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탁 트인 야외서 ‘걸으며 관람’
코엑스 광장은 전통美, 롯데타워 앞 우주쇼
화면 보며 소망 빌어… 언택트 시대 진풍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비롯한 많은 미술관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관람객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실내라는 장벽이 문턱을 높인 것인데, 사방이 탁 트인 곳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밀폐된 건물 안을 떠나 야외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가 감상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롯데타워 앞에는 김환기의 ‘우주’가 내려앉았고, 코엑스 광장 대형 전광판에는 한국 전통의 미가 떴다. 새해에 볼만한 비교적 안전한 노천 전시를 CNB가 다녀왔다. (CNB=선명규 기자)
2020년의 마지막 날, 잠실 롯데월드타워 광장. 오전 11시가 되자 잠잠히 자리잡고 있던 가로세로 6미터짜리의 거대한 정육면체에서 문구가 흐르기 시작했다. 문장은 달라도 의미는 대개 비슷했다. 새해 소망이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딛는 형 파이팅”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코로나 끝나라” “내년에는 결혼식 치를 수 있게 해주세요”…. 기원이 소개되는 동안 이따금 성사를 북돋는 메시지가 떴다. “당신의 새해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중입니다.” 롯데백화점이 사전에 신청받아 띄운 600개의 ‘희망 메시지’는 이날 12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나왔다.
이 행사는 이후 열릴 전시회의 개막연 성격이었다. 해가 바뀌는 자정이 되자 화면은 화폭이 됐다. 천체(天體)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암흑의 배경에서 별이 쏟아지고 유성이 빗발쳤다. 그리하여 종국엔 하나의 천문이 됐다. 한국 미술품 최고가(132억원)로 낙찰된 거장 김환기의 ‘유니버스(우주)’가 미디어 아트쇼로 구현돼 나온 것이다. 아까 희망을 이루기 위해 왜 우주의 기운을 모았는지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소띠 김환기(1913년생)의 작품이 신축년을 밝히자 빅뱅이 일어났다. 안전을 위해 특별한 현장 행사없이 유튜브로 진행됐는데, 댓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코로나 빨리 사라지게 해주세요” “모두 건강하세요” “여기에 빌면 이뤄질 것 같다” 등 하늘을 올려다보고 비는 소원이 줄줄이 달렸다. 롯데백화점(롯데쇼핑), (재)환기재단, 환기미술관이 협력해 선보이는 거장의 화려한 ‘우주쇼’는 다음달 14일까지 롯데타워 광장에서 볼 수 있다.
강남 복판서 열리는 ‘설화문화전’
이처럼 실외에서 걸으며 관람하는 ‘워킹 스루(Walking thru)’ 전시가 코로나 팬데믹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동 중에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면 뜻밖의 예술품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선 영동대로와 테헤란로가 맞물리는 지점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아모레퍼시픽의 럭셔리뷰티 브랜드 설화수가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2006년부터 여는 ‘설화문화전’이 진행되고 있다. 밖에서 개최되는 건 드문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아모레 사옥 등 실내를 무대로 삼아왔다. 올해는 ‘창, 전통과 현대의 중첩’을 주제로 강남 복판에 한국의 미를 꾹 눌러 새겼다.
성의없이 봐도 불현듯이 나타나기 때문에 모를 리 없다. 삼성역 인근 빌딩숲 사이에 거목이 피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외벽 미디어인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에 뜬 ‘당산나무’다. 민속신앙에서 신이 깃들어 마을을 지켜준다고 알려진 수호신이다. 도시를 집어삼킬 듯 커다란 나무가 신묘한 기운을 뿜어내며 행인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들어 잡는다.
홀리는 이유는 영상인 걸 알고 봐도 실재 같기 때문. 자연풍인지 도심속 국지풍(빌딩바람)인지 모를 외력에 의해 나뭇잎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그리고 온몸으로 받아들인 사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비에 맞은 잎이 질릴 듯이 파랗게 익었다가 이내 황갈색으로 변신하고 포슬포슬 내리는 눈에 맞아 고개를 떨어트린다.
Pivotal Lab(장수호·유재헌·추봉길)의 이 신비로운 영상 말미에는 특정 메시지들이 잎사귀에 맺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사전에 접수받은 문구들이다. 대개 갈망하는 것은 ‘건강’ ‘행복’ ‘일상’ ‘복귀’ 등으로 탈(脫)코로나와 관련됐다.
‘당산나무’는 7일까지만 송출되며, 지난 1일 시작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의 ‘정중동 동중동’이 오는 21일까지 같은 자리서 전시를 이어간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이번 설화문화전은 기존의 오프라인 전시 형태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온오프라인의 ‘공공예술’로 진화해 선보인다”며 “보다 많은 이들의 문화 향유와 국내 미디어 아트 산업 발전을 위해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2개팀에게 설화수에서 창작지원금을 후원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한편, 야외 전시를 보기 위해선 유의할 점이 있다. 삭풍 몰아치는 노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7살 아들의 손을 잡고 코엑스를 찾은 이모씨는 “무료로 수준 높은 작품을 보니 득템한 기분”이라면서도 “하지만 너무 추워서 오래는 못 보겠다”며 웃었다. 감상 시간을 늘리려면 과할 정도의 방한태세를 갖추는 것이 필수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