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과자
양파와 짜장의 조합은 우연?
봉지 뜯자 강한 중식의 향이
뭐든 해봅니다. 대리인을 자처합니다. 모이지도 말고 움직임도 줄이고 마스크 없이는 대화도 금해야하는 ‘자제의 시대’. CNB가 대신 먹고 만지고 체험하고, 여차하면 같이 뒹굴어서라도 생생히 들려드리겠습니다. ‘해보니 알게 된’ 후기가 안방으로 배달 갑니다. 이번 편은 맡아보고 먹어봐야 차이를 알 수 있는 ‘쏙 빼닮은’ 두 과자 이야기 입니다. <편집자주>
공교롭다. 비슷한 시기에 서로 많이 닮은 두 과자가 나왔다. 지난달 나란히 출시된 농심의 ‘짜파링’과 해태제과의 ‘구운 짜장’이다.
우연의 일치치곤 매우 흡사하다. 두 제품 모두 짜장과 양파를 조합했다. 중식에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양파없는 짜장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짜장면을 시켰는데 어느 하나가 없다면 누구나 단박에 알아차리고 분노할 것이다.
그래서 이 과자들의 맛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짐작과 같을까? 일반 소비자의 느낌과 전문가의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기자가 직접 먹어보고 난 뒤 오랜 경력의 중식 주방장에게 평가를 의뢰해 봤다.
안 먹으면 ‘인’이 박이는 이것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에 짜장면과 라면의 끌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자꾸만 생각나고, 각별한 이유가 없어도 괜히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비록 면(麵)은 없지만 짜장의 힘만으로도 인을 박을 수 있을 것인가. 봉지를 뜯었다.
향까지 닮았을 줄이야. 밀봉된 포장지를 연달아 개봉하자 스턴트맨이 연기합을 맞춘 듯 일관된 냄새가 시차를 두고 코를 연타했다.
비슷하나 굳이 농도의 우열을 따지자면 ‘구운 짜장’의 향이 조금 더 자극적이었다. ‘짜파링’이 부드러운 유니짜장이라면 ‘구운 짜장’은 강한 불에 시달린 간짜장에 가까웠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오븐에서 고온으로 데운 바람이 양파가 배합한 반죽 사이 공기층을 지나면서 구워 갓 볶은 것처럼 깔끔하고 향이 깊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과자이기에 실제 음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향이 춘장의 눅진하고 달큰함이라기보단 짜장을 압축하고 응고한 뒤 잘게 부순 고체의 질감에 더 가까운 이유다. 두 제품 뒷면에는 짜장맛 시즈닝(향과 맛을 증가하기 위해 향신료 등을 첨가하는 것)을 넣었다고 적혀있다.
맛이 번지는 순서는 서로 반대다. ‘짜파링’은 양파맛으로 시작해 짜장맛이 뒤늦게 입안에 퍼진다. ‘구운 짜장’은 역순이다. 종국에 하나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씹을수록 중국집 대표 메뉴의 맛이 미각에 올라탄다.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사실 흥행의 지름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농심 관계자는 “양파가 짜장면의 주재료로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제품”이라고 했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입맛을 노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전략을 택한 셈이다.
50년 경력 주방장 “간을 덜고 본연의 맛 집중하길”
인이 박일 대로 박였을 전문가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한 중식당의 50년 경력 주방장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하나씩 신중히 시식을 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간을 세게 해서 먹는 편이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두 제품 모두 짜장 본연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짠맛부터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밥에 곁들이는 음식이라면 이 정도 간이 적당하겠지만 과자의 경우 이것만 먹지 않느냐”며 “간을 조금 떨어뜨리고 짜장맛을 부각시키면 제품 이름에 충실할 듯하다”고 말했다.
주관적 견해일 수도 있다. 반세기 동안 주방을 일터로 삼아온 그는 “나는 만드는 사람이라서 약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짤지 싱거울지 어떨지는 먹어본 뒤 평가해도 늦지 않다.
김훈은 적었다. ‘짬뽕을 주문해놓으면 짜장면이 먹고 싶고, 짜장면을 주문해놓으면 짬뽕이 먹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두 가지 시장기 사이에서 자기분열을 일으키면서 주문을 바꾸는 손님들은 흔히 있다.’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다. 짜장 과자를 먹고나니 짬뽕 과자가 당겼기 때문이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