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토지전쟁, 무산계급의 저항 시작
길 잃은 거대여당, 또 ‘규제완화’ 헛발질
다주택자 특혜철폐 등 부동산개혁 나서야
(CNB=도기천 편집국장)
“무공천 번복, 추미애·윤석열 갈등, 조국 수호, 내로남불을 반성한다”(민주당 일부 초선의원들)
"정부·여당은 오만하고 위선적이며 무능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깊이 반성하고 성찰한다" (민주당 재선의원들)
“선거 결과는 그동안 누적된 민심이 일시에 표출된 것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대한 민심을 적극 수렴해서 서민과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의 꿈, 조세 부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민주당 3선이상 중진들)
4.7재보선에서 참패한 집권여당에서 연일 반성문이 쏟아졌다. 일부 초선들이 불을 붙인 반성문 사태는 연이어 재선, 3선, 중진들의 자성으로 이어졌다.
반성의 화두는 부동산, 공정, 내로남불로 요약된다. 주로 젊은 의원들은 2019년 조국 사태로 촉발된 공정·정의에 대해, 중진들은 그간 여권 인사들이 보여준 이중적 태도(내로남불)를 고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동산’은 여권 전체에 가장 뼈아픈 키워드다. 집값 급등으로 전통 지지기반인 서민층이 대거 돌아섰기 때문이다.
민심은 “정신 차려라”
하지만 정작 내놓는 해법은 본질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그간의 과정부터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스무번 넘게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풍선효과만 가져왔다.
가령, 서울 강남지역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서울 나머지 지역의 아파트값이 급등했고, 서울 전역으로 규제를 넓히면 경기도가 들썩였다. 경기도를 묶으면 지방 대도시 아파트가격이 치솟았다. 강남 때리면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이 웃고, 마용성 잡으면 김포·파주가 폭등하는 식이다.
불과 몇년 새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단지는 2배 이상 가격이 올랐지만, 반대로 전세입자들은 폭등한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을 떠나고 있다.
이같은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특히 아파트 시장)은 극심한 자산양극화를 가져왔다. 과거 영호남 지역갈등으로, 진보-보수로 갈라졌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집주인과 세입자’로 갈라졌다. 대형건설사와 지주(地主), 다주택자 등 어떻게든 집값을 올리려는 세력과 거대한 분노로 응집된 ‘부동산 무산계급(無産階級)’이 충돌하는 ‘21세기 한국판 토지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토지전쟁에서 무산계급은 거대여당에 심각한 경고장을 날렸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기관이 재보선 직후인 지난 12~14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4.7재보선에서 압승한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잘못해서’가 61%로 가장 높았다. ‘국민의힘이 좋고 잘해서’라는 답변은 7%에 불과했다. (만18세 이상 1010명 대상 휴대전화가상번호 전화면접조사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부동산 문제를 야당이 해결해달라고 표를 준게 아니라는 얘기다. ‘여당이 정신 차려서 부동산 개혁에 나서달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즉 국민은 다시 한번 민주당에게 기회를 준 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있는 듯하다. 반성은 무성하지만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
재보선 참패 이후 고작 나온 얘기가 부동산 감세다. 최근 새로 선출된 윤호중 원내대표를 비롯, 송영길·홍영표·우원식 등 당대표 출마 주자들 모두 “기존 부동산 조세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재산세·종부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를 낮추기 위한 당 특위까지 구성했다.
이런 감세 정책이 ‘저소득 1주택자’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무주택자들이 느끼는 좌절감·배신감을 생각한다면 유주택자의 세금을 줄이는게 먼저가 아니다.
이 판국에 웬 ‘감세’?
당장 단국 이래 최대 집값 부양책으로 꼽히는 주택임대사업자 세금 특혜부터 철폐해야 한다. 현재는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종부세, 양도세, 재산세를 100% 감면 받는다. 이 때문에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굳이 집을 팔 이유가 없다.
이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 경실련, 참여연대, 집값정상화시민행동 등 여러 시민단체들이 이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부자 특혜’를 없애달라는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취지에 역행하는 제도도 바로 잡아야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최근 공공개발지구 외 지역의 신규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시세의 90%까지 허용키로 해 무주택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당은 서민주거안정을 외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금융정책도 다시 설계돼야 한다. 1주택자가 두 번째 집을 구매할 때는 강력한 대출규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다주택자에게는 담보대출 기준이 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까다롭게 적용하고는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제2금융권을 활용하거나 일시적 2주택자 예외 규정을 악용하는 등 구멍이 크다.
이밖에 가격담합과 실거래허위신고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부동산감독기구의 설립, 개발시행사(건설사 등)가 적정 이윤 외에 거둔 수익은 환수해 공공에 재투자하는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등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지금 민주당은 철 지난 조국 전 장관 얘기나 ‘부자 감세’를 말할 때가 아니다. 전통지지기반인 서민층이 왜 등을 돌렸는지, 전세입자들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를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아직 기회는 있다.
(CNB=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