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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사회공헌①] KCC의 붓질, 거리 곳곳에 소방관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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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0.12.23 09:35:13

소화전이 소방관 모습으로 변신
담배꽁초·쓰레기·주정차 사라져
20인이 바꾼 기적같은 거리풍경

 

교통량이 많은 강남대로에서 노란 방염복에 빨간 모자를 쓴 '소방관'이 소화전이라는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당장은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도시의 배경 곳곳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은 미래를 밝히는 일이다. 음습한 골목에 벽화 새기기, 공공시설물에 따스한 그림 덧칠하기가 대표적인데 변화는 천천히 일어난다. 침울했던 길이 환해지면 주민 불안이 덜어지고, 시설물 주변에 쌓이던 쓰레기는 점차 사라진다. CNB가 기업들의 이같은 ‘디자인 사회공헌’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소방시설에 시인성(視認性)을 그린 KCC다. (CNB=선명규 기자)

 

지난 7월 KCC 행복나눔 봉사단 직원들이 소화전에 색을 칠하는 모습. 이들은 갈라지거나 균열이 잘 생기지 않는 자사의 우레탄계 페인트를 활용해 노후화된 소화전을 화사하게 탈바꿈 했다. (사진=KCC)

 

작화(作畫)가 지난 7월에 이뤄졌으니 꼭 다섯 달 됐다. 당시 20여명이 붓을 들었다. KCC 사내 임직원 봉사단, 서초소방서, 서초자원봉사센터 봉사자들이다. 이들이 캔버스로 삼은 건 강남대로 일대의 빨갛고 키 낮은 소화전들이었다. 양재역과 강남역을 주요 기점으로 두고 일직선의 길을 따라 삼삼오오 움직였다.

결과물은 하나의 ‘튀는’ 캐릭터였다. 화사한 색감을 밑바탕으로, 휘둥그런 눈에 노란 방염복과 빨간 모자를 착용한 모습이다. 겉만 봐도 신분이 쉽게 유추 되듯이, 그렇게 소화전은 소방관이 됐다.

KCC 측은 “소방관과 소방서가 24시간 도심을 지킨다는 의미를 위트있게 표현했다”며 “갈라지거나 균열이 잘 생기지 않는 자사의 우레탄계 페인트를 활용했기 때문에 다양한 오염이나 날씨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간 색감과 외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로변 감시자의 등장



한여름의 봉사가 낳은 완작(完作)은 도심의 거리 풍경을 바꾸었다.

뱅뱅사거리 근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 모씨는 “저 작은 시설물이 가려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소화전 주변에 항상 담배꽁초나 일회용 커피컵 같은 크고 작은 쓰레기가 많았다”며 “희한하게 누가 한번 버려 놓으면 그 주변에 꼭 따라서 놓고 갔는데 그림이 생긴 이후론 찔리는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길 한가운데에 과감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드물다.

또 다른 시민은 “누가 소방관 얼굴에 오물을 투척할 생각을 하겠느냐”고 했다. 비양심적 행위도 상대 봐가면서 하는 것이다.

달라진 건 청결도나 미관만이 아니다.

현행 소방법에 따르면 소화전 주변 5미터 이내에 주정차를 해서는 안 된다. 잠깐 머물러도 안 된다. 화재가 발생하면 급수확보가 관건인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강남대로는 항시 교통량이 많은 것과 더불어 불법 주정차로 골머리를 앓는 곳. 그런데 대로변에 이 ‘감시자’가 생긴 이후로 변화가 조금씩 일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인근의 한 상인은 “버젓이 갓길에 차 대놓고 가게에 물건 사러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장 빼야한다고 알려줘도 잠깐인데 뭐 어떠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역삼역으로 가는 방향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사진 위) 옆에 낡은 붉은색 소화전이 보인다. 주변이 깨끗하게 비워진 강남대로의 소화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진=선명규 기자) 

 


보다 눈에 잘 띄어야



해외서는 어떨까? 형광에 가까운 쨍한 색을 쓰거나 미니언즈, 슈퍼마리오 같은 유명 캐릭터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심미적 요소를 끼워 넣는 것은 물론, 소방시설의 존재를 보다 명확히 알리려는 조치다.

시인성(視認性)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국내는 아직 미흡해 보인다.

지난 16일, 소화전 주변 갓길이 깨끗하게 비워진 강남대로와 달리 이곳과 가까운 강남역에서 역삼역 방향 도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차량이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운전자에게 위반 사실을 인지했는 지에 대해 묻자 “정말 몰랐다”며 “봤다면 차를 여기에 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차량 옆에는 붉은 칠이 벗겨져 거무튀튀해진 소화전이 웅크리고 있었다. 도색이든 작화든 뭐라도 입혔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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