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밥. “어때요? 참 쉽죠?” 마음씨 좋은 그 밥 아저씨 아니다. 먹는 밥이다. 비밀을 알려줄까? 나의 정체는 하나가 아니다. 어디보자, 하나 둘…. 세기 어렵다. 불리는 이름도 많고 활용범위도 넓다. 사람들 입에서 나는 분신술을 펼친다. 동명으로 호명돼도 의미는 천차만별이다. 비밀을 하나 더 알려준다면 오늘 당신은 반드시 나를 한번쯤은 입에 담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얼마나 나를 찾았는지 어디 볼까?
인사성 밝고 배곯진 않는지, 걱정하는 따듯한 성정을 지닌 당신. 만난 이에게 이렇게 안부를 물었을 테다. “밥 먹었니?” 오랜만에 연락 닿은 이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도 마찬가지다. “뭐 먹고 사냐?” 먹는 게 가장 걱정된다.
천둥벌거숭이 자녀를 둔 부모라면 나를 활용해 윽박질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게임이 밥 먹여 준다니?” “한 번 더 그랬다간 아주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방 꼴이 이게 뭐야? 이러고 밥이 넘어가?”
누가 아플 때 먼저 떠오르는 이름도 나다. “빈속에 약 먹으면 안 돼. 밥부터 챙겨” 도탑게만 쓰이진 않는다. 욕으로도 용도변경 된다. “저런 밥맛 떨어지는 인간” 더욱 원초적으로도 쓰인다. 무시할 때 “완전 밥팅이네” 막판에 일을 막칠 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냐?” 위법이 담긴 꿍꿍이를 품은 자에겐 경고로 쓰인다. “콩밥 먹고 싶어?” 흥 넘치는 사람은 한때 수능 금지곡처럼 불렀던 나를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밥밥디라라 다리라디리다라” 약속 잡을 때도 나는 요긴하다. “언제 밥 한번 먹자” “다음에 식사라도 하시죠” 다만 이건 지켜질 확률이 희박하다.
알짬만 추려도 이 정도다. 이토록 사람들의 입을 타고 자유로이 다니는 나인데, 요즘 발길 닿기 어려운 곳이 있다. 2019년에 생겨 19라 이름 붙은 장애물이 길을 막고 있다. 가야하는데 정체현상을 빚는 구간, 결식아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지난달 발표한 ‘아동 재난대응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아동 결식과 빈곤의 우려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세끼 모두 챙겨 먹는 아동이 50.1%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큰 폭으로 줄어든 35.9%로 나타났다. 3명 중 2명은 세끼를 모두 챙겨 먹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동들이 식사를 거른 이유다. ‘입맛이 없어서(31.1%)’, ‘늦게 일어나서(20.8%)’가 많지만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서’라고 답한 아동이 7.6%나 된다. 2년 전에는 1.3%만이 같은 답을 선택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무려 6배가량이나 늘었다. 없어서 못 먹으면 어린 속이 얼마나 쓰리겠는가.
다시 나의 얘기를 하자면, 나는 불로써 지어진다. 태생적으로 위험하다. 주의를 기울이며 다루어야 한다. 하물며 어린 아이는 어떻겠는가. 조막만한 손으로 화기를 다스리기 어렵다. 방치했다가 모두 목도하지 않았는가. 끼니를 챙기려 했을 뿐인데 참변 당한 형제를.
방학이 시작되면 학교급식을 받지 못해 밥 굶는 아이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코로나가 일상에 구멍을 내면서 가뜩이나 고픈 게 많은데, 배까지 곯아서야 되겠는가. 기운 떨어지게.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관심과 밥심을.
(CNB=선명규 기자)