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자판기’로 비대면 거래
셀프결제하면 보관함 저절로 열려
당근마켓·번개장터와 협업도 활발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고거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집콕’ 관련 제품 거래가 활발해지자 중고 시장에 뛰어든 것. 중고나라, 당근마켓 등 스타트업들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틈새를 공략할 수 있을까? CNB가 현장을 방문해 유통 공룡들의 전략을 들여다봤다. (CNB=김수찬 기자)
대형 유통사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서비스는 ‘중고거래 자판기’다. 이미 이마트24와 롯데마트, AK플라자 등 다양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중고거래 서비스 업체 ‘파라바라’와 협업해 ‘파라박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중고거래 자판기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이마트24다. 이마트24는 지난달 28일부터 수도권 전역 주택가, 오피스텔 등에 위치한 매장 18곳에 파라박스를 도입해 테스트 운영을 시작했다.
16일 중고거래 자판기가 설치된 이마트24 매장을 찾아가 보니, 총20개의 물품 보관 박스 중 약15개의 물품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박스 안에는 의류와 잡화, 미용기구, 서적 등 다양한 중고 물품이 비치돼있다. 중고거래 자판기는 투명한 보관함으로 만들어져 있어, 직접 눈으로 품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판매를 원하는 사람은 파라바라 앱에 판매하고자 하는 물품을 등록한 뒤 다른 사용자에게 하트를 3개 이상 획득하면 매장에 있는 파라박스에서 자신의 중고물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게 된다.
구매자는 앱을 통해 물품이 비치된 매장을 확인해서 찾아가거나 직접 셀프 결제를 통해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결제하면 잠겨 있던 보관함 문이 열리고 고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또한, 구매자가 제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사흘 뒤 판매자의 계좌로 돈이 입금된다. 상품이 실물과 다르거나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 파라바라에서 직접 교환, 환불 등 고객관리를 받을 수 있어 안전성과 효율성에 대한 문제도 보장해준다.
이마트24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되면서, 비대면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연내까지 18개 점포를 테스트 운영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보고 향후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중계점에 파라박스를 설치했다. 이용 고객의 편의를 높이고 지역 거점 커뮤니티 플랫폼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현재 광교점과 양평점에도 설치된 상태며, 고객들의 수요를 고려해 지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AK플라자도 홍대점과 분당점에 파라박스를 설치했다. 특히 분당점은 명품전용으로 운영된다. AK플라자의 중고거래 자판기는 중고명품 감정 스타트업 엑스클로젯이 온·오프라인에서 이중으로 명품을 감정한 후 판매가 진행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NB에 “기존 중고 거래 서비스의 단점인 심리적 피로감, 실물 확인의 어려움 문제, 사기 위험, 택배 부담 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비대면 중고거래 플랫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까지 합세? 서비스 출시설 ‘솔솔’
대형 유통사는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과 ‘번개장터’와도 협업하고 있다.
GS리테일은 당근마켓과 손잡고 ▲상품 판매 ▲동네 생활 서비스 활성화 ▲신상품 개발 및 상호 간의 인프라 활용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업무협약(MOU)을 지난 9일 체결했다. 당근마켓이 국내 1위 지역 생활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점을 활용해 상품 정보와 할인 정보 등을 알려 소비 증진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공동으로 제휴 신상품을 개발하고, GS리테일이 보유한 생활 편의 서비스 플랫폼과 오프라인 거점 등을 당근마켓의 서비스 사업과 연계한다는 전략을 밝혔다. GS25와 GS수퍼마켓의 상품이 당근마켓을 통해 판매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중고 물품 거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백화점은 번개장터와 손잡았다. 오는 26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오픈하는 현대백화점의 ‘더현대서울’에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 전문매장인 ‘BGZT by 번개장터’가 입점한다. 번개장터의 스니커즈 쇼룸 ‘BGZT Lab(브그즈트 랩)’이 들어서면서 스니커즈 중고 거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쿠팡도 중고거래 시장에 눈독 들이고 있다. 현재 쿠팡은 오픈마켓인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사업자만 중고 물품 판매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반품 제품에 한해 최상·상·중 등의 등급을 매겨 판매하고 있다. 별도로 중고거래 서비스를 지원하거나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고 상품 등록 후 판매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중고거래 서비스를 곧 출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접근성 높은 앱과 믿을 수 있는 배송 서비스, 안전 결제 시스템 등을 갖추면서 중고거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라며 “고객 간 거래 서비스를 지원하면 중고거래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CNB에 “중고거래 시장 진출과 관련해서는 확인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MZ세대 성장…중고 거래 대중화
유통업체들이 중고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최근 들어 중고 거래가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집콕’ 물품 소비가 활발해짐에 따라 중고 거래도 늘어난 것이다.
현재 중고나라의 회원 수는 2300만명을 남겼고,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도 1000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 중이다. 지난해 중고거래 시장 규모만 해도 약 20조원 규모로 10여 년 만에 4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 층이 중고거래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도 유통기업이 중고거래 시장에 관심을 두는 요인이다. MZ세대는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된 합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 중고 거래를 선호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물품을 찾는 사례가 대표적 예다.
또한 불필요한 물품을 버리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환경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가 많다는 점도 중고거래 활성화의 큰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 팬데믹과 MZ세대의 가치관을 이유로 중고 거래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유통업체가 새롭게 내놓는 중고 거래 플랫폼은 기존 서비스와 비교해 특장점이 있어야 한다. 차별화를 꾀해야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김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