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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정초부터 포문 연 재계…문재인 정부에 섭섭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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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1.01.15 09:56:20

“경제를 정치처럼 다루지 마라”

기업법 내용보다 과정에 실망 
재계 vs 여권, 정초부터 전면전

‘최태원 카드’ 변곡점 만들 수도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기업 관련 법안들이 경제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재계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신년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경제개혁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재계와 정치권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공정경제’를 내세워 추가 입법을 예고했고, 경제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때 ‘한국판 뉴딜’을 매개로 손발을 맞춰온 정치권과 재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진 이유가 뭘까. (CNB=도기천 기자)

 


“공정경제 3법과 노동 관련 3법은 경제민주주의를 이뤄낼 것이며,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것”(문 대통령 신년사 中)

“경제3법의 내용뿐 아니라 처리 과정에서 굉장히 서운했다. 정치법안처럼 그렇게 처리했어야 했나”(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경제개혁 입법에 대한 재계의 반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약속이나 한듯 정치권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경총은 지난 8일 기업의 잘못으로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논평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는 위헌적 법이 제정됐다”고 성토했다. 대한상의 역시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산재의 모든 책임을 기업인에게 지우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4개 경제단체가 지난달 정기국회를 통과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에 대한 보완 입법을 국회에 요청했다. 이들은 “규제 입법의 통과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최소한 몇가지 사항만이라도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

신년사에서도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박용만(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대한상의 회장은 “경제·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선 법으로 규제하고 강제하기보다 자율적인 규범이 작동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손경식(CJ그룹 회장) 경총 회장 역시 “새해에는 민간 경제주체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애가 되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달라”고 주문했으며, 허창수(GS그룹 명예회장) 전경련 회장은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규제를 거두고, 더 많은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촉구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새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권을 향해 “경제를 정치로 다루지 말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규제 내용보다 배신감 때문?



재계가 정초부터 일제히 포문을 연 배경에는 정치권에 대한 섭섭함이 배어있다. 법안 내용도 내용이지만 법안 처리 과정에 있어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 박 회장이 지난달 대한상의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들은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7㎞ 이상을 걸은 적도 있고, 온몸이 땀에 절어서 속옷부터 모두 갈아입고 다시 일한 적도 있다. 국회 방문 모습이 TV에 많이 나오다 보니 손녀가 국회를 보고 ‘할아버지 회사다’고 하기도 했다.”

이는 박 회장이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과 노조관련 법안들이 무더기 통과되기 직전인 작년 9~11월 국회를 방문해 의원실을 호호방문했던 상황을 이른다. 박 회장 뿐 아니라 손경식 회장도 당시 의원들과 야당 지도부를 만나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전했었다.

박 회장은 또 “재계가 우려하는 부작용을 어느 정도 법안에 반영해주겠다고 했고, 그래서 공청회와 토론회도 열었지만 입법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공청회 등에 적극 참여해 법안의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계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채 법안이 통과된 점을 지적한 것. 박 회장은 국회 때문에 무력감을 느낀다고까지 말했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개최된 ‘공정경제 입법현안 공개토론회’.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관련 법안들은 지난달 원안대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분위기는 작년 7월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을 때와 180도 다르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민보고대회 형식으로 "160조원을 친환경 미래차, 5G, 인공지능(AI)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경제계는 환호했다.

5세대 이동통신(5G)을 추진하고 있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와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크래프톤·펄어비스·컴투스·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컨텐츠 기업들, 쿠팡·11번가 등 이커머스 업종,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AI 관련 기업이 수혜주로 꼽혔다. 

특히 수소·전기차 보급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태양광 에너지 기업인 한화솔루션 등은 정부 발표에 발빠르게 대응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한 대기업 고위임원은 CNB에 “법 통과 이후 한국판 뉴딜에 고무됐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기업인들 사이에는 ‘우리가 정치인들 들러리만 섰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며 “법안의 내용보다 통과 과정에 있어 기업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오른쪽) 등이 화상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이낙연’ 재벌개혁 시즌2 예고



더 큰 문제는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 쇄신’ ‘개혁 초심’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온건파로 꼽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조만간 사퇴하게 되면 혁신론이 한층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유력 대권 주자인 이 대표는 ‘대권 경선에 나가려면 대선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당규에 따라 오는 3월 9일 이전에 물러날 전망이다.

민주당 한 핵심관계자는 CNB에 “당내에서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규제입법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지만, 개혁성이 강한 친문(친문재인)계가 주류인 만큼 새지도부가 선출되면 재벌규제에 다시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경제법안들을 언급하며 “법질서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경제민주주의를 이뤄내고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극찬했다. 이는 친문계 의원들에게 규제입법에 더 속도를 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용만 회장이 최근 거듭 정치권을 향해 “경제를 정치로 다루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여권은 추가규제로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50인 이상이 모여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서 승소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나머지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동일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반사회적 행위를 한 기업은 실제 소비자가 입은 피해액보다 더 많이 배상하라는 제도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 벤츠·닛산·포르쉐 등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은행권의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부는 이미 이런 내용들을 담은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는 반대하고 있지만 반발 수위는 높지 않다. 앞서 공정경제 3법 통과 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실상 ‘조건부 찬성’을 표명한 바 있으며, 야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최소화하며 쉽게 길을 내줬다.

 

최대 경제단체로 부상한 대한상의의 차기 회장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 회장 취임을 계기로 정치권과의 소통이 재개될지 주목된다. (SK그룹 제공)
 

대한상의 회장 교체, 돌파구 기대감



재계는 여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추가 법안들에 대해 '기업 경영에 족쇄를 채운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으며, 앞서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서는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과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다만 전경련을 대신해 재계 최대 이익단체로 부상한 대한상의의 차기 회장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유력시되고 있는 점은 실낱같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다음달 새 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대한상의는 전체 회원사 수가 약18만 곳으로 박근혜 정권과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쇠락한 전경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최 회장은 평소 지론인 ‘10만 사회적기업론’을 바탕으로 대·중소기업 상생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는 동반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최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자주 접촉하면서 공감대를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CNB에 “대통령이 이번 신년사에서 한국판 뉴딜을 통해 본격적으로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일”이라며 “최태원 회장이 경제단체 수장이 되는 것을 계기로 경제계와 정치권이 접점을 찾아 기업정책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기사 속 기사

 경제계 반발하는 규제법안 내용은?

 

재계가 반발해온 ‘공정경제 3법’은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국회는 작년 12월 9일 본회의를 열어 이 법안들을 한꺼번에 통과시켰다.

3법 중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때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는 일감몰아주기(사익편취) 기준이 강화됐다. 규제 대상이 총수 일가가 지분 30%(상장사는 20%)를 가진 기업에서 20%를 가진 기업으로 확대됐으며, 과징금도 2배로 늘었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삼성, 현대자동차 등 금융사를 소유한 대기업그룹을 규제하자는 취지다. 대표회사를 중심으로 내부통제협의회를 만들고, 그룹의 주요 위험요인을 공시하도록 했다.
국회는 같은날 노동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도 처리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을 위한 이른바 ILO 3법으로 불린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국내 노동법을 국제 수준으로 상향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새해 들어서는 지난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업장과 공중이용시설에서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에 대한 처벌이 가능케 됐다. 다만 법안은 공포 1년 후 시행되며,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시행 후 2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5인 미만 사업장과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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