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서 사라지는 ‘플빨’
빼거나 생분해 성질로 교체
규제 강화에 “변해야 산다”
현재 유통가에서 가장 핫한 존재는 ‘플라스틱 빨대’다. 반(反)환경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아무리 편리해도 자연을 해치면 안녕을 고해야하는 법. 그것이 필(必)환경 시대에 부합하는 행동이기도하지만, 내년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정부 차원에서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 때문. 벌써부터 많은 음료업체들이 옥수수전분, 사탕수수 같은 무해한 소재로 바꾸거나 제품에서 과감히 빨대를 빼버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과연 ‘탈(脫)빨대’는 가능하고, ‘대롱의 대안’을 향한 이질감은 없을까? CNB가 먼저 체험해 봤다. (CNB=선명규 기자)
‘무빨’ 음료 대하는 행동단계 “번거로움은 잠깐”
유(有). 비닐을 벗겨 그대로 꽂는다. 입에 대고 약간의 흡입력을 발휘해 빨아들인다. 총 2단계.
무(無). 뚜껑 또는 덮는 비닐을 열거나 뜯는다. 그대로 들고 마신다. 여기까지 일단 2단계.
이제부터 변수가 발생한다. 손으로 쉽게 포장을 걷어낼 수 있게 만든 제품은 쉬운 편이다. 보다 꼼꼼히 밀봉된 팩음료 같은 제품이라면 도구가 필요하다. 가위가 필수다. 테두리에 표시된 선을 따라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개봉해도 어려움은 끝이 아니다. 손재주가 뛰어나지 않다면 음용 부분이 삐뚤빼뚤하거나 구멍이 크게 잘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내용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릴 수 있다. 입술에 골고루 묻으면 지워진 립스틱을 다시 발라야 해서 번거롭다. 구멍이 났으므로 미세먼지가 들어가진 않을까 못내 걱정도 된다. 귀찮음과 근심이 뒤섞인다.
이 가는 대롱이 뭐라고.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과거엔 몰랐다. 빨대없이 마신다는 게 이렇게 번거로울 줄이야. 최근 나온 ‘빨대를 뺀 음료’ 3종(컵커피·요구르트·우유)을 구해 마셔보니 이런 시행착오를 타개할 해법은 간단했다. 구하기 쉬운 준비물만 있으면 된다. 가위는 필수. 여러번 사용이 가능한 휴대용 빨대와 세척도구를 들고 다니거나 늘 텀블러를 소지하면서 부어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이게 간단할까? 아무래도 불편하다.
이를 의식하고 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무빨’ 제품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즐거운 불편함’. 불편하면 불평이 나오지 왜 즐거울까. 생각해보면 그건 사용자인 인간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2015년 태평양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구조된 올리브 바다거북은 경종을 크게 울렸다. 코에 길이 12cm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채 고통스러워하며 발견됐기 때문이다. 빨대가 없어서 즐거운 건 자연과 동물이다.
소비자 “빼주세요”하자, 기업 “빼겠습니다”
어쨌든 인간도 노력하기 시작했다. 최근 시중에 빨대 없는 음료 제품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유통사와 음료업체들이 기존에 있던 걸 빼거나 아예 없앤 상태서 내놓고 있다. 매일유업의 요구르트 ‘엔요100’과 '상하목장 유기농 멸균우유', 남양유업의 '맛있는우유GT 테트라팩'에는 빨대가 없고,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무(無)빨대 음료인 '빨대없는 컵커피' 2종(라떼·마끼아또)을 최근 판매대에 올렸다.
여기에 얽힌 재밌는 뒷얘기가 있다. 착한 소비를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에 기업이 빨리 응답한 사례다.
지난해 2월 한 소비자가 안 쓴 빨대들과 함께 사용을 줄여달라는 내용의 손편지를 매일유업에 보냈는데, 이 회사 임원이 수용의 답장을 보내며 일이 착착 진행됐다. 회사 측이 납품 업체 상황을 고려해 기존 빨대 재고부터 소진한 뒤 그해 6월 13일 생산분부터 아예 뺀 것이다. 해당 제품은 '엔요'로, 요구르트 중 유일하게 개별 빨대를 부착해 “아이 먹이기 좋아요” “편해요”라는 반응과 함께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제품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CNB에 “이 제품에서 빨대를 빼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44톤의 저감 효과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와 기업의 손뼉이 맞은 결과다.
자연분해 빨대, 처리 걱정 ‘끝’
이 같은 제거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이 교체다.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종이 빨대가 각광받아 왔으나 액체에 닿으면 금방 흐물흐물해지고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는 반응이 많아 대체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었다.
입맞춤 시 발생하는 거부감은 덜고, 더 오래 쓸 순 없을까.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내놓은 PLA빨대는 사용감이 기존 플라스틱 빨대와 유사하다. 직접 물컵에 꽂아 써보니 잘 녹지 않을 뿐더러 꽤 긴 시간 단단함을 유지했다. 이 편의점에서 연간 1억 개 이상 팔리는 파우치 음료를 사면 이 빨대가 제공된다.
플라스틱 빨대가 떼어지고 다른 성분으로 교체되면 생기는 이점이 있다. 올바르고 수월하게 버릴 수 있다.
환경부가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 ‘내 손안의 분리배출’을 보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균팩이나 멸균팩에 붙은 다른 재질은 모두 제거한 후 배출해야 하는데 빨대는 물론 이를 감싼 비닐도 해당된다. 표면에 붙은 모든 걸 제거해야 한다. 종이빨대는 음료 등의 이물질이 흡수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워 종량제봉투로 버려야 한다. 애초에 붙어있지 않으면 팩만 그냥 버리면 될 일이다. GS25의 PLA빨대는 옥수수 소재로 만들어져 100% 생분해되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버릴 수 있다.
내년부터 규제 심해지는데…의식은 아직도
당장은 선택일지라도 내년부턴 다르다. 지금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환경부가 2022년 6월부터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소(음식점·제과점 등)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2월 16일부터 4월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전반적인 인식은 부족해 보인다. 최근 편의점과 소규모 마트 10여 곳을 돌며 ‘무빨’ 음료를 실제로 구매해보니 “이거 이제 빨대없이 나와요. 필요하시면 저기서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직원이 가리킨 쪽엔 플라스틱 빨대가 쌓여있었다. 이렇듯 아직 전반적인 분위기는 불협화음. 제조사, 일선 매장, 소비자까지 손뼉이 맞아야 빠른 변화를 맞을 수 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