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대폭락 최후 방어선은 ‘삼전 개미’
코스피 고조되자 국내주식 팔고 해외로
지금은 외국인이 사상최대 순매수 행진
새해 한국증시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올 한해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증권시장이 ‘시즌2’를 향해 치닫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에 맞선 ‘동학개미운동’이 저물고 ‘바이 코리아’가 불붙고 있는 것. 글로벌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를 집중매수하면서 한때 최후방어선을 구축했던 ‘삼전개미’들의 신화는 증시역사 속으로 저물고 있다. 새해에는 누가 한국증시의 주인공이 될까. (CNB=도기천 기자)
개미군단이 ‘바이 코리아’ 불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고 나갈 때, 개인 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면서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1일 문재인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올해 한국증시는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가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19일 1457까지 주저앉았던 코스피는 꾸준히 반등해 지난 4일 사상최초로 2700선을 돌파했다. 9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2배 가량 뛴 것이다.
이는 글로벌 증시를 통털어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같은기간 한국증시의 바로미터가 되는 미국 다우지수는 56% 오르는데 그쳤다.
여기에는 빚을 내가면서까지 지수를 방어했던 개미주주들의 역할이 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공포가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첫거래일(3월2일)부터 4월 10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을 합쳐 약24조원(국내18조원, 해외6조원)을 순매수 했다. 짧은 기간에 이 정도 매수규모는 이례적이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5조원 가량을 팔아치웠지만 개인들은 이를 뛰어넘는 18조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하며 지수하락을 막아냈다.
개미들 자금의 상당 부분은 예적금, 보험 등에서 유입됐다. 지난 3월 한달 간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정기예적금 해지액(개인고객 기준)은 7조7389억원에 이르며,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생명보험 3개사와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손해보험 5개사의 해지환급금은 3조162억원에 달했다. 여기에다 보험약관대출, 신용대출도 크게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학개미운동’과 ‘동학삼전운동’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동학개미운동은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1894년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표현이다. 동학삼전운동은 “삼성전자가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한다”며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인 소액투자자들을 일컫는다.
재벌가 상승 1위는 서정진…3조원 ‘잭팟’
이런 상황은 지수가 급반전하는 동력이 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개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3분기 매출 67조원을 기록했는데 분기 실적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영업이익도 12조3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8.8%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모바일(스마트폰)과 TV·가전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재 덕에 반도체 부문이 반사이익을 본 덕분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D램 수요 호조 영향으로 올해 사상최고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7만원대 고지에 오른 삼성전자 주가가 상승세를 지속해 새해에는 9만원대도 넘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환경도 우호적이다. 백신 기대감, 미국 대선 불확실성 해소, 원화 강세(달러화 약세), 주요국의 부양책 기대감이 맞물려 세계증시의 반등세가 뚜렷하다.
이런 가운데 코스피는 신기록의 연속이다. 이달들어 2700을 돌파한뒤 5거래일 연속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특히 11월 상승폭은 역대급이다. 한달간 무려 324포인트(14.3%) 뛰었다. 1998년 1월 191포인트, 2007년 7월 190포인트 등 과거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기록들보다도 월등한 수준이다.
재계 총수들의 보유주식도 크게 올랐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주식부호 1~10위의 지분 가치는 지난 4일 기준 총64조7492억원으로 지난달 4일(53조4674억원)보다 11조2818억원(21.10%)이나 증가했다.
‘국내 주식부호 부동의 1위’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 평가액은 이 기간 동안 3조6865억원(20.6%) 불어나 21조5580억원을 기록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지분 가치는 8조731억원으로 65.06%(3조1818억원)나 증가해 증가율에서 단연 1위였다.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3조1197억원)의 주식재산 증가율이 28.27%(6876억원)로 10위권 중 2번째로 높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4조9744억원)도 주식재산이 13.33%(5851억원) 늘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동학개미운동에 힙입어 주가지수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며 개인투자자들을 치켜세웠다.
‘개미→외국인’ 선수교체…동학 흐름 변해
하지만 현재 증시를 ‘현미경 관찰’ 해보면 ‘동학’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꾸준히 국내주식을 매수하던 개미들이 지난달부터 자금을 빼내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반대로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 규모는 크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11월 한달 간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총2조7836억원을 순매도했다. 또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에서는 같은기간 1조88억원이 빠져나갔다. 2017년 5월 이후 3년 반만에 가장 큰 순유출 규모다. 반면 해외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1월 한달 간 5686억원 증가했다.
반대로 외국인은 지난달 국내 주식을 7년 2개월 만에 가장 많이 사들였다.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1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6조1250억원(유가증권시장 5조8천570억원, 코스닥시장 2천68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8조3000억원을 순매수한 2013년 9월 이후 최대규모다. 외국인이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11월말 기준 675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은 1일 748억원, 2일 5180억원, 3일 2103억원, 4일 7622억원 등 4거래일간 1조5654억원을 사들였다.
이같은 외국인의 순매수 배경으로는 달러 약세와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대감 등이 꼽힌다.
달러화는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감 등을 반영하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올 3월 1250원을 웃돌던 환율은 지금은 1100원 아래로 내려갔다.
이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바이(buy) 코리아’의 동기가 되고 있다. 가령, 지난달 4일부터 이달 4일까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7.4%(달러화 기준) 올랐다. 하지만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원화로 환산한 수익률은 2.3%에 그쳤다. 반면 코스피는 같은 기간 15.9% 올랐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환차익 등을 고려할 때 한국주식에 투자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다.
‘장미에 가시’ 있다
하지만 오롯이 ‘장밋빛’으로만 증시를 보는 건 위험하다.
환율 하락은 수출기업에게는 악재다. 가령 현대차가 미국에 자동차 1대를 수출하고 1만 달러를 받아 원화로 바꾼다면 과거에는 1200~1300만원 가량을 손에 넣었지만 지금은 1100만원 이하다.
증권가 관계자는 CNB에 “내년에도 달러화 약세가 계속될 전망이라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수출기업의 경우 환율이 실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 문제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 미국 등 주요선진국들이 백신 긴급사용 승인에 나섰지만, 백신이 적은 실험군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이고 바이러스 변이를 가정하지 않은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현재 한국증시는 실적보다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는데, 기대의 핵심이 코로나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하지만 지금과 같은 팬데믹 추세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백신 부작용마저 발생한다면 글로벌 증시는 3월과 같은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