가 고가주택을 앞지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트라움의 위력’ 역사 속으로?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구 ‘더펜트하우스청담’(이하 청담)이다. 이 아파트의 407.71㎡형은 올해 공시가격이 163억2천만원으로 평가돼 전국 공동주택 중 가장 비싼 주택으로 기록됐다.
지난해 준공돼 올해 첫 보유세를 내는 이 아파트는 지하 6층~지상 20층, 전용 273㎡형 27가구와 최고층 펜트하우스(407.71㎡형) 2가구 등 총 29가구 규모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전용 273㎡형이 115억원에 거래됐는데, 올해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최고가다. 407.71㎡형의 경우 내야 하는 보유세가 무려 4억953만원으로 추정된다.
청담 때문에 2006년부터 15년 동안 전국 최고가 공동주택 자리를 지켰던 서울 서초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5차’는 2위로 밀렸다.
‘회장님의 집’ ‘재벌들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이 아파트는 전체 가구가 3개(A·B·C)동 18세대에 불과하며, 전용면적 226~273㎡로 이뤄져 있다. 올해 공시가는 72억원 안팎이다.
이곳은 여러 재벌 총수들이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는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강호찬 넥센타이어 대표, 경주현 전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김석규 한국몬테소리 회장, 이현규 한독어패럴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인 김근수 후성그룹 회장, 오상훈 대화제지 대표, 곽정환 코웨이홀딩스 회장,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등의 이름이 올라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그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한때 이 저택을 소유했었다.
‘보안·폐쇄’에서 ‘개방·실용’으로
트라움하우스가 청담에게 밀린 것은 시대적 트렌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CNB에 “청담이 연예인·1타강사 등 대중성을 중시하는 젊은 부자들의 집이라면 트라움은 베일에 가려진 회장님의 저택으로 볼 수 있다”며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서 서로의 자산가치가 역전된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두 곳을 비교해보면, 우선 트라움하우스는 재벌가 특유의 폐쇄성과 안전성이 특징이다.
한 개 층에는 두 가구만 배치됐고 가구별 전용 엘리베이터와 전용 로비가 갖춰져 있다. 엘리베이터는 본인이 사는 층과 공용시설이 있는 지하 3층~지상 1층만 작동한다. 남의 집 문 앞에 내릴 가능성이 아예 없는 셈.
특히 이곳은 핵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공호 시설로 유명하다. 단지 내 지하 4층에 마련된 방공호는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으며 핵폭풍으로 인한 열과 압력까지 차단한다고 알려져 있다. 간이침대, 발전기, 화장실, 창고, 가스필터와 공기순환 시설 등을 갖춰 200여명이 외부 물자 조달 없이 2개월을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절정에 달했던 4~5년전에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반면 작년에 완공된 ‘더펜트하우스청담’에는 방공호 같은 안보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최첨단 편의시설과 실용성을 갖췄다. 전 가구 복층 설계로 공간 활용이 뛰어나며 층고가 높고 탁 트인 와이드 창문이 특징이다. 커뮤니티시설로 스크린골프, 피트니스, 와인바, 영화관, 골프연습장, 주민 회의공간 등을 갖춰 원스톱으로 단지내 문화 생활이 가능하다. 한강뷰와 시티뷰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곳에는 장동건-고소영 부부를 비롯해 골프여제 박인비, 메가스터디 1타 강사 현우진,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 등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해보면 트라움하우스는 보안·폐쇄성이 특징인 전통 재벌 취향을 반영한 반면, 청담은 개방·실용성을 갖춘 신흥 부호에게 적합해 보인다.
어쨌든 주택가격 면에선 신흥부호들이 기존 재벌을 추월한 셈이다.
아파텔이 재벌가 체면 구겨
이런 현상은 오피스 취급을 받던 ‘아파텔’이 고가아파트를 능가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앤드롯데월드몰 오피스텔 전용면적 252.91㎡는 지난 1월 92억2324원(61층)에 팔렸다.
이는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탑10에 이름을 올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전용 273㎡(67억9800만원),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파르크 한남’ 전용 268㎡(67억5600만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전용 269㎡(67억2400만원),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마크힐스이스트윙’ 전용 272㎡ (66억9900만원) 보다 높은 기록이다. 공시지가와 실거래가 사이의 간극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강남권 최고가 아파트들을 추월한 셈이다.
이뿐 아니라 강남구 청담동 피엔폴루스 전용 195.43㎡(40억원·20층)와 138.56㎡(34억원·16층),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용 187.15㎡(32억8천만원·3층) 등도 최고가를 경신하며 인근 아파트 매매가를 앞질렀다.
아파텔은 주로 실용성을 강조하는 젊은 사업가들이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전통 부호들의 체면을 구긴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산업전반이 재편되면서 게임 IT 온라인몰 등 언택트(비대면) 업종에서 젊은 부호들이 탄생하고 있고, 이 영향으로 고가주택의 주거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며 “이러다보니 주택가격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른 마당’은 여전히 회장님 차지
이처럼 공동주택 시장에서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지만, 그래도 단독주택 시장에서는 여전히 재벌가 저택이 ‘최고가 주택 1위’의 체면을 지키고 있다.
국토부 최근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한남동 저택이다. 규모는 1245.1㎡이며 올해 공시가격은 431억5천만원으로 수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도 이 회장 소유의 이태원동 주택(3422.9㎡)이며 349억6천만원이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한남동 자택(2604.78㎡, 306억5천만원)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은 성남시 분당구 남서울CC와 붙어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저택이다. 공시가격 16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억원 올랐다.
이 집은 규모 면에서 삼성가 저택들을 능가한다. 대지면적이 4467㎡(연면적 3049㎡)에 이르며,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에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이다.
이국적인 유럽풍 건축양식에 최고급 수입자재로 치장돼 있으며, 집 뒷문을 통해 남서울CC 그라운드로 곧장 갈 수 있다. 그라운드 초입에는 작은 연못과 울창한 수목이 우거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뒤로는 청계산과 금토산이, 앞으로는 운중천이 흘러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를 갖췄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제왕적 재벌총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3·4세로의 경영승계가 이뤄지면서 주택 선호 취향도 많이 바뀌고 있다”며 “1·2세대 재벌들은 높은 담장과 마당 있는 넓은 저택을 선호했지만, 지금의 젊은 기업인들은 드라마 펜트하우스 같은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