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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비즈] “발레 배워봤습니다” 현대백화점 ‘비대면’ 문화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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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1.05.03 09:31:41

온라인으로 발레 동영상 수업
서툴러도 타인 눈치볼일 없어
멈춤·재생 반복에 1시간 훌쩍

 

 

발레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다만 남자여서 혹여 놀림받지 않을까, 배우는 걸 포기했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아버지의 주장과 같이 "남자는 권투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게 전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몰래 배워볼 기회가 생겼다. 현대백화점의 온라인 문화센터 강의 중 발레 과목이 개설된 것이다. VOD로 제공되기 때문에 눈치 볼 것 없이 수강 신청을 했다. 어설프지만 꿋꿋이 발레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해봤다. (사진=선명규 기자)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이고 마스크 없이는 대화도 금해야 하는 ‘자제의 시대’. 출타는 왠지 눈치 보입니다. 그래서 CNB가 대신 갑니다. 재밌고 새롭고 어쨌든 신선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가보니 알게 된’ 또 다른 오감의 영역이 안방으로 배달 갑니다. 이번 편은 비대면 트렌드로 인해 온라인으로 강의실을 옮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발레 수업을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남자가 발레 배우면 어때서



아들 빌리가 발레를 배우고 있단 걸 알게 된 아버지는 쏘아붙인다. “남자는 축구나 권투를 하는 거야!”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198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지금이라고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얼마 전, 발레리노를 소재로 삼은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가 인기를 끈 건 남자 무용소의 희귀성 때문이다.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의 낯선 복장과 몸짓에 객석에선 연방 웃음이 터져나왔다. 남자가 하는 발레가 개그 코드로 작동한 것이다.

타인의 웃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성장 영화의 교본으로 꼽히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억눌러왔을 뿐인데, 그동안 남자여서 쉬이 도전 못한 발레를 배울 기회가 어이없게도 코로나로 인해 찾아왔다.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긴 백화점들의 문화센터 강의가 대부분 영상통화 같은 소통형으로 진행되는 와중에, 현대백화점이 주문형 비디오(VOD)로 배울 수 있는 과목을 여럿 개설한 것이다. 여기에 발레도 포함됐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쓰여 있었다. ‘1:1클래스가 부담스럽거나 혼자 운동하고 싶은 분’ 부끄러워 말고 지르란 소리로 들렸다. 강사에게조차 나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으니, 주저하지 않고 결제한 뒤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강사의 몸짓을 나에게 ‘복붙’



“두 무릎, 그리고 등을 편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영상 속 마주 보고 앉은 강사가 이미 클 대로 커버린 빌리를 향해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동영상 강의니 만큼, 이제부터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내 몸에 붙여넣기만 하면 됐다. 말도 쉽고 보기에도 쉬웠다. 어려운 건 삐걱대는 나의 육체를 제어하는 거다. 사춘기 아이처럼 말을 안 듣는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강사의 동작과 나의 몸짓이 일치하지 않을 거란 걸.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재능 천재인 빌리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하면서 성장했다.

VOD의 장점은 나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니 못해도 수치심이 들지 않는다. 장성한 빌리의 마음과 몸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을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 일시정지 기능도 유용하다. 잠시 멈춤을 눌러놓고 자세를 계속해서 고쳐잡을 수 있다. 고작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무릎과 허리가 직각을 이루게 할 뿐인데 한참이 걸렸다. 그러면 뭐 어때?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무대인 거실의 주인공은 나인걸. 어느 정도 강사와 비슷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시 재생을 했다.

“두 손바닥은 몸통을 향하고요. 팔꿈치는 들고 둥글게 만든 팔을 그대로 머리 위로 올리세요. 이제 손등으로 열면서, 팔이 내려오면서 ‘알라세컨’을 만들어 줍니다”

양팔로 작은 항아리를 편안하게 감싸는 형태를 만들었다. 그 상태서 그대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어 꽃이 만개하듯이 천천히 양팔을 벌려 일자로 만들었다. 설명대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시선을 손끝에 뒀다. 그리고 나비의 날갯짓처럼 양팔을 천천히 나부꼈다. 화면의 강사는 우아했으나 저 멀리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하지만 뭐 어떠랴, 누가 본다고. 또 상기했다.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거울은 치웠다.
 

영상 속 강사의 몸짓을 복사해서 나에게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데 쉽지 않다. 상체가 더 돌아가야 하는데 저기까지가 최선이었다. (사진=선명규 기자)

 


“발레는 역시 힘들다” 표정연기는 언감생심



발레의 핵심은 유연함이다. 이 수업은 ‘데일리 발레 스트레칭’으로, 기초반의 성격이다. 접고 늘리면서 알게 됐다. 몸이 부드러워져야 발레의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스트레칭이 시작이다.

머리 위로 팔을 들어 타원형을 만든 뒤 그대로 숙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발바닥 앞에 오게끔 몸을 접고 그대로 자세를 유지하는 거다. 다시 상체를 들었다 숙이기를 반복. 이후 난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오른 다리를 왼 다리 무릎에 얹어서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할 차례다. “아래에 있는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강사의 경고를 본의 아니게 무시했다. 자꾸 접혔다. 앉은 상태로 발바닥을 붙여 쭉 숙이는 동작은 또 어떤가. 석고대죄하는 대역죄인의 형상과 다를 바 없었지만, 흉측한 모습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억지로 쥐어 짜다보니 눈이 빠질 듯한 고통이 따라왔다. 영근 땀이 요가매트에 떨어졌다.

이제 반복 운동이다. 왼 다리를 곧게 옆으로 뻗고 오른손을 발등 근처까지 내린다. 옆구리가 쫙 늘어나는 느낌이 들 때까지. 이 동작을 오른 다리와 왼손으로 바꾸어 계속한다. 이때 다리가 펴진 상태를 유지하도록 계속해서 신경써야 한다. 이걸 되풀이 한다.

여기까지 와서야 몸의 긴장이 풀렸다. 이때 진짜가 시작됐다. 한쪽 무릎을 접은 상태서 반대 다리를 뒤로 쭉 뺀다음 상체를 뒤로 숙였다. 난공불락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다리를 찢은 상태서 가슴이 땅에 닿을 만큼 숙여야 하는 동작은 강사와의 일치도가 20%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 상태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보내면서 양다리의 안쪽 근육을 풀어주라고 했는데, 사타구니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갖은 곡절을 겪은 끝에 수업이 끝났다. 강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앉은 자세로 진행됐다. 그 이유를 곰곰 따져보니 수업에 등장하는 동작들을 서서 한다면 균형감각이 추가돼야 한다. 초보에겐 아직 어려운 영역이다. 처음부터 일어서서 했다면 흉내조차 못 냈을 것이다. 바닥에 의지해 몸을 이리저리 써보니 가까스로라도 된 것이다. 초보자에게 맞춤인 수업이다.

완강(完講)을 하고 확신했다. 발레는 힘들다. 숨이 턱까지 차고 온몸이 쑤시고 떨린다. 이 수업은 몸풀기 정도였을 텐데, 버피테스트나 인터벌 트레이닝에 가까운 강도를 느꼈다. 우아함이 백조의 얼굴이라면 요동치는 근육은 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발길질과 같다. 아름다운 표정 연기는 엄청난 노력 뒤에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앉은 상태서 진행됐다. 일어서서 따라하려면 균형감각이 더해져야 한다. 바닥에 의지해야 초보자도 따라할 수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비대면으로 묻고 답하고…보충수업은 ‘덤’



동영상 강의라고 해서 일방적은 아니다. 질의응답도 가능하다.

수업이 끝나고 궁금한 점이 있어 손을 들었다. 앱에 있는 문자 채팅창을 켜서 물었다. “허벅지 뒤쪽 유연성을 집중적으로 기르고 싶은데 어떤 동작이 도움 될까요?” 강사의 답변이 금세 날아왔다. “앉아서 한쪽 다리를 접고 상체를 앞으로 내리는 스트레칭이 있어요. 그게 도움이 될 거에요” 비대면 보충수업이 이뤄진 것이다.

영상은 8분 30초 가량이다. 처음엔 너무 짧지 않나 생각했다. 10분이 채 안 되는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지만 러닝 타임이 전부가 아니다. 멈춤과 재생을 반복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영상 말미에 이런 문구가 나왔다. ‘주 5일 이상 꾸준히 해보세요. 일주일 이후부터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기한은 약 5개월이다. 그동안 반복해서 보며 연습할 수 있다.

영화에서 빌리는 로얄 발레학교 면접장에서 “춤출 때 기분이 어떠니?”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시작하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돼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새처럼 나는 것 같아요” 무아지경에 빠진 빌리의 심경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도해보니 발레에 한 뼘 다가서긴 한 것 같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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