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 독보적 AI기술 금융에 접목
투자도 게임처럼? ‘게이밍’ 요소 도입
재무적투자자에서 점차 경영 중심부로
국내 게임사들이 잇따라 금융 분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이미 여러 게임사가 핀테크(IT+금융) 업체와의 협력, 지분투자 등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기반 증권사까지 설립하겠다는 곳까지 등장했다. 이들이 금융에 쏠린 이유가 뭘까. (CNB=김수찬 기자)
AI와 금융의 만남…엔씨, 합작 증권사 출범
금융업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게임사는 엔씨소프트다. 엔씨는 2015년부터 전자결제 업체 KG이니시스의 45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등 금융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내비쳐온 회사다.
지난달 7일 엔씨는 KB증권, 디셈버앤컴퍼니와 함께 합작 법인 증권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엔씨와 KB증권이 디셈버앤컴퍼니에 각각 300억원을 투자하고 지분 19.37%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새로 만들어질 합작 법인은 엔씨의 AI 기술과 KB증권의 금융투자 노하우, 디셈버앤컴퍼니의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증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AI가 금융 투자상품을 분석 후 선택, 추천 등을 해주는 것이다.
엔씨가 AI 금융에 뛰어든 이유는 김택진 대표의 지대한 관심과 확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디셈버앤컴퍼니의 최대주주로, AI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엔씨는 지난 2011년부터 AI 연구개발을 시작해 AI 센터와 NLP(자연어처리) 센터 산하에 5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자연어처리 기술을 금융 서비스에 접목하면 애플의 시리, 삼성의 빅스비 등처럼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해주는 챗봇 기능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또 고객이 기재한 정보와 검색 결과에 따라 맞춤형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CNB에 “KB증권의 제안으로 AI 기반 기술 협력을 결정해 합작 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면서 협력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넥슨·넷마블도 직·간접투자…금융 접점 늘려
넥슨도 금융사 투자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 생태계 참여 등을 통해 금융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는 지난 3월 인도 핀테크 전문 금융회사 ‘NIS인드라’에 1140억원을 투자했다. 금융사 간접 투자를 통해 투자 수익을 획득하겠다는 전략이다.
선물거래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NXC는 지난 2월 신규 트레이딩 플랫폼 개발을 위한 자회사 ‘아퀴스(Arques)’를 설립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선물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현물과 디지털 자산(가상자산) 트레이딩도 포함된다. 넥슨코리아 인텔리전스랩스 개발실장을 역임한 김성민 대표가 신임 대표를 맡았으며, 넥슨코리아 출신 멤버 여럿이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점은 ‘게이밍’ 요소가 도입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경영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다양하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늘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NXC가 2016년 인수한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은 신한은행과 함께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합작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가상자산이 내년 3월 안으로 제도권에 편입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으로 보인다. NXC는 지난 2018년에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스탬프를 사들이기도 했다.
넷마블 역시 간접 투자를 통해 금융 분야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2017년 7월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출범하자 3.93%의 지분을 확보했다. 아직 구체적인 협력 모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카카오뱅크가 내년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만큼 관련 사업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넷마블은 카카오가 개발 중인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의 운영사인 ‘거버넌스 카운슬’에 가입하며,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생태계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일게이트도 벤처캐피털(VC) 계열사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국내 핀테크 기업 ‘레이니스트’와 인도 핀테크 스타트업 ‘캐시프리’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 형태로 사모펀드에 돈을 맡기며 간접 투자를 하는 상황이다.
게임과 비대면 익숙한 2030세대 타깃
게임사의 잇따른 금융업 진출은 핵심 이용자층인 2030세대를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AI 및 비대면 결제 기술에 특화된 기업이고 금융 투자에 관심 있는 젊은 층이 핵심 유저이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CNB에 “게임사들은 이미 인앱 결제와 아이템 거래 시스템 등을 통해 금융 이해도를 높여왔고, 핀테크 기술 투자까지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을 먹여 살리는 2030세대의 투자 심리가 더 활발해졌으니 금융업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분 확보 및 펀드 등을 통해 간접 투자를 하는 경우도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한 전단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형 게임사의 경우 AI와 데이터 처리 시스템 기술에 강점이 있고, 해당 기술력은 핀테크 산업의 핵심으로 꼽힌다”라며 “현금 유동성이 높고, 막대한 자본까지 갖추고 있어 금융업이 신성장 동력원이 되기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CNB=김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